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27일 독립공화국 선포한
자치정부ㆍ의회 강제 해산 후
민의 확인하는 합법적 절차
찬반 정당 지지율 초접전 양상
양측 모두 과반 의석은 힘들어
선거 후에도 험난한 정국 예상
“카탈루냐 역사상 가장 중요한 선거다.”
스페인 중앙정부의 체포를 피해 벨기에로 피신해 있는 카를레스 푸지데몬(55) 전 카탈루냐 자치정부 수반은 12월 21일 실시되는 카탈루냐 조기 지방선거에 대해 지난 25일(현지시간) 이렇게 말했다. 벨기에 북부 브뤼헤 인근에서 열린 선거운동 발대식 현장에서 행한, 결국엔 자신과 소속 정당에 대한 지지를 호소하는 정치적 발언이지만, 그의 표현은 결코 과장만은 아니다. 푸지데몬 전 수반이 “스페인과 유럽연합(EU)은 12월 카탈루냐 지방선거 결과를 존중해야 한다. 분리주의자들이 승리하면 마드리드는 (카탈루냐에 대한) 직접 통치를 끝내야 한다”고 주장한 데에는 그럴 만한 까닭이 있고, 나름의 설득력도 있다.
이번 지방선거는 스페인 정부가 헌법 제155조를 사상 처음으로 발동한 데 따른 것이다. 해당 조항은 자치정부가 헌법상 의무를 완수하지 않거나 국익을 심각히 해칠 경우, 중앙정부가 필요한 모든 수단을 동원할 수 있도록 해 ‘핵 옵션’으로도 불린다. 스페인 정부는 이를 근거로 10월 27일 ‘독립공화국 설립’을 선포한 카탈루냐 자치정부와 자치의회를 강제 해산시켰다. 자치정부 수뇌부는 반역죄로 형사처벌을 받는 신세가 됐다. 중앙정부의 이러한 전례 없는 초강경 대응을 부른 카탈루냐 분리독립 움직임을 두고 진정한 민의(民意)는 무엇인지 확인해 보는 ‘합법적 절차’가 바로 이번 선거다. 스페인 중앙정부와 헌법재판소가 ‘불법’으로 규정한 10월 1일 카탈루냐 분리독립 주민투표(투표율 43.03%, 찬성 득표율 92.01%) 때와는 완전히 상황이 다르다. 카탈루냐 조기 지방선거 카드를 꺼내든 쪽은 마리아노 라호이(62) 스페인 총리, 곧 중앙정부다. 그리고 카탈루냐 분리독립 세력들도 선거를 보이콧하지 않고 참여키로 했다. 선거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양쪽 모두 그 유효성을 부인하긴 어렵게 됐다는 얘기다.
분리독립 찬반 ‘초박빙’… 양쪽 모두 위험부담
현재로선 누가 승자가 될지 점치기 어렵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카탈루냐 독립파 정당 연합과 스페인 잔류를 주장하는 정당 연합의 지지율은 초접전 양상을 보이고 있다. 스페인 일간 엘파이스가 여론조사기관 메트로스코피아와 함께 지난 20~22일 카탈루냐 유권자 1,800명을 대상으로 벌인 공동설문 조사에 따르면, 양측 지지율은 각각 46.0%로 정확히 똑같았다. 같은 조사에서 ‘카탈루냐가 스페인에 남아 양측이 갈등 해소를 위한 정치적 해법을 모색해야 한다’는 의견(71%)이 ‘선거 이후에도 분리독립을 계속 추진해야 한다’(24%)보다 훨씬 많았지만, 선거 승패를 결정짓는 것은 결국 정당 지지율이다.
26일 보도된 스페인 매체 엘 컨피덴셜의 여론조사 결과(13~23일 2,500명 대상 설문)에서도 독립파 정당들의 지지율 합계(45%)가 반대파 정당들(40.2%)보다 약간 높았다. ‘조기 선거 실시’라는 승부수를 던진 라호이 총리에게든, 그에 맞서 ‘선거 참여’ 결정으로 정면 돌파를 택한 카탈루냐 분리독립 세력에게든 이번 선거는 사실상 도박에 가깝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선거가 마술처럼 모든 것을 해결해 주지는 않겠지만, 이제 마드리드와 카탈루냐 독립운동 사이의 ‘쫓고 쫓기는 게임(cat-and-mouse game)’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고 분석했다.
