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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낄낄낄] ‘권력의 문법’으로 읽어낸 조선 궁궐과 풍수의 관계

입력
2017.12.08 04:40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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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조거리에서 바라본 오늘날 광화문의 풍경. 이 정도 거리면 왕의 권능을 드러내기에 부족함이 없다. 사회평론 제공
육조거리에서 바라본 오늘날 광화문의 풍경. 이 정도 거리면 왕의 권능을 드러내기에 부족함이 없다. 사회평론 제공

거대한 자금성을 보고 오면 경복궁은 참 초라해 보입니다. 그래서 ‘우리 선조는 백성을 아끼고 사랑하고 자연과 더불어 하는 것을 기뻐하였기에 저렇게 작고도 평화로운 건물을 지었다’고 이야기합니다. 완전한 거짓말은 아닐 겁니다. 그러나 특수성에 대한 강조를 넘어선 집착은 사실, 열등감을 만회하기 위한 수단일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국립중앙도서관 학예사 이기봉이 써낸 ‘임금의 도시’는 경복궁 등 조선의 궁궐을 애민정신 같은 조선의 특수성이 아니라 훨씬 더 보편적인 ‘권력의 문법’으로 다시 읽어낸다는 점이 매력적입니다. 크기가 작다 한들, 조선의 궁궐 또한 왕궁인 이상 ‘절대권력의 장엄한 스펙터클 연출’에 심혈을 기울였다는 점에서는 별 다를 바 없다는 겁니다.

고층 빌딩이 흔해 빠진 오늘날에도 재벌 회장님들의 말년 사업이 거대 고층 빌딩이듯, 권력 과시 수단으로 높고 위압적인 건물만한 게 없습니다. 토목 건축 기술이 별볼일 없던 예전에는 이를 어떻게 구현했을까요. 자금성 같은 해외 궁궐들은 드넓은 평지에 묵직한 건물들을 배치하는 방식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조선은 다른 방법을 씁니다. 웅장한 건물의 역할을 뒷산에 떠넘깁니다. 북악산, 인왕산 등 조선 궁궐 주변의 주요 산들은 거대 화강암이 도드라진, 엄청난 근육질의 산이니 부족함이 없습니다. 이에 따라 백성들이 궁궐을 정면에서 바라봤을 때 ‘하늘 - 뒷산 - 궁궐’이라는 3단계의 수직적 이미지가 강렬하게 박히도록 건축물을 정교하게 배치했습니다. 이는 ‘하늘 – 땅 – 임금’의 구도이니 천지인(天地人)과도 일맥상통합니다.

조선시대 한양에는 남대문에서 광화문으로 가는 직선대로가 없었다. 때문에 남대문에서 광화문으로 가기 위해선 광통교를 지나, 운종로를 따라가다, 우회전하면 광화문을 만나게 된다. 시각적 스펙터클 연출을 위해 정교하게 계산된 동선이다. 사회평론 제공
조선시대 한양에는 남대문에서 광화문으로 가는 직선대로가 없었다. 때문에 남대문에서 광화문으로 가기 위해선 광통교를 지나, 운종로를 따라가다, 우회전하면 광화문을 만나게 된다. 시각적 스펙터클 연출을 위해 정교하게 계산된 동선이다. 사회평론 제공

문제는 뒷산이 강렬하고 건물이 작다 보니 멀리서 보면 궁궐의 존재감이 없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궁궐 가까이 가서야 비로서 궁궐을 발견할 수 있도록 길을 배치했습니다. 남대문에서 광화문으로 이어진 지금의 큰 길은 일제가 뚫은 겁니다. 조선시대에는 남대문에서 남대문로를 쭉 따라가 종로에 좌회전한 뒤 종로를 따라가다 우회전을 해야 광화문을 비로소 만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저자는 천지인 3단계 구조가 경복궁뿐 아니라 종묘ㆍ사직ㆍ창경궁ㆍ경희궁 등 조선의 다른 주요 건축물에도 어떻게 투영됐는지를 추적해나가면서 그 기원을 고려시대로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저자가 주목하는 건 풍수입니다. 땅의 기운, 곧 지기(地氣)는 풍수에서 꿈틀대는 용에 비유됩니다. 궁궐 뒤 뒷산이 하늘을 향해 치솟아 있다는 건, 용이 승천하는 모양새가 됩니다. 궁궐을 짓는 자가 의도한 시각적 스펙터클의 핵심은 바로 이것이었을 겁니다. 말하자면 ‘용비어천가’의 시각화인 셈이지요. 아무리 현명하다, 어질다, 애민정신에 투철했다, 덧칠을 해도 왕은 결국 왕일 뿐입니다.

조태성 기자 amorfat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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