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동맹국 비판ㆍ불만 쏟아져
“트럼프 정책 탓 협력 삐걱”
안보리 8일 긴급회의 개최
나토 회의 이어 美 성토장 예고
북핵 대응 구심점 흐트러질 우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예루살렘을 이스라엘 수도로 공식 선언한 6일(현지시간) 벨기에 브뤼셀에서 진행되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ㆍ나토) 회의는 트럼프 정부를 향한 동맹국들의 성토장이 됐다. 트럼프 정부의 외교정책이 동맹들에조차 신뢰받지 못하고, 리더십 실추를 자초하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급기야 동맹국들과 잦은 불협화음으로 인해 미국이 최우선 과제로 여기는 북핵 대응에서도 국제적 압박을 추동하는 트럼프 정부의 리더십이 흔들릴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중동국가들을 격분케 하고, 동맹들의 불만을 초래하면서 자칫 트럼프 정부의 북핵 대응을 위한 집중력이 크게 영향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백악관 회견을 통해 “이제 공식적으로 예루살렘을 이스라엘 수도로 인정할 때”라며 “이스라엘은 다른 주권 국가와 마찬가지로 자신들의 수도를 결정할 권리를 가졌다. 이를 사실로 인정하는 것이 평화를 얻는 필요 조건”이라고 밝혔다. 그는 “전임 대통령들은 공약을 지키지 못했지만 나는 지킨다”며 대선 공약 이행을 거듭 부각시켰다. 그는 그러면서도 “중동 평화 촉진에 깊이 헌신할 것”이라고 공언했다.
하지만 지구 반대편 미국의 든든한 동맹 지역인 유럽에선 전혀 다른 목소리들이 쏟아졌다. 워싱턴포스트(WP) 등에 따르면 메블뤼트 차우쇼을루 터키 외교장관은 이날 렉스 틸러슨 미 국무장관과의 양자 회담에 앞서 트럼프 대통령의 예루살렘 수도 인정에 대해 “심대한 실수”라고 비판했고, 보리스 존슨 영국 외교장관은 촬영을 위해 틸러슨 장관과 함께 선 자리에서 “미국은 중동 평화를 위한 계획을 즉시 제시해야 한다”고 다그쳤다. 페데리카 모게리니 유럽연합(EU) 외교안보 고위대표는 이날 틸러슨 장관 옆에서 트럼프 정부의 이란 핵합의 불인정에 대한 불만도 공개적으로 드러냈다.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등 유럽 각국 정상들은 개별적 성명을 통해 예루살렘 수도 인정에 대한 반대 의사를 밝혔고 프란치스코 교황도 “모든 나라가 유엔 결의에 따라서 예루살렘의 현상태를 존중하기를 마음깊이 호소하고 싶다”며 우려를 표명했다.
틸러슨 장관은 이날 회견에서 “대통령은 중동 평화 협상에 매우 헌신하고 있다”고 말했으나, 중동의 화약고에 불붙인 결정과 앞뒤가 맞지 않는 맥빠진 해명이다. WP에 따르면, 틸러슨 장관과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은 애초 예루살렘 수도 인정 결정을 반대했다. 미국 외교 책임자가 중요 외교 정책의 의사 결정에서 배제되고, 교체설까지 무성한 까닭에 동맹국 누구도 설득시키기 어려운 상황이다.
특히 틸러슨 장관이 브뤼셀에 간 임무 중에는 북핵 대응을 위해 중국에 대한 압박에 나설 것을 촉구하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고 ABC방송은 전했다. 하지만 그는 나토의 방위비 분담 증가도 함께 요구해 트럼프 정부의 모순적인 외교 정책의 현주소만 보여준 셈이다. 지그마르 가브리엘 독일 외교장관은 “트럼프 정부의 이런 정책이 미국과 유럽연합간 유대를 삐걱거리게 만든다”고 말했다.
중동에서도 당분간 미국의 리더십 약화는 불가피해졌다. 중동 맹주 자리를 놓고 이란과 주도권 경쟁을 벌이는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해 요르단, 이집트 등 친미 성향 국가들은 미국이 노골적으로 이스라엘 편을 들면서 당혹스러운 상황을 맞아서다. WP는 이들 국가도 지난 주말까지 트럼프 대통령의 결정을 알지 못했다고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전날 가진 압둘라 2세 요르단 국왕과의 통화도 자신의 결정을 통보하는 “일방적 대화였다”고 정부 관계자를 인용해 WP가 전했다. 일각에선 이번 결정으로 중동에서 이란과 러시아의 영향력이 더욱 커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유엔 안보리는 미국의 예루살렘 결정 후폭풍을 논의하기 위해 이집트 프랑스 영국 스웨덴 등 8개국의 요청으로 8일 긴급회의를 갖는다. 미국 주도로 북핵 대응의 구심점이 되어야 할 안보리가 미국에 대한 성토장이 될 상황이다. ‘예루살렘 이슈’가 장기화해 중동 정세가 더욱 불안정해지면 북핵 대응에 집중해야 할 미국의 외교적ㆍ군사적 역량도 흐트러질 소지가 있다는 지적이다.
워싱턴=송용창 특파원 hermee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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