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증인-이식인 간 정보제공 금지한 현행법 개정 촉구
“제 아들의 장기를 이식받은 분께 ‘건강히 잘 지내고 있다’는 편지를 받으면 큰 감동일 것 같아요. 잘 지내고 있다는, 사랑하는 제 아들 덕분에 다시 힘차게 살고 있다는 그 한 마디 안부를 간절히 기다립니다."
2002년 뇌사 판정을 받고 7명에게 장기기증을 한 뒤 세상을 떠난 편준범(당시 25세)씨의 어머니 박상렬씨는 8일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가 프레스센터에서 개최한 ‘잘 지내고 있나요?’ 기자회견에서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이날 회견은 국내에서 처음으로 뇌사 장기기증인 유족과 장기를 이식받은 사람 사이의 서신 교류를 허용해달라고 호소하기 위해 마련된 것이다. 현재 장기 등 이식에 관한 법률(장기이식법)은 장기이식관리기관ㆍ의료기관이 장기기증인과 장기이식인 측에게 서로 개인정보를 일절 제공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만에 하나 불상사를 방지하기 위해, 수사ㆍ재판·장기기증 홍보 등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정보 공개를 금지한다.
하지만 장기기증인 유족과 장기이식인 대다수는 ‘잘살고 있다는 안부 정도라도 주고받도록 해달라’고 요구하는 상황이다. 장기기증운동본부가 2015년 기증인 유족 약 100명에게 설문 조사한 결과 기증인들이 가장 기대하는 예우사업은 ‘장기이식인과의 만남’이었다고 한다.
이날 기자회견에서는 박씨처럼 자녀가 장기를 기증하고 세상을 떠난 모친들의 호소가 이어졌다.
2011년 장기를 기증하고 숨을 거둔 이종훈(당시 33세)씨의 어머니 장부순씨는 “종훈이가 장기 4개를 기증해 많은 생명을 살렸지만, 장례 후 지인들로부터 ‘엄마도 아니다’라는 등 모진 말을 들었다”면서 “그때 가장 간절했던 건 ‘잘했다’는 한 마디였다”고 회상했다. 장씨는 “외국에서는 장기기증인 유가족과 장기이식인이 서신을 통해 교류하고, 일정 기간이 지나면 만날 수도 있다고 한다”면서 “우리나라는 이식인이 건강히 잘 사는지조차 알 수 없어 기증자 유가족으로서 답답한 심정”이라고 토로했다.
지난해 1월 미국 애리조나에서 장기를 기증하고 숨진 김유나(당시 18세) 양의 어머니 이선경씨는 “기관으로부터 이식인 정보가 담긴 편지를 받았다”면서 “이식인들 나이와 상황,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 등이 적혀있어 큰 위로가 됐다”고 미국의 상황을 전했다. 그는 “이식인 가족들에게도 감사 편지를 받아서 유나의 장기기증이 얼마나 많은 사람의 삶을 변화시켰는지 실감할 수 있었다”면서 “한국에서도 조속히 기증자 유가족들이 이식인의 소식을 통해 위로와 위안을 받길 바란다”고 말했다.
김동엽 장기기증운동본부 사무처장은 “장기기증인ㆍ장기이식인 정보를 공개하자는 게 아니라, 희망자에 한해 기관을 통해 간접적인 서신 교류라도 할 수 있도록 허용해달라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본부는 기자회견을 마친 후 기증인 유가족들과 함께 서울시청 인근에서 서신 교류 허용 촉구를 호소하는 가두 캠페인을 진행했다. 앞으로 장기이식법 개정 및 정부 시행령을 요구할 방침이다.
연합뉴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