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떠돌이가 유난히 교토의 동부에 버글버글 모이는 이유는 사찰 자체가 지닌 매력에 구경하는 재미를 더했기 때문이다. 그 두 가지 요소를 뭉뚱그리면 ‘교토스러움’이 완성된다.
모범 사찰 모음집, 긴카쿠지(銀閣寺)
교토의 다른 사찰을 유람한 후 이곳에 온다면 머릿속을 뒤흔들 몇 가지. ‘어, 금각사 느낌이네. 저건 료안지? 여긴 아라시야마 대숲?’ 긴카쿠지는 내로라하는 사찰의 한 페이지를 조금씩 뜯어 콜라주를 한 것 같다. 그렇다고 흉측하지 않다. 콜라주의 틈을 대숲이 수직으로, 이끼는 수평으로 저미어 초록 바다에 풍덩 빠져버리게 하니까. 조금은 밋밋하고 건조한 후지산과 호수를 형상화한 은빛 모래 정원에서부터 연못과 야트막한 폭포를 지나 언덕을 넘어 시내를 관조한 뒤,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는 감성 충전 코스다. 이곳 역시 별장이 시초다. 1482년 아시카카 요시마사 쇼군이 킨카쿠지(금각사)를 따라 긴카쿠를 만들다가 재정난으로 은을 덮어 씌우지 못한 미완성 사찰이라고 전해 내려오는데, 한 가지는 확실하다. 때론 완전하지 못한 완벽함도 있노라고. 그게 더 깊고, 마음을 끈다.
계절 따라 느릿느릿한 환희, 테츠가쿠노미치(철학의 길)
은각사를 두고 오르거나 내려올 때 운명처럼 마주할 샛길이다. 도랑 곁으로 벚나무 숲이 약 1.8km 두런두런 펼쳐진다. 이 길은 유난히 계절을 더디게 받아들인다. 여름에 단골 피서지인 까닭도 나무 이파리가 쌀쌀한 바람을 길게 맞은 후에야 천천히 시들기 때문이다. 길은 사계절을 단단히 붙들어 카멜레온처럼 옷을 갈아 입는다. 봄에는 벚꽃의 핑크 빛으로, 여름에는 반딧불의 노란 빛으로, 가을에는 단풍의 붉은 빛으로, 겨울엔 눈의 하얀 빛으로, 느릿느릿한 환희가 팝콘처럼 터진다. 길의 양 옆으로 슬로라이프를 지향하는 나무집과 상점은 무에 그리 끙끙대며 살아왔는지 의문을 갖게 한다. 걷는다기 보다 뭔가에 끌려가는 느낌은 왜일까. 철학자 니시다 키타로가 이곳에서 길을 잃으면서 붙여진 이름인데, 마음을 내려놓기엔 철학자가 아니어도 가능하다.
물이 흐르는 공중 사찰, 기요미즈데라(淸水寺)
사찰 중의 사찰이다. 이곳이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된 이유는 778년 창건이란 역사와 더불어 오토와산 절벽에 아찔하게 걸린 본당 덕분이다. 본당에서 내려다 보면, 빽빽한 나무에 포박되어 기차처럼 연결된 사찰에 머물던 시선은 반대편 주황빛 파고다로 가파르게 수직 상승한다. 유난히 바람이 모이는 곳이기에, 역사적 주인공이 된 듯한 착각은 부인할 수 없는 일. 청수(淸水)란 이름으로 눈치챘겠지만, 청정수가 사찰 내부를 관통한다. 오노타키 폭포에서 콸콸 쏟아지는 세 줄기 물의 효능은 건강ㆍ사랑ㆍ학업 등 지능적으로 나뉜다. 만일 사랑의 열병을 앓고 있다면 지슈진자에 발 도장을 찍을 것. 두 눈을 감고 두 돌 사이를 무사히 걸어 터치하면 그 연애는 성공적이란다. 가려진 눈 대신 누군가에게 인솔을 청하는 편법도 용인된다. 사찰 밖 언덕길은 교토 대표 상점이 군림해 지갑을 털 준비도 갖췄다.
강미승 칼럼니스트 frideameetssomeone@gmail.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