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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부의 기쁨]'대장금' 이영애표 행복 메뉴엔 ‘기부’가 있다

입력
2017.12.09 04:40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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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포항ㆍ이란 지진, K-9포 사고…

올해에도 크고 작은 성금 쾌척

국내외서 15년간 따뜻한 손길

#2

뉴스 읽고 우선순위 따져

홍수 등 재난지역 적극 지원

중국 동남아 학교시설 개선ㆍ학비 지원도

#3

“나눌수록 세상을 보는 눈을 얻고

스스로 성장하고 있음을 느껴…

오히려 제가 더 기뻤어요”

지난 15년 동안 꾸준히 나눔을 실천해 온 배우 이영애는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기부를 했기에 내가 더 성장했다"고 말했다. 리어소시에이트 제공
지난 15년 동안 꾸준히 나눔을 실천해 온 배우 이영애는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기부를 했기에 내가 더 성장했다"고 말했다. 리어소시에이트 제공

지난달 21일(현지시간) 이란 언론에 드라마 ‘대장금’의 배우 이영애(46)가 등장했다. 며칠 전 일어난 규모 7.3의 이란 지진 피해 복구를 위해 5만 달러(약 5,600만원)를 기부했다는 보도였다. 바로 전날 국내 언론엔 이씨가 한국장애인재단을 통해 규모 5.4 지진이 발생한 경북 포항에 5,000만원을 전달하기로 한 사실이 알려졌다. 연예인 중 기부천사로 이름난 이들이 더러 있지만 이영애의 기부 행보도 예사 수준을 한참 뛰어넘는다. 8월 강원 철원군에서 K-9 자주포 사격 훈련 중 화재로 사망ㆍ부상한 7명의 장병을 돕기 위해 육군부사관학교발전기금에 5,000만원을 전달했고, 6월엔 홍수가 난 스리랑카에 구호성금 5만 달러, 4월에는 강진 피해를 입은 에콰도르에 5만 달러를 기부했다. 보통 사람은 지진이 난 줄도 모르는 나라에 이렇게까지 찾아 다니며 기부를 하는 이유나 과정이 궁금할 법도 하다. 왜일까?

지난달 연세의료원에 기부를 한 이영애가 윤도흠 연세의료원장으로부터 감사패를 받고 있다. 리어소시에이트 제공
지난달 연세의료원에 기부를 한 이영애가 윤도흠 연세의료원장으로부터 감사패를 받고 있다. 리어소시에이트 제공

12월 거리엔 구세군 자선냄비가 등장했고, 사랑의 온도탑 역시 모금 목표치를 향해 달아오를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최근 기부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은 줄어들고 있다. 통계청이 조사 발표한 15세 이상 인구의 기부 참여율은 2006년 31.6%에서 꾸준히 증가해 2011년 36.0%를 정점을 찍은 뒤 2013년 34.5%, 2015년 29.8%, 올해 26.7%까지 계속 떨어지고 있다. 기부문화가 확산되기는커녕 주춤하고 있는 현실이다. 그래서 이영애에게 물었다. 당신은 왜 기부를 하는가.

“스스로 기쁘기 때문이죠. 물론 누군가를 돕는다는 것 자체가 의미 있는 일이에요. 그런데 기부를 하면 제 마음이 저절로 따뜻해지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기부를) 계속 할수록 세상을 보는 눈을 얻고 스스로 성장하고 있다는 것을 자각해요. 뿌듯하답니다.”

4일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이영애가 답한 기부의 이유는 자신이 기쁨을 느끼기 때문이었다. 기부할 수 있는 여력이 되고, 공인으로서 의무라는 생각도 물론 있겠지만 핵심은 자기 만족이란다. 도움 받은 이가 감사를 표시할 때면 지금의 이영애를 있게 한 대중의 사랑에 아주 조금 보답했구나 하며 마음이 뿌듯해진다. 기부를 받은 대상보다, 오히려 기부한 사람이 더 큰 만족감과 행복감을 느끼고 삶에 더 많은 영향을 받는다는 것은 사실 많은 연구결과에서 확인된 바다.

