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쓰는 일로 찾아뵙는 일은 좀 줄이고, 더 신중한 작품들로 여러분을 찾아뵙겠습니다.”
배우 유아인이 3일 “저의 일이 불러온 파장을 안다”며 이같이 밝혔다. 이른바 ‘애호박’ 발언으로 촉발된 여성 비하 논란 등 그를 둘러싸고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1주일째 지속된 논쟁을 스스로 끝내려는 의지로 보인다.
유아인은 이날 SNS에 “다양한 집단과 충돌해 보았다”며 “계란 같은 내가 바위 같은 세상과 충돌하며 만든 순간들이 생각 보다 요란했다”고 밝혔다. 그는 “그 순간이 만드는 파장이 그리는 그림의 형상이 어떠했나. 무엇을 느끼셨나”라며 이번 논란에 대한 네티즌의 의견을 묻기도 했다.
가수 지망생 한서희와 SNS에서 페미니스트 논쟁을 벌이던 유아인은 지난달 24일 한 네티즌의 트윗에 대응한 글이 논란이 돼 구설에 올랐다. ‘막 냉장고 열다가도 채소 칸에 애호박 하나 덜렁 들어 있으면 가만히 들여보다가도 나한테 혼자라는 건 뭘까? 하고 코 찡긋 할 것 같음’이란 글에 ‘애호박으로 맞아 봤음?(코찡긋)’이라고 답글을 단 게 문제가 됐다. 유아인의 발언이 여성에게 ‘폭력적’이란 비판이 SNS에 쏟아져서다. 이후 MBC 예능프로그램 ‘무한도전’에 출연한 정신과 전문의 김현철씨가 갑자기 유아인을 둘러싼 논란에 뛰어 들어 파장은 더 커졌다. 김씨가 유아인의 ‘급성 경조증’ 가능성을 제기하는 글을 SNS에 공개적으로 올렸고, 대한정신건강의학과 봉직의협회가 보도자료를 내 ‘의사의 직업 윤리’ 등을 문제 삼아 인권 침해 논란까지 불거지는 해프닝이 벌어졌다.
다음은 유아인이 SNS에 남긴 글 전문.
크고 작은 매우 유의미한 소동들이 있었고 다시 일요일이네요. 극이 아니라 글로, 이슈가 아닌 각종 논란으로 일주일 넘게 온라인을 뜨겁게 달구었네요. 안녕하세요. 유아인입니다.
유난 떨기 좋아하는 유아인. 어디로 튈지 모르는 엄홍식이 지난 과정의 주인공이라면 새삼스럽지도 않으시겠지요. 갖은 술자리들의 맛있는 안주가 되기도 했겠지요. 누군가는 슬픔을 누군가는 분노를 누군가는 통쾌함을 누군가는 영감을 가져가는 일들이었을 거예요. 그렇다면 그것 역시’작품’입니다. 그 일들은 유아인이라는 징그러운 이름을 뒤로 하고 자연인 엄홍식으로서 세상을 무대로 삼아 제가 펼친 또 다른 작업이 될 지도 모릅니다. 맞아요. 제가 좀 예술병이 있지요. 그래서 해야만 했던 일들이 훗날, 지금껏 제가 자랑했던 어떤 영화나 드라마 보다 더 의미 있는 작업으로 여겨지기를 바랍니다. 삶이란 그런 거지요. 험난한 과정이지만 그보다 더 곤욕스럽고 참담한 세상과 즉흥으로 충돌하는 것. 그래서 아름다운 것. ‘행위 하는 예술’이 되었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제가 저를 살리며 현실과의 구분이 모호한 그 가상세계에 저를 계속 던질 수 있는 방법일 겁니다.
카메라 프레임이 아니라 ‘누구라도 가진 화면’ 안에서 저는 립싱크도 아니고 핸드 싱크도 아니고 가짜 인물로 가짜 감정을 연기한 것도 아닙니다. 나였고, 진심이었고, 진실했습니다. 삶이란 것은 ‘나’를 가지고 펼치는 하나의 방대한 퍼포먼스일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그 일들이 매일 같이 펼쳐지는 화면 속의 세상을 전 보다는 조금 덜 불쾌하고 조금 더 말이 되는 세상으로 만드는 작업으로 계속 진행되기를 바랍니다.
