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안컵 역대 사령탑 희비
월드컵 앞둔 1998년 대회서
차범근 3.1절 패배로 경질론까지
허정무는 2010년 중국에 완패
나흘 뒤 일본 꺾고 분위기 반전 성공
“일본에 지면 선수단 모두가 현해탄(대한해협)에 몸을 던지겠다.”
1954년 스위스 월드컵 최종예선 한일전을 앞두고 이유형 국가대표 감독이 이승만 대통령에게 한 약속이다. 시대가 변했다. 요즘 한일전은 ‘비장함’이 철철 흐르지는 않는다. 그래도 한일전의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다.
신태용(48) 감독이 이끄는 축구대표팀이 2017 동아시아축구연맹(EAFF) E-1 챔피언십(한중일이 2년에 한 번씩 번갈아 개최하는 대회. 이하 동아시안컵) 참가를 위해 6일 출국했다. 한국은 9일 중국, 12일 북한, 16일 일본과 차례로 맞붙는다. 가장 큰 관심은 역시 대회 마지막 날 열릴 한일전이다. 한일전은 역대 국가대표 감독들의 ‘운명’을 좌지우지하기도 했다.
1978년 당시 함흥철 감독은 3개 대회(아시안게임, 메르데카, 박스컵)를 우승하고도 1979년 첫 경기에서 일본에 1-2로 져 물러났다. 조광래(63ㆍ대구FC 사장) 감독도 2011년 8월 일본과 원정 친선경기에서 0-3으로 완패한 이른바 ‘삿포로 참사’가 빌미가 돼 경질됐다.
동아시안컵에서도 한일전 결과에 따라 한국 사령탑들의 희비가 엇갈린 적이 많다.
대표적으로 아픔을 겪은 사람은 ‘차붐’이다. 차범근(64) 감독은 ‘도쿄대첩’으로 잘 알려진 1997년 9월 일본과 1998 프랑스 월드컵 아시아 지역 최종예선에서 2-1 역전승으로 ‘국민 영웅’ 대접을 받았다. ‘차범근을 대통령으로’라는 구호까지 나왔다. 3개월 뒤 잠실 홈경기에서 일본에 0-2로 패했지만 일찌감치 본선 티켓을 따놓은 상황이라 별 탈 없이 넘어갔다. 문제의 한일전은 1998년 3월 다이너스티컵(동아시안컵의 전신)이었다. 일본은 2002 한일 월드컵 결승을 치를 요코하마국제종합경기장(현 닛산 스타디움)을 막 완공해 개장 경기로 다이너스티컵 한일전을 준비할 만큼 야심 차게 움직였다. 날짜도 공교롭게 3ㆍ1절이었다.
반면 차 감독은 그 해에 열릴 프랑스 월드컵을 대비해 다이너스티컵 직전까지 강도 높은 체력 훈련과 해외 전훈 등 빡빡한 일정을 소화했다. 거스 히딩크(69) 감독이 2002 한일월드컵이 열리던 해에 파워 프로그램으로 선수들 체력을 단련시켜 4강 신화의 기초를 닦았던 것과 비슷한 프로젝트였다. 한국 선수들은 일본과도 싸우기도 전에 녹초가 됐고 설상가상 홍명보(48ㆍ대한축구협회 전무)와 하석주(49ㆍ아주대 감독)까지 다쳐 결국 1-2로 무릎을 꿇었다. 1998년 11월 패배에 이어 3ㆍ1절에 일본에 지자 ‘국치일’이라는 말이 나왔다. 성급한 일부 언론은 차 감독 경질론까지 언급했다. 차 감독은 1998년 4월 잠실에서 열린 ‘2002 월드컵 공동개최 기념 한일전’에서 2-1로 승리해 불붙은 여론을 겨우 잠재웠다.
반대로 허정무(62) 감독은 동아시안컵 한일전이 ‘구사일생’이 된 경우다. 2010 남아공 월드컵이 열리던 해 2월에 일본에서 동아시안컵이 열렸다. 한국은 2차전에서 중국에 힘 한 번 못 써보고 0-3으로 완패했다. 32년 간 이어져오던 공한증이 깨졌고 팬들의 비난이 빗발쳤다. 그러나 한국은 나흘 뒤 설날에 적지에서 일본을 보기 좋게 3-1로 눌러 분위기 반전에 성공했다. 이번 동아시안컵은 월드컵을 얼마 남겨놓지 않고 일본에서 벌어진다는 점에서 여러모로 차붐, 허정무호를 떠올리게 한다. 과연 신 감독은 국가대표 지휘봉을 잡고 치르는 첫 한일전에서 어떤 성적표를 가지고 돌아올까.
윤태석 기자 sportic@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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