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현대자동차는 세계적인 모터스포츠 경주인 WRC에 참가해 좋은 성적을 낸 뒤 축적한 경험을 통해 i30N TCR, i20 R5 등 국제 기준에 맞는 경주차까지 제작했다. 그 중 i30N TCR 경주차는 올해 처음 도전한 TCR 경기에서 데뷔 전 우승을 차지하며 경주차 제조사로서의 능력마저 입증했다.
반면 국내에서는 프로 모터스포츠에서 한 발 빼는 모습을 보였다. 프로 모터스포츠 경기인 코리아스피드페스티벌(이하 KSF)을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트랙데이로 바꾸고, 아마추어 원메이크 레이스인 ‘현대 아반떼컵 레이스 시리즈 (이하 아반떼컵)’을 운영하고 있다
해외 모터스포츠에서 잘 나가는 현대가 국내에서는 프로 모터스포츠 대신 아마추어와 일반인을 위한 모터스포츠 ‘맛보기’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현대 모터스포츠팀을 총괄하고 있는 이종권 팀장을 만나 직접 물었다.
Q. 프로 레이스로 운영하던 KSF를 일반인 대상의 트랙데이와 아마추어 원메이크 레이스로 바꾼 이유는?
국내에 카 레이싱이 열린 지 30년이 넘었다. 투어링카, 포뮬러, 오프로드 등 다양한 경기를 치루기 위해 많은 분들이 노력했음에도 꾸준히 관객을 동원하는 경기는 찾아보기 어렵다. CJ가 후원하는 슈퍼레이스만 10년 넘게 유지되고 있는 중이다. 모든 스포츠 경기가 후원 없이 유지되기는 어렵다. 그런데 그 후원은 관객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프로 스포츠는 관객이 있어야 성장할 수 있다.
과거 우리는 KSF를 운영하며 관객을 늘리기 위해 많은 투자를 했다. 대표적인 게 ‘더 브릴리언트 모터 페스티벌’이다. 인천 송도에 도심 서킷을 만들고 연예인을 초청해 콘서트를 비롯한 다양한 행사도 진행했다. 모터 페스티벌 자체는 10만이 넘는 관중이 몰리며 성공적으로 진행됐지만, 함께 진행된 KSF 경기를 보는 관객은 기대만큼 많지 않았다. 국내 모터스포츠의 발전을 위해 다른 방법을 찾아야겠다고 생각했다.
Q. 모터 페스티벌은 축제 아닌가? 그래서 방향성을 새롭게 잡은 건가?
이유를 찾으려 모터스포츠 관계자들과 인터뷰를 진행했다. 근본적인 원인분석(Root Cause Analysis) 기법을 써서 이유가 바닥이 날 때까지 되물었다.
‘왜 관객이 없을까?’
‘재미가 없어서!’
‘왜 재미가 없나?’
‘경주차 성능이 떨어져서, 선수의 역량이 별로라서, 프로모터가 제대로 하지 않아 진행이 엉망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해결 방법은 무엇일까?’
‘오피셜부터 선수들까지 좀 더 전문적으로 바뀌고, 경주차도 훨씬 좋아야 한다. 투자도 더 필요하다.’
‘그럼 돈은 어떻게 구할 건가?’
‘스폰서가 내야 한다’
‘왜?’
‘관객이 있으니까’
‘지금 모터스포츠 관객이 적어서 문제 아닌가?’
답을 찾지 못하고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는 질문과 답변을 반복했다.
우리는 엉뚱하게도 ‘프로 골프’에서 답을 찾았다. 프로 골프 중계야말로 골프 경기를 모르면 30분도 참고 보기 어렵다. 그런데 골프 중계는 그 긴 시간에도 많은 사람들이 본다. 그건 직접 골프를 쳐 봐서 알기 때문이다. 경험을 해보고 나서야 프로 선수들이 하는 경기 중계를 보는 거다. 안 해본 사람 입장에서는 다른 사람이 하는 걸 봐도 의미가 없다.
Q. 골프와 자동차 경주의 유사성을 찾아낸 것인가?
자동차 경기를 안 해본 사람은 F1을 봐도 지루하다. 처음이야 맹렬한 사운드나 속도감에 감탄할 수는 있다. 그러나 세 랩을 넘기기 힘들지 않나? 바로 그것이다. 직접 해본 경험이 있어야 관객이 된다. 모터스포츠를 경험 해보고 프로 선수들과 비교도 해보고 규정을 알면서 봐야 재미를 느낄 수 있다.
