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태가 죄라면, 범인은 국가다!”
불꽃페미액션 등 11개 단체로 구성된 ‘모두를 위한 낙태죄폐지 공동행동(공동행동)’이 도심 집회를 열고 정부에 낙태죄 폐지를 서둘러달라고 정부에 촉구했다.
공동행동은 2일 오후 2시쯤 서울 종로구 세종로공원 앞에서 집회를 열고 “낙태를 예외적으로 허용하는 모자보건법 제14조가 있지만, 이는 여전히 여성에게 모든 책임을 떠맡기고 있는 조항”이라면서 “여성의 행복추구권과 자기결정권을 침해하는 낙태죄를 지금 당장 폐지하라”고 주장했다. 이날 모인 약 500여명(주최측 추산)의 참가자들은 검은색 옷을 맞춰 입기도 했다. 지난해 폴란드 여성들이 정부의 전면적인 낙태금지 법안 제출에 ‘생식권에 대한 애도’를 뜻하며 검은색 의상을 입고 집회를 연 데서 착안한 것이다.
이날 가장 먼저 자유발언에 나선 고교생 변예진(17)양은 “낙태는 범죄란 교육을 받아가며 성장해왔지만, 원치 않는 임신을 하게 된 경우 치러야 할 대가가 가혹하다”고 지적하면서 “낙태는 여성의 삶의 문제이기 때문에 여성의 판단과 결정 하에 이뤄질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청소년의 경우 낙태죄 때문에 불법시술로 고비용과 위험성을 떠안아야 한다”면서 ▦강간 또는 준강간에 의해 임신된 경우 ▦법률상 혼인할 수 없는 혈족 또는 인척 간 임신 ▦우생학적 또는 유전학적 정신장애나 질환이 있는 경우 등에 한해서만 예외적으로 인공임신중절 수술이 허용되는 모자보건법 제14조를 꼬집기도 했다.
한국성폭력상담소 활동가 앎(가명)씨도 “폭력에 의한 성폭력뿐만 아니라 위계 등에 의한 성폭력, 동의 없이 피임기구를 제거하는 등 성폭력의 범위는 넓다”고 주장하면서 “모자보건법이 성폭력 임신에 한해 임신중절을 허용하고 있지만 성폭력을 너무나 좁게 해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공동행동은 집회를 마치고 광화문을 거쳐 청와대방면으로 행진을 진행했다. 청와대와 약 200m 떨어진 청운효자동주민센터 앞에 멈춰선 이들은 “페미니스트 대통령은 낙태죄를 폐지하라”고 외친 뒤 발언을 이어갔다. 연구공동체 ‘건강과대안’ 상임연구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산부인과 전문의 윤정원씨는 이 자리에서 음성적인 임신중절로 자궁파열을 겪은 기혼여성, 성폭력으로 원치 않는 임신을 한 뒤 여러 곳의 산부인과로부터 낙태 거절을 당했던 청소년 등의 사례를 예로 들며 “모자보건법 위반 우려로 의사들이 임신중절 수술을 꺼려하는 실정”이라며 “비밀보장을 미끼로 고액을 요구하는 의사들도 있다”고 지적했다.
앞서 청와대는 지난달 26일 낙태죄 폐지 청원에 대해 임신중절 실태 조사를 진행해 현황과 사유를 파악하고, 결과를 토대로 관련 논의를 진전시켜나가겠다는 뜻을 밝혔다. 청와대 홈페이지에 올라온 낙태죄 폐지 청원에는 약 23만명이 참여한 상태다.
글·사진 김형준 기자 mediabo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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