글은 제 전문 분야가 아니지요. 셀피나 유행을 소개하는 해쉬태그 보다는 저의 마음을 담아내는 글을 더 많이 SNS로 공유해왔습니다. 저는 그것을 통해 보통 사람들과 소통하는 것을 즐겨 했던 사람입니다. 글로는 평가받기 면구합니다. 받아야 한다면 행위와 영향과 현상으로 평가받고 싶습니다. 그게 ‘예술’이고 저는 ‘관종’입니다. 그것으로 먹고삽니다. 제 글은 어릴 때부터 개인적 감상을 담은 일기 따위를 팬들에게 소소하게 공유하며 교감해온 그 정도 수준입니다. 매일을 데스크에 앉아 잘 쓴 글을 작성하시고 판매하며 생계를 이어가는 전문가들의 수준을 따라갈리 만무하지요. 저는 인간을 탐구하고 표현하는 배우일을 하는 사람입니다. 제 글은 서점 속 방대한 책들을 레퍼런스 삼아 수준 높은 형식과 최신 경향을 자랑하는 글이 결코 못됩니다. 서점과 전시장이 아니라 세상과 사람들을 관찰하고 스스로를 탐구하며 ‘나’를 작업으로 펼쳤습니다. 미친듯이 팔려나가도 돈이 들어올리는 없으나 내가 생각하는 진실하고 가치있는 생산적, 예술적 행위입니다.
딱 그만큼의 의지와 영향력을 가진 한 사람으로서 다양한 집단과 충돌해 보았습니다. 계란 같은 내가 바위 같은 세상과 충돌하며 만드는 순간들이 생각 보다 요란했지요. 그 순간이 만드는 파장이 그리는 그림의 형상이 어떠했습니까. 무엇을 느끼셨습니까.
이것은 찰나의 프레임이 아니라 시간과 ‘함께’ 존재합니다. ‘나’역시 그러합니다. 계획되고, 보입니다. 기억되고 잊힙니다. 이번 제 작업의 주인공은 배우라는 벗을 수 없는 가면 속의 제 자신이었습니다. 네티즌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공동 주연했습니다.
그리고 나는 여전히 그것이 ‘잘 쓴 글’, ‘못난 그림’ 따위의 역사와 찰나가 아니라, 이곳에서 여러분과 함께, 그리고 ‘시간과 함께 존재하는 행위’라고 믿습니다. 연예인에 대한 미시적이고 광적인 평가가 범람하는 대한민국 사회에서 매우 의미 있는 ‘자평’이라 생각합니다. 저는 지난 역사가 아니라, 여기에 있습니다. 쓰인 역사에 나 따위야 존재 하든지, 말든지. 나는 나의 역사를 ‘지금’ 쓰는 사람입니다.’자뻑’이라면 많이 혼나야겠지요. 이제 더는 배우 유아인이 궁금하지 않으실지도 모르겠습니다만 두렵지는 않습니다. 누구나 그렇듯 저는 계속 변화하고 저의 세계는 확장을 멈추지 않을 겁니다. ‘부동의 신비로움’을 가진 환상이 아니라 ‘역동하는 사람’을 보여주는 일로 여러분과 함께 하겠습니다. 그것이야 말로 매순간 미지의 세계에 발을 담구는 인간이 펼쳐내는 신비롭고 아름다운 삶입니다.
부정한 자들이 아니라, 외로운 사람들을 향해 계속 쓰겠습니다. 나와 같이 부정하고 외로운 모든 사람들을 향하겠습니다. 숱한 모순을 끌어 안고도 나를 살리며, 의문으로 나를 던지고, 그렇게 지난 나를 버리며, 새로운 나를 창조하며 ‘행위’하겠습니다.
저의 일이 불러온 파장을 압니다. 내가 속한 세상에서 군림하지 않고 비참해도 그 폐허를 온몸으로 뒹굴겠습니다. 그것에 내게는 더 진실한 삶이고 진실한 예술입니다.
