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럴드 D 맥엘리고트씨
22년째 방한해 국내 제작팀과
밀레니엄힐튼에 미니어처 건설
“좋아할 아이들 생각에 힘 안들어”
서울 중구 소월로 밀레니엄서울힐튼 호텔 지하 1층 분수대 주변엔 하얀 천막이 빙 둘러쳐져 있다. 천막 안에선 아름다운 크리스마스 세상이 만들어지고 있다. 호텔이 22년간 연말이면 전시해 온 ‘크리스마스 열차’ 제작 현장이다.
5일 개장을 앞두고 제작팀은 마무리 작업에 한창이다. 3주의 준비 기간 선로를 새로 깔고, 주변 풍경을 색다르게 만들어 내는 게 쉽지 않다. ‘거대한’ 미니어처의 세상은 완성도 높은 디테일이 생명이라 진도가 쉬 나가지 않는다.
10여명의 제작팀을 이끄는 이는 제럴드 D 맥엘리고트(71)씨. 22년간 매년 한국을 방문해 크리스마스 열차 마을을 만들어 온 주인공이다. 맥엘리고트씨는 크리스마스 모형열차 전시를 시작한 건 우연이라고 했다. 25년 전 괌에 머물 때 친구인 괌 힐튼호텔 총지배인과 얘기를 나누다 재능을 살려 호텔 로비에 움직이는 크리스마스 열차를 꾸며 보는 게 어떨까 해서 시작했단다. 당시 설치하던 모형열차에 석유기업 ‘셸’의 로고가 붙어 있었는데 우연히도 셸 부사장이 지나다 이를 발견하고는 기업에서 후원을 받아 보라고 조언을 했다고. 첫해부터 10대의 열차를 후원받으며 일이 커졌다.
괌 힐튼의 크리스마스 열차는 금세 화제가 됐고, 밀레니엄서울힐튼을 비롯 아시아태평양 지역 힐튼호텔 20여곳으로 번져 갔다. 맥엘리고트씨와 한국의 동료들로 이뤄진 팀은 밀레니엄서울힐튼과 일본의 7개, 중국 1개 등 모두 9개 힐튼호텔의 크리스마스 열차를 책임지고 있다.
맥엘리고트씨에게 20여년 이어 온 비결을 묻자 “한국의 유능한 제작팀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라 하며 팀원들에게 공을 돌렸다. 3D애니메이터가 본 직업인 박희정(30)씨는 10년, 수학 강사인 은혜민(30)씨는 9년, 아트토이 디자이너인 김성원(26)씨는 7년을 이 일과 인연을 맺고 있는 베테랑들이다.
이들은 맥엘리고트씨가 작업장에선 엄한 리더지만 일이 끝나면 고민을 털어놓을 수 있는 푸근한 할아버지로 때론 짓궂은 장난을 치는 친구가 된다고 했다.
은씨는 “레고회사에 들어가고 싶을 정도로 레고를 좋아했다. 우연히 이 일을 알게 돼 하다 보니 매번 새로운 마을을 창조해 내는 재미에 지금껏 이 일을 돕고 있다”고 말했다. 대학생 때 시작해 벌써 10년이 된 박씨는 “호텔서 일한다고 좋아했던 학생들도 막상 천막 안에 들어서면 화들짝 놀란다. 밤샘 작업도 많고 몸이 고되지만 완성되고 난 뒤 아이들이 기차를 따라 함께 뛰어다니며 즐거워하는 것을 볼 때의 희열은 말로 설명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김씨도 “일을 할 때는 너무 힘들어 왜 다시 시작했나 후회되기도 하지만 막상 끝나고 나면 좋은 기억만 남게 돼, 다음해 자석에 이끌리듯 또 이 일에 매달리게 된다”고 맞장구를 쳤다. 70여대의 각양각색 열차가 지나는 곳은 스위스 산골 마을이다. 배경은 매년 새로 바뀐다. 거대한 스키장이 들어서거나, 비행장이 만들어지기도 하고, 이번엔 커다란 항구를 만들고 있다.
제작팀은 “달리는 열차만 보지 말고 곳곳에 숨은 디테일을 즐기라”고 조언했다. 호텔의 마스코트인 ‘밀튼’이 곳곳에 배치돼 다양한 스토리를 선사한다.
이성원 선임기자 sungw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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