지난달 21일(현지시간) 이란 주요 언론들은 '대장금'의 배우 이영애씨가 이란 지진 피해 복구를 위해 기부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연합뉴스
지난달 21일(현지시간) 이란 주요 언론들은 '대장금'의 배우 이영애씨가 이란 지진 피해 복구를 위해 기부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연합뉴스

기부라는 행위는 함께 살아가는 사회의 구성원에 대한 이해를 깊게 하고 개인의 삶을 사회적 삶으로 확장시킨다. 이씨는 하루 평균 5통 가까운 도움 요청 편지를 받는다. 이러저러한 이유로 생활이 어렵다는 내용이다. 이런 편지를 읽으면서 이씨는 나름의 기부 기준을 정해야 했다. “안타깝지만 일을 할 수 있는 나이에 있는 성인들의 요청은 즉시 응하지 않습니다. 그래도 계속 어렵다고 하면 그 분이 진짜로 도움이 필요한지 알아보는 경우도 있어요.” 국제적으로 이름이 알려진 한류 스타로서 자칫 기부를 잘못해서 책임 질 일이 있을 수 있다는 생각도 있지만, 그 과정에서 세상을 보는 눈이 확연히 달라졌다. 뉴스를 꼼꼼히 읽고 도움이 필요한 우선순위를 따지게 됐다. “신문과 인터넷을 통해 뉴스를 읽다 보면 이런 분을 도와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그러면 남편과 상의해서 심사숙고 해 결정을 합니다.”

2006년 치바오 소학교에서 열린 성금 기탁행사에 참석한 배우 이영애. 성금기탁후 이영애 소학교로 학교명이 바뀌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2006년 치바오 소학교에서 열린 성금 기탁행사에 참석한 배우 이영애. 성금기탁후 이영애 소학교로 학교명이 바뀌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3대 기부 키워드 재해ㆍ교육ㆍ희생

이런 과정을 거쳐 세워진 ‘이영애 기부’의 원칙은 이렇다. 우선 홍수, 지진 등 자연재해 피해 지역 돕기에 누구보다 적극적이다. “당장 도움이 필요한 곳이기 때문이죠. 재해는 모두에게 절망감을 줍니다. 특히 피해를 입은 분들은 모든 것을 잃어버린 채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다시 제 자리를 찾기까지 시간이 필요하니까요.” 어린이 역시 신경을 많이 쓰는 대상이다. 이영애도 쌍둥이를 둔 엄마라는 점에서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런데 이영애가 군인과 가족 돕기에도 팔을 걷어붙이는 것은 다소 의외다.

이영애는 8월 K-9 자주포 훈련사고 사상자를 도우면서 당시 사고로 목숨을 잃은 이태균 상사의 18개월 된 아들이 대학 졸업까지 학비를 발전기금을 통해 지원하겠다는 뜻도 밝혔다. 2년 전인 2015년 8월에는 경기 파주시 비무장지대(DMZ)에서 수색 작전 중 목함 지뢰 폭발로 각각 우측 발목과 두 다리를 절단한 김정원ㆍ하재원 하사에게 역시 발전기금을 통해 5,000만원을 전달했다.

“우리나라를 지키는 분들이잖아요. 특히 한반도 상황이 위급해질수록 그 분들 역할이 중요하고요. 그 분들이 헌신하는 것에 대해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국민들이 군인에 대해 조금 더 관심을 가졌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군에 대한 관심이 처음 생겨난 것은 이영애가 군인 가족이라는 인연이 작용했다.

기부 진화할수록 나는 성숙해진다

자신의 관심사에서 시작한 기부는 하면 할수록 진화한다. 그러면서 시야는 넓어지고 인생은 성숙해진다. 아이들을 돕는 것에 대해 이영애는 “저도 일곱 살 쌍둥이 엄마잖아요. 아이들이 태어나 자랄수록 어려움에 처한 아이들을 보면 남의 일 같지 않았습니다. 내 아이들이 곤란한 상황에 있다고 떠올리는 순간 내가 가진 뭐라도 내줘야지 하는 생각이 그냥 든답니다. 세상 모든 엄마들은 같은 마음일 거예요”라고 말했다.

