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경에 신고 10여차례 통화
뒤집힌 배안 에어포켓서 버텨
평소 낚시를 즐기는 심모(31)씨는 친구 이모(32)씨, 정모(32)씨와 지난 3일 새벽 인천 영흥도 진두항에서 낚싯배 선창1호에 올랐다. 오전 6시 출발하면서 심씨 일행은 조타실 아래 작은 선실에 자리를 잡았다. 다른 낚시객들은 조타실 뒤 큰 선실에서 잠을 청하거나 밖에서 바람을 쐬고 있었다.
출항한지 5분만에 배가 ‘쿵’ 부딪히는 소리와 함께 순식간에 뒤집혔다. 선실을 빠져나갈 틈도 없었다. 선실로 들어오기 시작한 물은 금새 가슴까지 찼다. 죽었구나 생각했는데 다행히 선실 내에 숨을 쉴 수 있는 ‘에어포켓’이 만들어졌다. 6시11분 구명조끼 보관함 위로 올라 방수 휴대폰을 꺼내 112에 신고했다.
오전 6시 28분까지 해경과 6차례 통화를 하며 상황을 전했다. 오전 6시 32분 7번째 통화에서 “빨리 좀 와주세요”라며 애타게 구조를 요청하고, 자신의 위치가 표시된 지도사진을 캡처해 해경에 보내기도 했다. 당시 해경은 이미 사고 위치를 파악하고 있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공기가 희박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심씨는 오전 7시 12분 10번째 통화에선 “선수에 갇혀 있어요. 잠수부 불러야 돼요. 물이 많이 찼어요. 숨이 안 쉬어져요”라며 호흡 곤란을 호소했다. 해경은 “구조대가 10분 후면 도착합니다”라고 안심을 시켰으나 공기가 줄어든 것이 확연히 느껴질 정도로 갑갑했다.
평택구조대가 오전 7시 17분 현장에 도착했으나 인천구조대와 함께 구조작업에 나선 것은 오전 7시 36분. 6분 뒤인 오전 7시 42분 이뤄진 11번째 통화에서도 “숨을 못 쉬겠어요. 우리 좀 먼저 구해주면 안 되요?”라며 심씨는 신속한 구조를 바랐다.
하지만 여전히 구조작업은 이뤄지지 않았다. 구조사들이 진입로를 확보하기 위해 뒤엉킨 그물, 낚싯줄을 제거하고 다른 낚시객들의 시신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시간이 걸렸다. 구조대가 늦어지자 심씨는 “전화한지 2시간이 됐는데”라며 분통을 터뜨리기도 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썰물 때가 돼 물이 빠졌으나 추위는 가시지 않았다. 심씨는 추위를 호소하면서도 선체를 때려 위치를 알리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결국 오전 8시 48분 친구들과 함께 구조됐다. 사고가 난지 2시간 43분이 지난 시점이었다.
지난 3일 오전 6시 5분쯤 진두항 남서쪽 1.1㎞에서 선창1호가 급유선 명진15호에 받혀 뒤집혔고 선원과 낚시객 22명 중 15명이 숨졌다. 생존자 7명 중에 선내에서 구조된 것은 심씨 일행뿐이다.
이환직 기자 slamh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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