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 신군부에 쫓겨 美 유학
1987년 민주화 뒤 귀국
민교협 의장 등 ‘거리의 교수’로
“우리 이니라는 표현까지 등장
문재인 팬덤, 이해하지만 걱정”
“현 정부의 김상곤 부총리나 저, 그리고 ‘뉴라이트’라고 하는 김문수 전 경기지사, 이영훈 전 서울대 교수 같은 이들은 대학 시절 다 같은 서클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지향하는 바가 달라졌지요. 이 달라진 행보가 어떤 의미인지, 인물로 풀어낸 한국의 지성사 형식으로 한번 정리해보고 싶어요. 다루고 싶은 인물로 많고, 또 아주 재미난 내용이 많거든요.”
7일 서울 백범로 서강대 다산관 연구실에서 만난 손호철(65) 교수는 곧 있을 퇴임강연을 앞두고 책장에 가득 쌓인 짐 못지 않게 생각의 짐을 정리하느라 분주했다.
손 교수는 대표적 진보 정치학자로 꼽힌다. 서울대 정치학과를 거쳐 동양통신에서 기자로 일하다 전두환 신군부에 반대하는 언론계 모임을 주도하려 하려 한 그에 대한 보안사의 추격이 가까워지자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미주 한국일보에서 기자로 3년간 일하기도 하며 박사 과정을 밟을 때에는 한국에 오지 못하리라 생각했다. 그러다 1987년 민주화 뒤 귀국, 전남대를 거쳐 1994년 서강대에 자리잡았다.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민교협) 의장을 역임하는 등 ‘거리의 교수’로 살았다. 거리의 교수였기에 글도 이론적인 단행본 보다는 시사 이슈를 다룬 논문이나 언론 지면을 통한 정치평론을 많이 썼다.
이 때문인지 손 교수는 스스로를 ‘비주류의 비주류의 비주류’라 부른다. 반공우파에 한 번, 자유주의에 또 한번, 민족주의 좌파에 다시 한번 밀려난 진보주의자니까 비주류란 단어를 세 번 쓴 것이다. 이날 퇴임 강연 제목조차 ‘마르크스주의, 한국예외주의, 시대의 유물론’이다. 아직까지 마르크스주의냐는 질문에 손 교수는 “국가의 개입 없는 순수한 경제란 있을 수 없으며 모든 자본주의는 국가자본주의”라는 말로 답변을 대신했다.
진보주의자로서 지금도 손 교수는 노무현, 그리고 문재인 정부에 비판적이다. ‘우리 이니’라를 표현까지 등장한, 문 대통령에 대한 팬덤 현상에 대해서도 “노무현처럼 당하게 할 수 없다는 그 마음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걱정스러운 측면이 있다”고 선을 그었다. 욕 먹을 거 알지만 진보주의자는 그래야 한다고 믿는다. 그럼에도 손 교수는 자신이 혜택받았다고 인정한다. 비주류의 비주류의 비주류지만, 버젓한 대학의 정규직 교수로 일해올 수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 젊은 후배들에게 미안하다고도 했다.
퇴임 즈음 가장 아쉬운 점은 진보학자의 유리천장을 더 깨지 못했다는 점이다. 알게 모르게 방송뉴스 앵커자리, 한국정치학회장처럼 얼굴을 널리 알릴 수 있는, 소위 감투 쓰는 자리를 권유 받았지만 모두 피했다. 그때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글을 독하게 쓰는 진보적 학자에게 저런 자리를 맡겨도 오히려 유연하게 더 잘 해낼 수 있다는 점을 내가 보여줬었어야 했다”며 아쉬워했다.
퇴임 고별 강연장으로 향하는 손 교수는 학부생들이 입고 다니는, 학교 로고가 찍힌 흰색 점퍼를 걸쳤다. 고별 강연인데 좀 차려 입지 그랬느냐는 주변의 지청구에 “내가 언제 이걸 또 입어보겠어요?”라며 씩 웃었다. 열강 끝에 손 교수는 프랭크 시내트라의 올드 팝송 ‘마이 웨이(My Way)’를 열창했다. “너무 좋아하는 곡이지만 맨 정신에 불러보는 건 처음”이라 했지만 떨림은 없었다.
조태성 기자 amorfat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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