그래서 드라이빙 스쿨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게 바로 ‘현대 드라이빙 아카데미’다. 프로그램은 기초과정인 안전 운전 교육부터 스포츠 주행, 레이싱 클래스까지 단계별로 있다. 드라이빙 아카데미에서 배운 사람들이 실제로 트랙을 달려볼 수 있도록 KSF에 ‘트랙데이’를 만들었다.
교육을 통해 운전자의 수준을 높이고, 다음 단계까지 올라가는 사람들이 모터스포츠를 즐기고, 그래야 이들이 관객이 된다. 이게 우리 회사가 국내 모터스포츠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방향이라고 생각했다.
Q. 그 말은 현대와 프로 모터스포츠의 결별을 의미하는가?
우리의 역할은 운전자들에게 운전 교육 기회를 제공하고, 서킷을 달릴 수 있도록 트랙데이를 열고, 적은 비용으로 아마추어 원메이크 레이스에 참가하도록 이끌어주는 것이라고 판단했다. 딱 여기까지가 일반인의 취미 생활로서 즐길 수 있는 모터스포츠다.
현대가 이런 역할을 하고, 국내 프로 모터스포츠는 각 프로모터들이 맡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모터스포츠 관람객 자체가 적은데 프로 모터스포츠 경기를 여러 개로 나눠 서로 관객과 선수, 프로 팀을 유치하느라 경쟁해서는 안 된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국내 프로 모터스포츠는 슈퍼레이스를 10년 째 운영 중인 CJ에게 부탁한 것이다. CJ 역시 우리의 생각에 동의해 기존 KSF에서 뛰던 선수들이 슈퍼레이스로 갈 수 있도록 함께 방법을 모색했다. 그리고 XTM 채널을 보유한 CJ 자회사에게 방송을 통한 모터스포츠 활성화를 부탁했다. 인제 스피디움과 영암 코리아인터내셔널서킷(이하 KIC), 용인 에버랜드 스피드웨이 등 서킷에도 협력을 부탁했다. 이렇게 방법을 바꿔서 한 10년만 잘 해보자고 했다.
Q. 10년 동안의 구체적인 목표가 있는가?
현재 트랙데이를 즐기는 인원은 스피디움과 KIC 트랙 주행 라이선스 보유자를 기준으로 6천 명 정도로 추정하고 있다. 우리의 노력으로 10년 동안 트랙을 즐기는 인구를 10만 명까지만 올리자는 게 목표다. 그러면 모터스포츠를 접해보고 재미를 느끼는 사람이 적어도 1만 명은 고정적으로 생길 것이다. 언더백 레이스나 짐카나 경기에 참가하는 선수가 1만 명은 생겨나는 상황이 멋지지 않겠나? 일단 지금의 목표는 이 정도다.
Q. 현대 모터스포츠팀의 2017년 국내 성과를 스스로 평가한다면?
올해 국내에서 진행한 모터스포츠 프로그램은 원메이크 레이스인 ‘아반떼컵’과 KSF ‘트랙데이’, ‘현대 드라이빙 아카데미’ 등 세 가지다. 이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참가자의 정말 많은 ‘해피 페이스’를 봤다. 모두 매우 성공적이었는데 그 중에서도 드라이빙 아카데미 참가자들이 열렬한 응원을 해줬다. 다들 교육이 끝나고 돌아가며, “잊을 수 없게 행복했다”, “이런 재미는 처음 알았다”라고 말하며 하이파이브까지 해준다.
두 번째 수확은 ‘아반떼컵’의 성공이다. 경기에 참가할 수 있도록 세팅된 아반떼 스포츠 모델이 100대 넘게 판매됐다. 아반떼컵 ‘마스터즈 레이스’와 ‘챌린지 레이스’를 합쳐 70대 정도를 예상했는데 등록된 엔트리 기준으로 100대가 넘었다. 특히 평균 30대 정도의 참가 대수를 예상한 챌린지 레이스는 50대가 넘게 참가하여 2개로 나누어 운영을 하게 됐다.
예상보다 참가자가 많아서 성공이라는 게 아니다. 아반떼컵 참가자들을 보면 정말 사이가 좋고 함께 모터스포츠를 즐기고 있다는 게 느껴진다. 오히려 추월이나 치열한 접전은 드물다. 13바퀴 내내 같은 순위여도 참가자들이 너무 행복해 한다. 그래서 우리가 더 고마웠다.