주목해야 할 대목은 이대로라면 어느 쪽도 전체 135석 가운데 과반 의석(68석)을 확보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승자도 패자도 없는, 따라서 양쪽이 모두 ‘우리가 승리했다’고 외칠 수 있는 애매한 상황이 될 수도 있다는 말이다. 때문에 관건은 지지율 6.7~9.2%(의석 수 8~10석 예상)인, 하지만 아직 어느 쪽에도 발을 담그지 않은 급진좌파 정당 ‘카탈루냐 엔 코무(공동체 카탈루냐)’의 향후 행보다. 이들의 기본 입장은 ‘분리독립 반대’지만, 그렇다고 중앙정부를 지지하는 쪽은 더더욱 아니다. 카탈루냐 인민의 자치권 확대, 스페인의 완전한 연방국가로의 전환 등을 주장하고 있어 선거 이후에도 소수 정파로 남을지, 어느 한쪽과 전략적으로 손을 잡을지는 불투명하다. 특히 카탈루냐 최대 도시 바르셀로나의 시장인 아다 콜라우(43)가 몸담은 정당이라는 점에서도 가볍게 볼 수 없는 정치세력이다. 콜라우 시장은 분리독립 주민투표와 관련, 강경 일변도로 대응한 라호이 총리와 충분한 준비도 없이 밀어붙이고는 벨기에로 도피한 푸지데몬 전 수반을 싸잡아 맹비난했었다.
선거 끝나도 카탈루냐 여진은 계속될 듯
이처럼 카탈루냐 독립 찬반 여론이 팽팽하게 갈리는 현 상황은 “(주민투표 때) 침묵했던 다수가 목소리를 내 달라”고 했던 라호이 총리의 기대감이 꽤 근거가 있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투표율 43%’에 그친 것은 이유가 있었다. 그리고 이는 카탈루냐 내 복잡한 정치지형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다. 분리독립파 내에는 중도좌파인 ‘카탈루냐공화주의좌파(ERC)’와 우파 민족주의인 푸지데몬 전 수반의 ‘카탈루냐를 위해 함께(JuntsxCat)’, 극좌 성향인 인민연합후보당(CUP)가 혼재해 있다. 2015년 지방선거 당시엔 ERC와 ‘카탈루냐를 위해 함께’의 전신인 카탈루냐민주당(CDC)가 함께 ‘찬성을 위해 함께(JxSí)’라는 선거연합을 꾸렸으나 이번에는 각자의 길을 걷기로 했다. 좌우가 섞여 있긴 스페인 잔류파도 마찬가지다. 시민당(CS)은 중도세력이고, 라호이 총리가 속한 인민당(PP)은 우파, 카탈루냐사회당(PSC)은 중도좌파다. 분리독립 찬반이 이번 선거의 가장 큰, 어쩌면 유일한 쟁점이지만 선거결과에 따라선 다른 요인을 우선순위에 두고 이합집산이 이뤄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실제로 2003년 지방선거 이후 ERC와 PSC 등은 좌파 연립정부를 함께 꾸린 적이 있다.
라호이 총리는 “선거가 분리독립 혼란을 종식시킬 것”이라고 했지만, 잔류파가 승리한다고 해서 카탈루냐 인구 절반의 독립 염원이 사라질 가능성은 거의 없다. 반대로 독립파가 재집권에 성공한다 해도 앞길은 매우 험난할 것으로 보인다. EU를 비롯, 국제사회가 거의 전적으로 스페인 정부의 손을 들어주고 있어서다. 푸지데몬의 전임 자치정부 수반인 아르투르 마스(61)는 최근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 유럽판과의 인터뷰에서 “분리주의자들은 대승을 거둔다 해도 새롭고 과감한 조치를 취하기보단 우리의 대의에 대한 국제사회의 지지를 얻는 데 집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EU 통합’이라는 초국가체제 출범과는 정반대 방향으로, 근대 국민국가의 한계를 넘어서는 또 다른 새 주권형태의 탄생을 예고하는 전조가 될지, 전 세계가 카탈루냐의 12월 21일을 주시하고 있다. 이번 선거의 투표율은 최대 80%에 이를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김정우 기자 woo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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