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유공금 중단 외 압박카드 없어
추가상황 악화 방지에 주력할 듯
중국은 29일 북한이 75일 만에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도발을 감행하자 불쾌함과 난처함이 교차했다.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 특사의 ‘빈손 귀국’에 이어 대북 영향력 감소가 만천하에 확인됐지만 그렇다고 북한의 전략적 가치를 포기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중국은 북한을 향해 경고성 메시지는 던지되, 북미 양측을 모두 겨냥한 양비론과 함께 한반도에서의 추가적인 상황 악화 방지에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중국은 이날 겅솽(耿爽) 외교부 대변인의 정례브리핑을 통해 북한의 이번 도발에 대해 엄중한 우려와 강력한 반대를 표명했다. 겅 대변인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에는 북한의 탄도미사일 발사 활동에 대한 명확한 규정이 있다”면서 “중국은 북한의 미사일 발사 활동에 대해 엄중한 우려와 반대를 표명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북한이 안보리 결의를 준수하고 한반도 긴장을 가속하는 행동을 중단하기를 바란다”고 촉구했다. 겅 대변인은 이어 사실상 한미일 3국을 겨냥해 “유관 각국도 신중히 행동하고 지역공동체와 함께 평화와 안정을 유지하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사실 중국의 이 같은 반응은 북한의 이전 탄도미사일 도발 때와 별 차이가 없다. 북한이 이번에 발사한 ICBM이 미국의 수도인 워싱턴까지 사정권에 둔 것으로 평가되고 북한 역시 새로운 ICBM인 화성-15형 발사에 성공해 핵무력을 완성했다고 주장하는 것에 비춰보면 지나치게 평범하다. 게다가 중국으로서는 얼마 전 쑹타오(宋燾) 공산당 대외연락부장이 시 주석의 특사 자격으로 방북했다가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을 만나지도 못한 채 귀국하는 수모를 겪었고, 이번 도발로 대북 영향력이 현저히 약화했음이 드러났다. 당장 30일부터는 시진핑 2기 체제를 대외적으로 과시하는 ‘세계 정당 고위급 대화’가 시작된다. 중국 입장에선 분기탱천할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중국의 무미건조한 반응을 두고 북중관계의 딜레마를 보여주는 것이란 얘기가 나온다. 중국으로서는 미국과의 패권 경쟁을 감안할 때 동북아시아에서 힘의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선 북한을 버릴 수 없는 만큼 어떤 식으로든 북중관계를 ‘관리’해야 할 필요성이 크다는 점에서다. 중국이 북한뿐만 아니라 유관 각국을 거론하며 긴장 고조 행위 자제를 요구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쌍중단(雙中斷ㆍ북한의 핵ㆍ미사일 도발과 한미 연합군사훈련 동시 중단) 주장과 마찬가지로 북미 모두를 비판하는 양비론을 펼친 셈이다.
그렇다고 중국이 북한의 도발에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고 넘어가기는 어렵다. 특히 미국과의 협력 기조를 유지하기 위해선 일정한 성의 표시가 필요하다. 이에 따라 유엔 안보리에서 추가 대북제재가 논의될 경우 중국의 입장은 그 어느 때보다 관심의 대상이다. 북한 여행까지 전면금지하는 방안도 남아 있긴 하지만 북한 경제의 목숨줄로 여겨온 원유공급 중단 카드가 본격적으로 테이블에 오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중국이 이에 호응할 지는 미지수지만 외면할 경우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거센 비판에 직면할 수 있다.
베이징(北京)의 한 외교소식통은 “북한의 도발 때마다 중국의 입장이 곤란하고 난처했던 게 사실이지만 이번엔 원유공급 중단 외엔 남은 외교적 수단과 대북 압박 카드가 거의 없다는 점에서 중국의 고민이 어느 때보다 깊을 수밖에 없다”며 “중국으로서는 이번에도 한반도 상황이 추가적으로 악화되지 않도록 하는 데 주력하겠지만 시 주석이 주창한 신형국제관계가 과거 혈맹이었던 북한에 의해 본격적으로 도전받고 있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고 말했다.
베이징=양정대 특파원 torc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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