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한과 미국이 모두 참여하는 사실상 유일한 국제기구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에 북한을 최초로 초청하는 등 한반도 문제 해결에도 깊은 관심을 보였던 수린 피추완 전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ㆍ아세안) 사무총장이 30일 심장마비로 별세했다. 68세.
태국 일간 영자지 방콕포스트와 더네이션 등에 따르면 수린 전 총장은 이날 방콕시내 바이텍컨벤션센터에서 ‘태국 할랄 어셈블리 2017’ 행사 연설을 준비하던 도중 심장마비로 쓰러졌고 람캄행병원으로 옮겨졌으나 결국 숨을 거뒀다.
1949년 태국 남부 나콘시탐마랏주 태생인 수린 전 총장은 미국 클레어몬트칼리지에서 정치학을 전공한 뒤 1982년 하버드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태국의 보수정당인 민주당 소속으로 정치활동을 시작해 1986년부터 2005년까지 태국 의회 의원, 1997년부터 2001년까지 추안 릭파이 태국 총리 내각에서 외무장관을 지냈다. 한때 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 후임 후보로 거론되기도 했지만 이 자리는 한국의 반기문 총장에게 돌아갔다.
대신 2008년 태국 출신으로는 최초로 아세안 사무총장에 올라 5년간 재직했다. 아세안 총장 재직 시절에는 과감한 정치적 발언을 내놓다가 훈센 캄보디아 총리 등과 충돌하기도 했다. 재직 후에도 아세안의 통일된 목소리와 국제사회에서의 적극적인 역할을 강조했다. 10월 한국일보와 인터뷰에서는 “2022년부터는 주요 현안에 대해 하나의 그룹 차원에서 공통의견을 제시하기로 한 만큼 아세안의 위상은 더욱 높아질 것”이라고 낙관한 바 있다.
수린 전 총장은 한반도 문제에도 깊은 관심을 보였다. 2000년 7월 태국 외무장관으로 재직할 때는 북한을 ARF 회원국으로 끌어들였고,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6자회담이 진행 중일 때는 아세안 사무총장으로서 6자 회담을 아세안을 포함한 7자 회담으로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는 “북한 문제와 남중국해 분쟁 문제가 해결돼야 결국 아세안이 발전할 수 있다”면서 “ARF 등을 통해 아세안이 역내 분쟁 해결과 긴장 완화에 보다 적극적으로 나설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수린 전 총장의 사망 소식에 쁘라윳 짠오차 태국 총리와 아세안 사무국 등이 추모 메시지를 전했다. 태국 외교부는 “수린 박사는 태국의 외교정책을 실행했고 아세안의 이익과 발전, 국제사회에서의 위상 강화에 중대한 역을 맡았다”는 입장을 내놨다. 유족으로 부인과 세 자녀가 있다.
인현우 기자 inhy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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