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ㆍ청소년 부문’에서 어린이와 청소년 책에 대한 평가는 다소 엇갈렸다. 훌륭한 어린이 책들이 잇달아 출간됐다. ‘간질간질’과 ‘두더지의 소원’은 젊은 작가의 힘을 보여주는 작품으로 꼽혔다. 젊은 작가답지 않은, 미니멀한 노련미와 뚝심이 돋보인다는 평이다. 백희나 작가의 신작 ‘알사탕’도 호평 받았다. 이미 높은 평가를 받는 작가가 어떻게 더 나은 작품으로 나아가는 지 보여주는 생생한 증거란 평이었다. ‘돌고 돌아 돌이야’는 아이들에게 읽힐 만한 과학책으로 수작이란 평이 나왔다. 이에 반해 청소년책은 양 자체가 적은데다, 문장이나 편집 수준이 오히려 어린이책에 비해 떨어진다는 비판까지 나왔다. 그 와중에서도 요즘 아이들의 관심사인 랩, 힙합 문화를 잘 녹여낸 ‘4GO뭉치’, 반려동물과 함께 산다는 것의 의미를 섬세하게 짚어낸 ‘동물을 사랑하면 철학자가 된다’ 등은 좋은 책이 여전히 많이 있음을 보여줬다.
간질간질
서현 지음·사계절 발행
간질간질, 머리를 긁었더니 머리카락이 떨어져 내가 되었다! 머리카락 한 올에서 출발한 상상력이 감각적인 캐릭터, 들썩거리는 몸짓과 소리, 군무 연출로 이어지며 시선을 사로잡는다. 원래의 ‘나’와 새로 만들어진 ‘나’들은 춤을 추며 평소 하고 싶었던 행동들을 거침없이 해 나간다. 폴짝폴짝 뛰기도 하고 산을 오르며 새들의 도움으로 하늘도 날아 본다. 어린이들의 감정과 욕망을 시원하게 드러내며 카타르시스를 선물하는 그림책으로 작가의 상상력이 돋보인다.
두더지의 소원
김상근 지음·사계절 발행
첫눈이 내린 날, 작은 두더지가 하얀 눈덩이를 마주하며 인사를 건넨다. 이후 두더지와 눈덩이는 ‘친구’가 되고, 친구라는 존재가 주는 설렘에 흠뻑 빠진다. 눈덩이에게 조곤조곤 말을 걸고, 함께 집에 가기 위해 버스를 기다리는 두더지를 보며 독자인 어린이들도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허물고 자연스럽게 두더지의 세계에 자리를 잡게 된다. 소복하게 눈이 쌓인 겨울을 표현한 그림과, 어린 두더지와 함께하는 따뜻한 이야기가 어린이들의 마음을 톡 하고 건드린다.
빼떼기
권정생 지음·창비 발행
‘권정생 문학 그림책’ 시리즈인 ‘빼떼기’는 동화작가 권정생의 작고 10주기에 맞춰 출간되었다. ‘권정생 문학 그림책’은 권정생의 빛나는 동화들을 새로운 감각으로 재해석하여 유아부터 성인까지 문학적 감동을 느낄 수 있는 그림책을 펴내고자 기획됐다. 동화 ‘빼떼기’는 원래 1988년에 출간된 ‘바닷가 아이들’에 수록된 작품으로, 권정생의 생명관을 드러내는 빼어난 작품으로 손꼽힌다. 순진이네 식구에게 스며든 깜장 병아리 ‘빼떼기’의 눈물겨운 생을 통해 생명과 평화의 의미를 곰곰이 되새겨 볼 수 있는 작품이다.
알사탕
백희나 지음·책읽는곰 발행
들을 수 없었던 마음의 소리, 말 하지 못했던 마음이 전해진다. 제 마음을 표현하는 데도 다른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는 데도 서툰 아이인 동동이가 마법의 알사탕을 갖게 됐다. 세상에서 가장 쉽고도 어려운 한 마디를 전할 용기를 주는 마법 알사탕은 다른 사람의 속마음을 듣게 해주는 신비한 힘을 지녔다. 소극적이고 다른 사람에게 나의 의견을 표현할 줄 몰랐던 동동이의 이야기를 통해 공감하고 표현하는 방법을 배운다.