사실 그는 2009년 결혼 전부터 중국 어린이들의 학교 시설 개선과 학비 지원에 열심이었다. 2005년 광저우성 희망초등학교 설립 후원금으로 30만 위안(약 4,900만원)을 내놓았고, 2006년 중국 유명 음료회사의 모델 출연료 중 5만 달러를 낙후된 시설 때문에 폐교 조치가 내려졌던 저장성 항저우 치바오초등학교의 시설 수리비로 기부했다. 학교가 문을 닫았다면 10㎞ 이상 떨어진 다른 학교로 통학을 할 뻔했던 학생들은 이씨의 도움으로 다시 공부할 수 있게 됐고, 학교 측은 감사의 뜻으로 학교 이름을 ‘이영애 초등학교(소학교)’로 바꿔 화제가 됐다.

결혼과 출산 이후에는 기부의 폭을 넓혔다. 자신이 쌍둥이를 출산했던 제일병원과 손잡고 저소득층, 만 20세 이하 미혼모, 다문화가정, 장애 여성 임산부에게 출산 비용과 미숙아 치료비를 지원하는 ‘행복맘 후원사업’을 펼치고 있다. 이씨가 2012년(1억원)과 올해(5,000만원) 두 차례에 걸쳐 기부한 1억5,000만원이 쓰이고 있다. 아이를 매개로 시작된 공감과 연민은 점차 넓어지고 있다.

배우 이영애씨가 2012년 6월 17일 서울의 한 호텔에서 세스 앤드류 미국 데모크라시 프렙 퍼블릭 스쿨 교장과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씨는 한국식 교육방식을 도입해 성공을 거둔 이 학교 학생들의 한국 방문 경비를 후원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배우 이영애씨가 2012년 6월 17일 서울의 한 호텔에서 세스 앤드류 미국 데모크라시 프렙 퍼블릭 스쿨 교장과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씨는 한국식 교육방식을 도입해 성공을 거둔 이 학교 학생들의 한국 방문 경비를 후원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대놓고 알리기는 아직도 쉽지 않아

이씨는 ‘한국 배우가 한국 사람들을 도와야지 왜 해외 사람들을 돕느냐’는 질문을 종종 받는다. “많은 해외 시청자들이 드라마 ‘대장금’을 좋아해 주고 저뿐만 아니라 한국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됐죠. 기부는 제가 하지만 기부를 받는 해외에서는 한국이 돕는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더군요. 저에게 해외 기부는 해외 팬들의 사랑에 대한 보답인 동시에 해외에서 한국에 대한 좋은 이미지를 만드는 길이에요.”

이영애는 이런 크고 작은 기부를 소리소문 없이 한다. 먼저 알린 적은 거의 없고 뒤늦게 알려졌다는 식으로 보도된다. 소속사에서 기부 기록 같은 것을 정리해 둔 것도 없어 기부금액이 정확히 얼마인지도 알 수 없다. 기부는 열심히 하지만 하고 나서 잊어버려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유명인이 기부 사실과 액수를 널리 알리는 게 기부를 확산시키는 데 도움이 된다는 시각도 있지만 이영애는 이에 대해 반신반의하는 편이다.

“왼손이 하는 일 오른 손 모르게 하라는 말이 계속 떠올라요. 하지만 좀 더 많은 분들이 기부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면 알려지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죠? 기부는 기쁜 일이니까요.”

이영애씨는 한국일보와 인터뷰에서 기부는 하면 할수록 자신이 성장하고 있음을 느끼게 해주는 마음 따뜻한 경험이라고 말했다. 리어소시에이트 제공
이영애씨는 한국일보와 인터뷰에서 기부는 하면 할수록 자신이 성장하고 있음을 느끼게 해주는 마음 따뜻한 경험이라고 말했다. 리어소시에이트 제공

기부는 그저 얼마의 돈을 줘버리는 일이 아니다. 도움이 필요한 대상을 찾으며, 왜 그리고 어떻게 도와야 할지를 고민한 결과물이다. 그러면서 시대와 나를 되돌아보는 자기 성찰의 보고서이고, 연민과 연대의 범위를 내 가족 너머로 확장하는 삶의 성장궤적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기쁜 일이다. 받는 사람이 아닌 하는 사람이 더 기쁘단다. 내가 누군가 돕는 존재가 될 수 있다는 그 충만함, 이 사회가 나 혼자 사는 곳이 아니라는 것을 실감하는 그 경이로움을 해보지 않은 이들은 미처 알기 어렵다.

박상준 기자 buttonpr@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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