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동과 별개로 23개 생활권 마을이름 순 한글로 지어
어감 이상해 민원 일어 변경하기도
세종시 행정중심복합도시(행정도시) 4-1생활권(반곡동)의 마을 이름은 ‘수루배’다. 연기군 지역에 전래되는 순 우리말 명칭으로, ‘수로 가에 논배미(논두렁으로 둘러싸여 다른 논과 구분되는 논의 하나하나의 구역)가 있는 들’을 의미한다.
행정도시 2-4생활권(나성동)은 ‘나릿재마을’로 불린다. 나성리에 있는 토성주변에 있는 마을로, ‘냇가에 있는 성’이라는 뜻이다. 행정도시건설청은 지역에 전래되는 순 우리말 명칭 가운데 조음의 효율성과 어감 등을 따진 끝에 마을 명칭을 나릿재로 지었다.
세종시 행정도시의 마을 이름은 모두 순 우리말로 지어진 이른바 ‘우리말 종합세트’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4일 행정도시건설청에 따르면 행정도시 내 23개 생활권의 마을 명칭을 법정동과 별개로 모두 순 우리말로 제정했다.
건설청이 법정동 이외에 마을 이름을 별도로 제정한 이유는 공동체 문화 형성을 유도하고, 자칫 위화감이나 이질감이 생길 수 있는 아파트의 브랜드명을 외벽에 표기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한글을 창제한 세종대왕의 뜻을 계승한다는 취지도 순 한글 마을 이름 제정의 배경이다.
건설청은 전문기관에 의뢰해 나온 연구용역 결과와 공모, 전문가들로 꾸린 마을명칭제정자문위원회 등을 거쳐 마을 이름을 지었다. 명칭은 순 우리말을 사용하되 법정동과 달라야 하고, 옛 지명을 최대한 활용한다는 원칙을 지켜 정했다.
그렇게 탄생한 마을 이름을 보면 생소하지만 아름다운 순 우리말이 많다. 옛 연기군 방축리였던 1-4생활권(도담동) 마을 명칭은 ‘도램’이다. 이 곳은 예전에 지형이 황소의 뚜레(고삐)처럼 생겼다고 해서 예전엔 도램말이라고 불렸던 곳이다. 연기군 시절 송원리였던 2-2생활권(새롬동) 마을 이름은 ‘새뜸’이다. ‘새로 닦은 터’라는 의미로, 행정도시 개발로 새로운 마을이 태어났다는 뜻으로도 풀이할 수 있다. 3-1생활권(대평동)은 해가 따스하게 드는 마을의 이미지와 풍요로운 마을을 상징하는 ‘해들’로 마을 이름을 정했다. 해들마을엔 세종대왕의 해시계 발명 업적을 되새긴다는 의미도 담았다는 게 건설청의 설명이다.
‘새로 판 샘이 있는 골짜기’를 의미하는 새샘마을(3-3생활권), 산의 모양이 용과 같다 해 붙여진 미리재마을(5-3생활권), ‘오리목처럼 생긴 고개’로 중요하고 좁은 곳을 의미하는 올목마을(6-4생활권)도 익숙하진 않지만 눈에 띈다. 세종시청이 있는 3-2생활권은 ‘산으로 둘러싸인 마을의 안쪽이 넓고, 입구가 좁은 게 병의 목과 같고, 금강이 여울졌다’는 지형 특성을 살려 호려울마을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과거 월산리였던 6-1생활권은 ‘산등성이가 들판 쪽으로 튀어나온 고개 밑에 있는 마을’이라는 특성을 살려 ‘꽃재마을’이라는 이름을 지었고, S-1생활권은 ‘산모퉁이를 휘어 돌린 곳’이라는 의미의 ‘모롱지 마을’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다.
전문가와 주민들의 의견을 반영해 마을 이름을 정했지만, 어감이 좋지 않아 민원이 쇄도하면서 마을 이름이 바뀐 경우도 있다. 2-1생활권(다정동)의 애초 명칭은 ‘골짜기 사이’ 등을 의미하는 샛골이었다. 하지만 주민 사이에 ‘발음이 성적 뉘앙스를 풍겨 민망하다’는 지적이 나왔고, 수정해 달라는 민원까지 제기됐다. 이에 건설청이 명칭제정자문위가 대안으로 제시한 가온마을(지역 전래 명칭인 ‘가운데 말’에서 유래)과 선돌마을(지역에 전래되는 바위가 서 있던 마을 이름을 딴 것)을 놓고 입주예정자를 상대로 의견을 물은 결과 95%가 선호한 가온마을로 명칭을 변경했다. 이는 제정된 마을 명칭이 변경된 첫 사례다.
건설청 관계자는 “행정도시의 도시명인 ‘세종’ 뿐만 아니라 마을 등 각종 명칭도 한글을 창제한 세종대왕의 뜻을 이어간다는 취지로 정했다”며 “앞으로도 마을 명칭과 관련해 주민 등의 제안이 있다면 적극 수렴해 필요하다면 변경 등의 조치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최두선 기자 balanced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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