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형식 국립중앙의료원 감염병연구센터장
지난 1일은 30회를 맞은 세계보건기구(WHO)가 정한 ‘세계 에이즈의 날’이다. 에이즈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갈등을 줄이려는 노력이 전 세계적으로 이어지면서 에이즈 감염인이 줄어들고 있다. 다행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부산 에이즈 사건’에서 보듯이 우리나라는 아직도 환자를 죄인시하는 등 편견이 여전하고 이해도도 낮다.
게다가 우리나라에서 HIV 감염인은 늘어나고 있다. 질병관리본부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에이즈 감염인이 2.6배 증가했다. 2016년 신규 감염자는 1,199명으로 10년 전보다 1.5배나 많고, 최근 5년간 신규 감염인이 전체 누적 감염인의 절반에 이른다. 진단되지 않은 환자를 포함하면 훨씬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질병이해도가 낮아 진단이 늦어지고 치료시기를 놓치는 일이 빈번해지고, 에이즈에 대한 잘못된 인식으로 치료 받지 않는 사람도 적지 않은 실정이다.
1981년 미국에서 처음으로 동성애자에서 발생해 에이즈라는 병명이 붙여졌을 때부터 감염인에 대한 사회적 편견이 시작됐다. 에이즈가 HIV 바이러스로 인한 감염병이라는 사실이 의학적으로 밝혀졌음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편견은 없어지지 않고 있다.
최근 우리나라 감염인들에게 자신들이 경험하는 사회적 낙인과 차별을 조사한 결과(‘HIV 낙인 지표 조사’)가 나왔다. 국내 HIV 감염인들은 자신이 느끼는 부정적인 평가와 감정인 내적 낙인(internalized stigma) 수준이 미국이나 유럽은 물론 동남아ㆍ아프리카보다 크게 높았다. 에이즈에 대한 우리 사회의 편견이 감염인에게 내면화됐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는 늦은 진단과 치료시기를 놓치는 결과로 이어졌다.
서아프리카에서 에볼라 바이러스가 유행했을 때 에볼라에 대한 편견과 낮은 이해도로 인해 창궐이 더 심해졌다. 최근 마다가스카르에서 페스트가 유행했지만 병원 치료에 대한 두려움으로 감염인들이 제대로 치료하지 않아 환자가 더 많이 생겨났다.
1987년 HIV 바이러스 치료제가 개발되고, 1996년에는 강력한 고효능 병합 항레트로바이러스 치료가 도입되면서 감염인 생존율이 높아졌고 바이러스의 전파력도 사라졌다. 효과적인 항바이러스 치료는 감염인의 혈액 내 바이러스 역가를 측정되지 않을 정도로 아주 미미한 수준으로 낮춰 전파 가능성을 0%에 가까이 줄였다는 연구결과도 많다.
과거 한 움큼씩 먹어야 했던 치료제도 이제 하루 한 알, 식사에 관계없이 먹어도 바이러스를 효과적으로 억제할 수 있게 됐다. 효능도 우수하고 부작용도 극히 적은 약이 개발돼 감염인의 삶의 질이 정상인과 비슷하게 회복됐다. 이젠 완치약에 대한 기대감을 가질 정도다.
하지만 국내 에이즈 감염인에 대한 오해와 편견은 30여 년 전과 크게 다르지 않다. 감염인들이 두려움없이 병원을 찾고 적극적으로 치료할 수 있도록 우리 모두 에이즈에 대해 정확히 이해하고 감염인을 따듯하게 포용하는 사회 환경을 만들어야 할 때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