Q. 아반떼컵 참가 선수 중 일부가 ‘차가 의도대로 움직이지 않아 재미가 없다’며 떠난다는 얘기를 들었다.
아반떼 스포츠를 TCR 경주차에 가깝게 만들어 주는 거, 해줄 수는 있다. 그러면 그 차는 5천만 원이 되고 경기 참가에 소요되는 비용은 약 세배가 될 것이다. 그리고 세 경기마다 ‘오버홀’을 해야 할 거다. 이걸 다 감당하면서 경주하는 건 아마추어 원메이크 클래스가 아니다. 그런 걸 원한다면 GT1, GT2 클래스로 올라가면 된다. 우리는 '저비용 구조'를 만든 거다. 낮은 비용으로 원메이크 레이스를 즐길 수 있도록 해준 거다.
예전에 K3쿱 챌린지 레이스에서 상위 그립 타이어를 끼워 경기를 진행해봤다. 차체가 틀어지고 부싱이 망가지는 등 문제가 많았다. 원메이크는 평소에 자기가 타고 다니는 차로 나오는 경우도 많다. 그렇게 부담이 되는 상황은 의미가 없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어서 레이스카는 그렇게 타고 버려도 되니 싸게나 고쳤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럼 윗급으로 가는 게 맞다.
Q. 아반떼컵은 철저하게 아마추어 경기를 추구하나?
국내에서 현대자동차가 모터스포츠를 계획하는 건 원메이크를 포함해 일반인의 취미 활동 지원까지다. 모터스포츠를 업으로 삼으려면, 프로팀으로 가는 게 맞다. 정말 실력이 뛰어나 선수가 되고 싶다면 아마추어 클래스에서 ‘양민 학살(웃음)’하지 마시고 빨리 프로로 올라가라.
우리는 유망주를 발굴해 교육하는 ‘현대 모터스포츠 드라이버 육성 프로그램(HMDP)’이 있다. 국내에서는 WRC 드라이버를 뽑는 랠리스트 오디션 방송으로 임채원 선수가 선정됐다. 앞으로도 WRC 유망주를 육성하는 계획의 일환으로 HMDP를 운영할 예정이다. 우리가 프로를 키우지 않겠다는 건 아니다. 실력을 키워서 여기(HMDP)까지 오면 된다.
Q. 국내 선수를 특별히 지원할 계획은 없나?
갑자기 누군가가 혜성처럼 나타나 아무 것도 없이 전세계의 톱이 되는 건 운을 바라는 거다. 로또 같은 거지 꾸준히 돈을 모으고 투자하는 방식이 아니다. 누가 톱 클래스가 될 거라 요행을 바라고 뽑는 건 바람직한 투자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참가 선수가 점점 늘어나 한 급 높은 클래스로 진출한 뒤 한계에 부딪히면 돌아와서 다시 후진을 양성해 다시 도전하고, 그러다 보면 톱 드라이버가 나올 거다. 자연스러운 투자 과정 없이 갑자기 짧은 시기에 톱 클래스 선수를 바라는 건 운에 매달리는 거다.
인정할 건 인정해야 다음 스텝이 있다. 그래서 지금부터라도 입문형 모터스포츠를 하자는 게 현대 모터스포츠팀의 생각이다.
Q. ‘i30N TCR’은 왜 국내에 팔지 않는가?
국내에서도 i30N TCR을 살 수는 있다. 다만 현대 모터스포츠 독일법인을 통해 구매해야 한다. i30 N TCR은 별도의 법인에서 제작하고 판매하는 차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중간에서 연결해주고 도움을 줄 수는 있다.
Q. 현대자동차 본사가 ‘i30N TCR’ 국내 임포터 역할은 안 하는가?
마침, TCR KOREA가 개최된다는 발표가 됨에 따라 구입 문의가 쇄도하고 있다. 구매자가 많아지면 임포터가 필요하다고 인지는 하고 있지만, 아직 문의에 그치고 있어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고 있지는 않다.
Q. TCR 코리아가 출범했다. TCR 코리아 경기에 워크스팀으로 참가하거나 다른 방식으로 협력할 계획이 있는가?
우리는 어디까지나 TCR 경주차를 판매하는 제조사 입장이다. TCR 경주차를 구매한 고객을 위해 테크니컬 서비스, 셋업 데이터 제공 등의 지원을 한다. 즉 TCR 경기 자체가 아니라 TCR 경주차를 구매하 경기에 참가하는 ‘커스터머’을 지원하는 거다. TCR은 ‘커스터머(고객) 레이싱’이기 때문이다.