부디 ‘손 안의 화면, 눈 앞의 화면’을 내려놓은 당신들의 삶에 나의 행위가 긍정적으로 닿았기를 바랍니다. 지켜봐 주시고, 관람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글쓰는 일로 찾아뵙는 일은 좀 줄이고 글로 세상을 바꾸는 일 역시 전문가 분들의 사명을 더 믿고 맡기며 저는 더 흥미로운 피드와 신중한 작품들로 여러분을 찾아 뵙겠습니다. 기대해주세요. 감사합니다.
선배님들께는 아무 말씀 안 드리겠습니다. 고생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험난한 세상을 버텨온 선배들을 탓하는 것이 아니라, 적어도 내 후배들이 선배인 나를 비겁하고 한심한 선배로 기억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다른 내용을 질문으로 쓰겠습니다.
동료, 후배님들께 드립니다. 예술이 뭡니까. 연예인은 또 뭡니까. 작가는 뭐고 기술자는 또 무엇입니까. 사람은 어떻습니까. 배 채우는 일은 누구라도 하지요. 짐승도 하지요. 사람을 끄는 일이 무엇입니까. 그냥 장사입니까. 거기서 그만입니까. 남들 앞에 서는 일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습니까. 급변하는 세상 속에서 어디 까지가 우리의 일입니까. 우리를 바라보는 저들은 또 누구입니까. 그저 소비자입니까. 이것은 무엇입니까. 무엇을 해야 합니까. 말하고, 그리고, 쓰고, 만들고, 부르고, 추고, 치고, 불고, 찍고, 올리고, 움직이며, 열을 태우며 우리가 하는 일이 도대체 무엇입니까.
무엇이 허세이고, 무엇이 진실입니까. 세상이 어떻습니까. 이 시대는 또 어떠합니까. 배부르십니까. 따뜻하십니까. 위대하십니까. 헛헛하지 않으십니까. 진정 별이 되셨습니까. 그래서 매일이 아름답고 매 순간이 찬란하십니까. 다음을 기약하시겠습니까. 왜 아무 말씀이 없으십니까. 그 잘난 예술로 말하겠습니까. 작품으로 말하겠습니까. 자랑스러우십니까. 좋은 시대가 오면 그때 말씀하시겠습니까. 역사에 남으시겠습니까. 아니면 오늘을 바꾸시겠습니까. 내일을 장담할 수 있으십니까. 무얼 하시겠습니까. 결국엔 그것들을 여기로 가져와 장사할 거면서. 이곳이 사랑스러우십니까. 개같이 벌어 정승같이 쓰면 자위가 되십니까. 예술입니까. 장사입니까. 하나만 해야 합니까. 다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만 굴욕하고, 그만 침묵하고, 그만 눈치 보고, 그만 비참해져야 하지 않겠습니까. 매일 같이 유린 당하는 우리의 인권과 자존심은 허상이 아니라 우리 자신입니다. 우리의 인격이고, 우리의 인권입니다. 폭력이 당연한 일입니까. 아닙니다. 아니어야 합니다. 우리가 침묵하는 일이 우리 스스로를 부정한 기득권으로 만드는 일입니다. 당당합시다. 부디!
저마다의 현장에서, 삶에서 갖은 사이즈의 화면들로 이 글을 보시겠지요. ‘나’라는 사람 보다 나의 ‘밥그릇’이 앞서는 삶을 나도 자주 살아갑니다. 지나고 보니 부끄러움 뿐입니다. 누구라도 언제라도 어디서든 함께 할 수 있는 이토록 좋은 시대에 우리는 어떻게 존재해야 할까요. 부디 안녕하시기를 바랍니다.
제 몸과 영혼을 제 자신보다 더 세심하게 살펴 주시는 영화 ‘버닝’의 현장 스태프분들과 저의 사랑스러운 사람들에게 우려를 끼쳐 송구합니다. 우리, 자랑질 말고 자랑스러웁시다. 건강합시다. 사랑합니다.
양승준 기자 come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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