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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 세상보기] 나의 오늘은 너의 마지막 숨이었다

입력
2017.12.08 14:55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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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10시간 이상 일하고, 임금을 받지만 노동자가 되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현장실습생, 인턴, 혁신활동가, 아르바이트 등. 각자 일을 하는데도 다른 신분의 사람이 있다.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전문적인 기술이 없다는 이유로, 이들은 적은 임금을 받는다. 또 사고가 나더라도 산재로 인정받기 어렵다.

누구나 일을 해야 한다고 해서 혹은 생계를 위해 이른 나이에 노동현장으로 뛰어들었지만, 정작 일터에서는 ‘학생’, ‘일회용품’ 쯤으로 취급한다. 학생신분으로 이 세계에 들어온 사람들은 이탈하고 싶어도 쉽게 그만둘 수 없다. 일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기회와 자원이 박탈되기 때문이다. “일하지 않는 자는 먹지도 말라’’. 이것은 일중심사회의 규칙이다.

끊임없이 일을 장려하고 일하지 못하는 사람을 배제하고, 그러면서 모든 삶을 ‘일’에 맞춰 재편하도록 강요한다. 그러니 시간과 자원은 오로지 일을 위해 복무하고 헌신해야 한다. 왜 나에게 이런 부당한 대우하느냐고 물어도 “(여기는) 원래 그런 것”이라는 답만 돌아올 뿐이다. 이 수상한 노동세계는 누구나 들어올 수 있지만, 아무나 ‘일하는 사람(노동자)’으로 인정하지 않는 비정한 세계이다.

박○○ 박○○ 이민호 이○○ 정○○ 홍수연 김동균 김동준 김대환 노○○ 홍성대 김민재 김○○ … 지난 몇 년 동안 수상한 세계에서 사라져 간 사람들이다. 이름 한 줄, 기록되지 않은 사람들도 많다.

박○○, 인천 식품업체에서 일하던 중 육류 절단기에 걸린 고기를 빼려다 손가락이 절단됐다. 박○○, 금속업체에서 일했고 기계를 닦던 중 선임 직원에게 욕을 듣고 공장 옥상에서 투신했다. 이민호, 제이크리에이션 음료제조업에서 일하던 중 프레스에 깔려 사망했다. 정○○, 여수산업단지 대림산업 협력업체에서 일했고 손에는 지문이 거의 남아 있지 않은 채로 일터에서 자살했다. 홍수연, LG 유플러스 콜센터에서 가입해지를 막는 부서에서 일했으며 실적압박으로 자살했다.

이들은 2017년 현장실습생, 고교실습생으로 일하다가 사고사를 당하거나 자살했다. 모두 10대였고, 일하다가 죽었다. 대학에 가지 않아서, 하필이면 그날 운이 없어서 죽은 것이 아니다. 일터가 너무 폭력적이기 때문에 목숨을 잃은 것이다. 사람들이 매일 먹고 마시는 돈까스, 생수에 이들의 죽음이 서려 있고, 사람들이 매일 이용하는 핸드폰, 지하철, 엘리베이터에 마지막 숨이 녹아 있다. 그러니 현장실습생의 노동과 죽음을 어린 나이에 세상을 떠나서 안타까운 사연으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 그렇다고 바뀌는 것은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이 사회는 안전하지 않은 일터에 사람들을 떠밀었고, 누군가에게 간절했던 오늘을 미리 착취해서 노동세계를 떠받쳐 왔다. 학교에서는 취업실적을 위해, 일터에서는 비용 절감을 위해, 위험한 곳에 젊은 노동자를 방치했다. 하지만, 여전히 일이 신성하고 중요하다는 신화는 안전에 대한 요구를 부차적인 것으로 만든다. 더욱이 ‘정규직 신화’가 강하게 작동하는 이 사회는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면 모든 일이 해결되는 것처럼 생각한다. 고용의 안정성이 노동의 안전성으로 모두 해결되는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노동법만 제대로 지켰더라도, 현장 관리ㆍ감독만 제대로 됐더라도, 노동자로서 대우를 제대로 해 줬더라도 살릴 수 있는 목숨들이었다. 타인의 노동을 착취하며 오늘이 굴러가는 이 세계에서, 나만 아니면 된다는 생각으로 윤리적 소비나 윤리적 실천을 한다고 한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 부디 이 폭력적인 노동세계를 바라보면서, 나만 아니면 된다는 생각을 하지 않으면 좋겠다. 이 불편하고 수상한 노동세계의 현실에 나도 연루되어 있음을 자각하며, 사라져가는 이름을 불러 주면 좋겠다.

천주희 문화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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