밥, 춤
정인하 지음·고래뱃속 발행
우리는 모두 ‘오늘’이라는 무대에 올리는 ‘삶’이라는 춤을 추고 있다. 숙련된 일꾼의 노련한 몸놀림은 마치 춤동작을 연상시킬 만큼 춤꾼의 동작과 통한다. 그리고 그 몸짓엔 남녀라는 성역할이 고정돼있지 않다. 저자는 일하는 여성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소위 남성의 일이라고 여겨지는 일을 하는 사람도 등장한다. 그리고 이들은 모두 자기 자리에서 맡은 일을 능숙하게 해 낸다. 남녀 성역할의 고정관념을 깨는 그림책으로 남성의 일, 여성의 일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는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돌고 돌아 돌이야
신광복 지음·시공주니어 발행
교과서로 먼저 ‘돌’에 대해 만나기 전, 제대로 된 ‘돌’을 알려주려는 책이다. 지진 등 지구에서 생기는 다양한 현상들을 이해하는 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돌을 돌 전문가가 어린이의 눈높이에 맞춰 서술했다. 일상 속에 많은 부분을 차지하지만 정작 쓸모 없는 것, 더러운 것 등으로 생각되는 돌을 아이들이 다시금 생각할 수 있도록 돕는다. 돌에 대해 생각하고 관찰하고 감상하며 돌의 세계를 단계적으로 이해해 나갈 수 있도록 구성해 어린이 책의 지식 분야를 확장시킨 점이 돋보인다.
심부름 가는 길
이승호 지음·책읽는곰 발행
큰소리치며 당차게 대문을 나섰지만, 심부름 가는 길은 고생스럽기 그지없다. 날은 점점 더워지고, 갈 길은 아직 멀었는데 다리는 점점 아파 오고, 아침도 못 먹고 나와 배는 고프고, 무사히 심부름을 마칠 수 있을지 은근히 걱정이 앞선다. 심부름은 아이가 성장하면서 거치는 일종의 통과의례다. 의지할 사람 없이 세상에 나가 홀로서기를 하는 기념적인 순간을 이야기로 담아냈다. 설렘과 호기심, 혼자 잘 해낼 수 있을까 조마조마해하는 마음과 무사히 심부름을 마치고 집에 다다랐을 때 느끼는 뿌듯한 성취감을 이야기로 들려준다.
문장부호
난주 지음·고래뱃속 발행
‘문장부호’는 점묘화로 구성된 그림책이다. 펜 끝에 온 신경을 집중해 땀과 수고가 고스란히 담겨있다. 펜으로 찍을 때는 그저 하나의 ‘점’에 불과하지만, 점이 모여 씨앗이 되고, 꽃을 만드는 아름다움에 흠뻑 빠질 수 있다. 톡 떨어뜨린 작은 씨앗이 쭉쭉 뿌리를 내려 초록빛 싹을 틔우고, 천천히 꽃잎을 벌리며 꽃 향기를 내는 꽃 한송이가 되는 그 과정을 세밀한 점묘화로 구성했다. 제비꽃 씨앗이 떨어져 꽃피고 열매를 맺는 순간들을 섬세한 점묘화로 숨죽여 관찰하면서, 꽃밭 구석구석 숨어 있는 문장부호를 찾을 수 있다.
동물을 사랑하면 철학자가 된다
이원영 지음·문학과지성사 발행
반려인이자 수의사인 저자가 직접 겪은 에피소드를 통해 첫 만남부터 이별까지, 반려동물을 집 안에 들이는 순간부터 각 단계별로 부딪히게 되는 여러 가지 상황과 문제 들을 흥미롭게 풀어낸다. 기술적인 측면보다 강아지를 ‘존재’로 바라보는 본질적인 차원으로 이야기를 서술한다. ‘만남, 이해, 교감, 매듭, 공존’ 5개의 키워드로 분류한 전개법도 흥미롭다. 저자는 그간 만나온 다양한 환자와 보호자들의 사례를 제시하며, 반려인이라면 누구나 겪게 되는 상황 속에서 한번쯤 고민하고 생각해보아야 할 문제들을 짚어준다.
4GO뭉치
J1(제이원) 지음·창비 발행
요즘 어린이들이 힙합에 대해 가진 관심을 긍정하고 어린이들이 힙합을 통해 자기표현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도록 이끌어 준다. 어린이들이 실제 생활에서 고민하는 문제를 힙합의 장르적 특성과 연결 지어 유쾌한 이야기로 탄생시킨 지점이 절묘하다. 고민 많은 우리 시대 어린이들을 대변하는 주인공 ‘한눈팔기’를 비롯해 개성 넘치는 친구들이 등장해 독자들의 공감을 이끌어 낸다. 인물들이 지닌 고민이 랩을 통해 해결의 실마리를 찾고 각자가 점차 자신을 마음껏 드러내는 과정은 어린이 독자에게 해방감을 선사한다.
조태성 기자 amorfati@hankookilbo.com 박혜인(중앙대 정치국제학과4)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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