국내에 다른 완성차 브랜드의 TCR 경주차도 들여온다고 알고 있다. 그런 경주차들과 함께 TCR 경기에 참가하는 경주차를 공급하고, 우리 경주차를 구입한 선수가 우수한 성적을 낼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우리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커스터머 레이싱에 워크스팀으로 참가하거나 경기 자체를 열거나 직접 관여하는 방식은 우리가 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Q. 아반떼컵에 참가하는 선수들의 피드백을 직접 받는가?
물론이다. 아반떼는 다양한 테크니컬 트러블이 있었다. KIC에서 충분히 담금질했다고 생각했는데, 인제 스피디움에 오니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하더라. 예를 들면 엔진오일 역류 건이 있다. 인제 스피디움의 특정 코너, 내리막에서 돌아나가는 구간에만 뭔가 원심력과 중력이 맞물려 작용할 때 오일이 그렇게 파도가 치나 보더라. 사실 이게 오일 패스의 각도만 90도 정도 틀면 되는 거였다. 이걸 바꾸고는 더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다. 이 외에도 배터리 누액이 있었는데, 배터리 숨구멍으로 황산이 흘러나왔다. 이것 또한 개선했다. 터보 부스트 프로그램 문제도 찾아내 로직 개선으로 고쳤다. 레이스 참가 선수들과 아반떼 스포츠를 타는 고객의 피드백이 제품 개선에 큰 도움이 됐다.
사실 회사의 양산품질 기준에 와인딩과 트랙을 타는 걸 고려한 조건이 없다. 예를 들면 양산차에는 무거운 배터리를 받치는 철제 받침에 대한 품질 조건 중 횡G에 견디는 기준은 빠져있다. 하지만 스포츠 주행을 위한 차종은 저런 조건들도 추가되어야 한다.
경기를 하고 선수들의 의견을 들으며 트러블 슈팅을 하고 있다. 모터스포츠의 노하우가 자동차 만드는데 들어가서 좋은 차 만드는 기준이 되고 있는 거다. 이제 우리는 KIC 만이 아니라 인제 스피디움에서도 테스트를 하고 있다.
Q. 2018년 국내 모터스포츠 운영 계획은?
트랙데이와 드라이빙 아카데미 등 일반인이 참가할 수 있는 기회를 늘릴 예정이다. 더 많은 사람들이 경험할 수 있도록. 올해 토요일 하루만 진행하던 것을 주말 이틀로 늘린다거나, 횟수 자체를 늘리는 방법도 고려 중이다. 아직 논의 단계로 확실하게 정해진 것은 없다.
내년에는 아반떼 스포츠보다 상위 클래스도 검토중에 있다. 아직 상반기가 될지 하반기가 될지 결정되지 않아 미리 말씀 드리기는 어렵다. 내년 규정 역시 아직 작업 중이다. 확실한 것은 2018년 아반떼컵은 올해처럼 마스터즈와 챌린지로 나눠서 진행한다는 점이다.
올해 아반떼컵에 엔트리 기준으로 127명이 참가를 했다. 내년에는 참가자가 좀 더 늘지 않을까 싶어 다양한 방법을 고려 중이다. 챌린지 1, 챌린지 2 이렇게 나누거나, 마스터즈 레이스 승급 인원을 조절할지도 모른다. 지금 챌린지 레이스는 KSF 트랙데이와 함께 진행하는데 필요하다면 다른 대회의 서포터로 붙이는 것도 검토 중이다.
트랙데이와 함께 운영하는 챌린지 레이스 특성 상 참가자가 계속 늘어나면 트랙데이 시간을 뺏을 수 밖에 없다. 그러면 트랙데이 일반고객들의 참여 기회가 줄어든다. 지금도 트랙데이를 열면 140명 동반인 합쳐 모두 250명 정도가 온다. 접수하자마자 일주일 이내에 정원이 차는데 신청이 늦으면 기회가 없어서 아쉬워한다. 그래서 내년은 하루가 아니라 이틀로 확대하는 걸 검토 중이다.
두 번 정도는 아반떼 마스터즈와 챌린지 레이스의 통합전을 생각 중이다. 모든 클래스를 섞어 경기를 진행하는 게 아니라 같은 날, 같은 장소에서 연다는 것이다. 상반기는 내구레이스로 진행하려고 논의 중이며, 하반기는 챔피언 결정전이라는 타이틀로 함께 진행하는 방향으로 고려하고 있다.
박혜연 기자 heyeu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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