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다시 읽는 동남아] 동남아는 교통 인프라 전쟁 중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다시 읽는 동남아] 동남아는 교통 인프라 전쟁 중

입력
2017.12.01 18:00
20면
0 0

천문학적 비용 유발는 교통체증

대중교통 확충으로 극복 시도

MRT(도시고속철도) 1호선 공사로 정체가 한층 심해진 자카르타 시내 중심부.
MRT(도시고속철도) 1호선 공사로 정체가 한층 심해진 자카르타 시내 중심부.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와 필리핀 마닐라, 그리고 태국 방콕. 국내에도 제법 잘 알려진 동남아시아 3개국의 수도인 이들 도시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바로 살인적인 교통난에 시달린다는 사실이다. 이들은 전세계 주요 도시의 교통 체증 및 혼잡도 순위를 매기는 국제 조사에서 항상 상위권에 이름을 올리는 거대 도시들이다.

동남아의 악명 높은 교통 체증을 처음 접한 것은 자카르타에서 남동쪽으로 180km 가량 떨어진 인도네시아 제3의 도시 반둥에 체류할 때였다. 반둥 중심부와 인근의 도시 두 곳을 연결하는 유료 셔틀버스 서비스를 제공하는 한국계 투자기업에 근무하면서 현지의 교통 인프라가 자연스럽게 눈에 들어왔다. 무엇보다도 열악한 대중 교통 시스템이 문제였다. 지하철은 찾아볼 수 없었고, 버스 역시 교통 수요를 충족시키기에는 질적, 양적으로 절대 부족했다. 실제 대다수 현지인들이 출ㆍ퇴근, 등ㆍ하교 등 일상적인 활동을 오토바이 혹은 앙꼿(angkot)으로 불리는 소형 마을 버스에 의존했다. 경제 성장과 함께 도시 안팎으로의 이동 욕구는 급증했지만 땜질식 개ㆍ보수가 일상적인 기존 교통 인프라로는 도저히 감당하기 어려운 실정이었다.

반둥을 떠나 자카르타로 옮겨온 뒤 목격한 현장은 상상을 초월했다. 대중 교통 확충과 도로망 정비는 더딘 가운데 도로에는 매일 새로운 차량 1,000여대가 쏟아졌다. 경제가 발전가도를 달리면서 주머니 사정이 두둑해진 중ㆍ상류층이 너나 할 것 없이 차량 구매에 열을 올렸기 때문이다. 그 결과 사람과 오토바이, 자동차가 뒤엉키며 금요일 퇴근길 자카르타 시내에서 2㎞를 움직이는데 3시간을 도로 한복판에 갇혔던 경험도 있다. 현지인들도 교통체증을 피해갈 수 없기는 마찬가지다. 극심한 교통정체로 인해 공항에 늦게 도착해 비행기를 놓치는가 하면, 국영 항공사의 최고경영자(CEO)가 “장관이 참석하는 회의에 지각할까 봐 승용차에서 내려 오토바이를 이용했다”는 얘기가 보도되기도 한다. 대통령까지 나서 “교통정체로 인해 매년 28조루피아(약 2조2,000억원)를 길바닥에 버리고 있다”고 한탄할 정도다.

자카르타 남북을 잇는 MRT(도시고속철도) 1호선 공사 현장.
자카르타 남북을 잇는 MRT(도시고속철도) 1호선 공사 현장.

도시 규모에 관한 한 둘째 가라면 서러운 마닐라와 방콕의 형편도 별반 다르지 않다. 마닐라의 경우, 2개의 LRT(경전철) 노선과 1개의 MRT(도시고속철도) 노선이 운영되고 있지만 이미 수용 능력을 넘어선 지 오래다. 출퇴근 시간이면 마닐라 시내가 거대한 주차장으로 변하는 악순환이 반복되면서 연간 18억달러(약 19조6,000억원)의 경제적 손실이 발생한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도심 곳곳을 촘촘하게 연결한 BTS(지상철)를 앞세워 한때 싱가포르를 제외한 동남아에서 가장 앞선 대중 교통 인프라를 자랑했던 방콕의 위상 또한 예전 같지 않다는 분석이다. 특히 방콕 중심부와 외곽 지역을 잇는 노선 확장이 지연되면서 러시아워에는 교통 지옥이 따로 없다는 불만이 여기저기에서 쏟아지고 있다.

일본의 영문 경제 주간지 니케이 아시안 리뷰에 따르면, 아시아개발은행(ADB)은 싱가포르와 브루나이, 라오스를 뺀 아세안(ASEAN) 주요 7개국이 성장 동력을 유지하기 위해서 2020년까지 매년 1,470억 달러(약 160조원)를 교통을 포함한 인프라 분야에 투자해야 한다고 추정했다. 이는 이들 국가의 총 국내총생산(GDP) 대비 6.1% 수준이다. 하지만 실제 올해 인프라 투자에 집행된 금액은 GDP의 2.3%인 550억 달러(약 60조원)에 불과하다. 천문학적 사회적, 경제적 비용을 유발하는 교통 인프라 전쟁을 치르고 있는 동남아 국가들의 갈 길이 멀다는 현실을 여실히 보여준다.

그나마 각국 정부가 뒤늦게나마 대중 교통 확충에 안간힘을 쓰고 있는 점은 고무적이다. 현재 자카르타에는 2019년 3월 개통을 목표로 도시 남북을 잇는 MRT 1호선 공사가 한창이다. 정치적 이유와 예산 부족 등으로 번번히 좌절됐던 자카르타의 첫 MRT에 대한 현지인들의 기대감은 그 어느 때보다도 높다. 필리핀 역시 2025년까지 마닐라 남북을 관통하는 25.3㎞ 길이의 지하노선을 신설해 도심 접근성을 획기적으로 개선한다는 청사진을 수립했다. 이 밖에 교통체증이 사회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베트남 호찌민시에서도 2020년 말 완공을 목표로 지하철 1호선 공사가 진행 중이다. 동남아 신흥 경제의 앞날을 좌지우지할 교통 인프라 개선 작업이 어떻게 이뤄질지 지켜볼 일이다.

방정환 아세안 비즈니스 센터 이사 / ‘왜 세계는 인도네시아에 주목하는가’ 저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