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 악덕업체, 20시간 중노동에
보호장구 미착용 등 안전불감증
정부 대책 발표 2개월여 만에
비슷한 사건… 면피성 대책 그쳐
고교생 현장폐지 여론은 성급
직업교육 제공 노력은 계속돼야
겨우 18세의 학생들이 기계에 끼어 목숨을 잃고, 회사 옥상에서 투신하고, 일하다 손가락이 잘렸다. 이달 들어 발생한 특성화고 현장실습생들의 비극(본보 29일자 1ㆍ10면)이다.
이상현(35) 특성화고권리연합회 추진위원장은 28일 한국일보와 인터뷰에서 “일부 악덕 업체들이 일을 배우러 온 학생들에게 장시간 노동을 시키거나 정직원들도 하기 싫어하는 일을 맡긴다”며 “비정규직보다 더한 차별”이라고 말했다. 지난 7월 학생들과 함께 연합회를 꾸린 이 위원장은 최근 제주에서 사망한 이민호군 사건을 조사, 발표하며 주목 받고 있다.
그는 “중노동에 지친 학생이 교사나 학교에 하소연해도 ‘업체 사정을 봐서 연장 근무에 동참하라’고 종용하는 사례도 접수됐다”라고 털어놨다. 연합회에 신고된 사례들을 보면, 하루 8시간 노동만 허용되는데도 10시간 이상은 다반사고 20시간 가까이 중노동을 시켰다. 또 밀폐된 공간에서 용접하고, 보호장구도 착용하지 않고, 비상구가 막혀 있는 등의 안전불감증 문제도 다수 접수됐다. 그는 “민호 사건의 경우, 업체 측은 중환자실에서 민호군 부모를 만나 산재보험 신청서를 작성하면서 사고 원인 부분에서 개인 과실로 몰아가려고 했다”고 말했다.
정부의 책임도 크다. 올해 초 전주 콜센터 현장실습생이 실적 압박으로 목숨을 끊는 사건이 발생하자 교육부는 지난 8월 근로가 아닌 학습 중심의 개선방안을 발표했다. 이 위원장은 “대책 발표 2개월여 만에 또 비슷한 사건이 발생하지 않았느냐”며 “현장 대응책이 아닌, 사회 비난을 피하기 위한 면피성 대책에 불과했다는 것을 증명한 셈”이라고 비판했다. 특성화고 학생들조차 “정부가 대책을 발표한다 해도 실제로 현장에서 적용될지 믿기 어렵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고 했다.
‘고교생 현장 실습 폐지’ 여론에 대해서는 경계심을 드러냈다. 그는 “특성화고 학생들에게 양질의 직업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하려는 노력과 제도는 계속돼야 한다”며 “벼룩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우는 우를 범해서는 안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위원장은 인문계고 출신이다. 하지만 특성화고에 대한 문제의식을 늘 가지고 있었다. 그는 “특성화고 학생들은 ‘학업 성적이 떨어져서 비교적 질이 떨어지는 직업을 갖거나 비정규직을 갖게 된다’라는 사회적 편견과 싸우고 있다”며 “내가 만난 상당수 학생들은 정말 자기 꿈과 주관이 분명하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고 말했다. 이어 “학력을 기준으로 한 차별풍토는 없어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직업 훈련 중인 청소년과 유사 형태의 일을 하는 청소년까지 확대 적용할 수 있는 ‘청소년 노동보호법’(가칭) 제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현행 근로기준법에 갱내 노동 금지, 노동시간 규정 등 청소년 노동 보호 조항들이 있지만 기본적ㆍ소극적 보호에 그칠 뿐이라는 것이다.
현재 연합회 운영진은 고교생 50여명, 멘토단(변호사ㆍ노무사ㆍ교수ㆍ심리상담사ㆍ교사 등) 30여명이 참여 중이다. 고교생 회원은 1,200여명, 졸업생 회원도 30여명 된다. 향후 사단법인을 출범시켜 성인 회원도 모집할 계획이다.
글ㆍ사진=강주형기자 cubi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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