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10년 이상 소액연체자 159만명
소득 따져 빚 전액 탕감할 것”
최소 80만명 빚 전액 탕감 받을 듯
빚 탕감 과정서 세금투입 없어
기존 성실상환자엔 더 큰 혜택
민간서 빚진 연체기간 9년차는 소외
형평성 논란도 불거질 듯
정부가 1,000만원 이하 빚을 10년 넘게 갚지 못한 장기소액연체자 159만명을 대상으로 소득을 따져 상환 능력이 없다고 판단되면 빚을 전액 탕감해주기로 했다. 부채의 원금 기준으론 6조2,000억원 규모다.
정부가 상환능력이 없다고 판단하는 일차적인 기준은 중위소득의 60% 이하다. 대략 1인가구 기준 월소득 99만원 이하면 전액 빚 탕감 후보가 될 수 있다. 만약 중위소득 60%를 웃돌아도 채무자의 재기를 돕는 차원에서 빚 원금의 90%까지는 깎아주기로 했다.
때문에 빚을 전액 탕감 받는 잠정 후보는 최대 159만명 가량이지만 실제론 대략 절반 정도가 빚을 전액 탕감 받을 걸로 추정된다. 빚 탕감 과정에서 정부 예산은 들어가지 않게 설계된 점도 눈에 띈다. 그러나 빚을 완전 탕감해주겠다는 새 정부 정책은 그간 유례가 없었다는 점에서 정책 시행 과정에서 파장이 예상된다.
금융위원회는 29일 이 같은 내용을 골자로 한 ‘장기소액연체자 재기지원 방안’을 발표했다. 정부가 정한 전액 빚 탕감 대상은 국민행복기금과 민간ㆍ공공기관이 보유한 연체기간 10년 이상, 빚 원금 1,000만원 이하인 장기소액연체채권이다. 정부가 추산한 지원대상 규모는 최대 159만명이다. 올해 10월31일을 기준으로 연체기간이 10년을 넘기고 빚 원금이 1,000만원 이하인 사람들이다. 쉽게 말해 2007년 10월 이전부터 지금까지 빚을 갚지 못한 사람들만 추려낸 것이다.
행복기금 83만명+민간ㆍ공공 빚 연체자 76만명이 후보
현재 이 같은 장기소액연체채권 대부분은 시중 금융기관을 한참 떠도는 과정을 거쳐 지난 정부 때 채무조정을 위해 설립된 국민행복기금과 민간 금융사, 금융공공기관 등에 넘겨져 있는 상황이다.
우선 국민행복기금으로 넘어간 연체채권 가운데 전액 빚 탕감 대상인 장기소액연체자는 83만명이다. 국민행복기금 외 대부업체와 같은 민간 금융사, 금융공공기관이 보유한 장기소액연체는 76만명분에 달한다. 이를 모두 합치면 159만2,000여명으로 정부는 이들을 대상으로 소득과 재산을 따져 상환능력이 없다고 판단되면 빚을 전액 탕감해주기로 했다. 1,000만원을 10년 이상 못 갚을 정도면 사실상 극빈층에 해당하는 만큼 이들의 빚과 이자를 완전히 탕감해 재기의 발판을 마련해주는 게 경제에도 보탬이 된다는 게 정부의 판단이다.
최소 80만명은 빚 탕감 받을 듯
실제 소득심사 과정을 지켜봐야 하겠지만 일단 정부 추산으론 이들 대부분이 극빈층에 해당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분석된다.
국민행복기금 미약정자(기금에 빚을 감면 받는 대신 나머지 빚을 갚겠다는 약정을 맺지 않은 연체자) 40만3,000명 가운데 약 46%는 중위소득의 40% 이하(1인가구 기준 월소득 66만원 이하)이며 대부분 신용등급 8~10등급의 저신용자인 것으로 분석됐다. 정부는 중위소득 60% 이하이면서 1톤 미만 영업용 차량과 같은 생계형 재산을 빼고 회수 가능한 자산이 없어 상환능력이 없다고 판단되면 빚을 전액 탕감해주기로 했다.
159만명은 모두 일단 소득심사 등을 거쳐야 전액 빚 탕감 수혜 여부가 가려진다. 현재 정부도 정확히 몇 명이나 전액 빚 탕감을 받을 수 있을진 추산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다만 국민행복기금 미약정자 기준을 전체로 확대해보면 대략 159만명 중 적어도 80만여명은 전액 빚 탕감을 받을 걸로 추정된다.
기존 성실상환자에겐 더 큰 혜택
이번 대책은 그간 조금씩이라도 빚을 갚아 온 성실상환자에게 더 큰 혜택이 돌아가는 구조로 만들어졌다.
국민행복기금으로 빚이 넘어간 장기소액연체자 83만명은 약정자로 미약정자로 나뉜다. 지난 2013년 행복기금은 시중의 연체채권을 사들여 연체자가 채무조정을 신청하면 원금의 30~60%를 깎아주고 나머지는 10년에 걸쳐 나눠 받는 식으로 빚을 줄여줬다. 이처럼 기금에 빚을 조금씩 갚는 조건으로 원금의 30~60%를 탕감받은 사람이 약정자다.
반대로 미약정자는 빚을 한푼도 갚지 않고 연체 중인 사람이다. 미약정자의 평균 빚 원금은 450만원으로 약 14년7개월을 연체 중인 사람들이다. 사실상 고의로 빚을 갚지 않았다기 보다 사실상 형편이 어려워 빚을 갚지 못한 사람들인 셈이다.
정부는 약정자 42만7,000명은 본인 신청시 소득을 따져 상환능력이 없다고 판단되면 그 즉시 모든 빚을 탕감해주기로 했다. 미약정자 40만3,000명은 같은 조건일 경우 즉시 기금의 추심은 중단하지만 빚은 3년 후에 탕감해주기로 했다.
이명순 금융위 중소거민금융정책관은 “추후 은닉재산이 발견될 가능성을 염두에 둔 조치”라며 “도덕적 해이를 최소화하는 장치로 보면 된다”고 말했다.
민간ㆍ공공기관 연체자는 본인이 신청해야
정부는 형평성 차원에서 민간 금융사나 공공기관이 보유한 장기연체채권도 똑같이 없애주기로 했다. 다만 이 역시 성실상환 중인 사람과 연체 중인 사람 간에 차이를 뒀다.
현재 민간금융권(63만5,000명)과 금융공공기관(12만7,000명)으로 연체채권이 넘어간 장기연체자 중 계속해서 연체 중인 사람은 총 76만2,000명이다. 이들 역시 본인이 빚 탕감 기준에 해당된다고 하면 일단 자산관리공사(캠코)와 서민금융통합지원센터에 신청을 해야 한다.
소득심사를 거쳐 빚 탕감 기준에 해당되면 추심은 그 즉시 중단되고 대신 연체채권은 3년 뒤 사라진다. 다만 민간과 공공이 보유 중인 연체채권을 처리하기 위해 정부는 별도의 한시로 운영되는 연체채권 매입기관을 세우기로 했다. 일종의 국민행복기금과 비슷한 역할을 하지만 대신 연체채권을 매입해 이를 소각하는 일만 한다. 재원은 국민행복기금이 채권을 회수해 생긴 이익금을 가져와 쓰기로 했다. 세금 대신 금융사의 돈으로 장기연체자들의 빚을 없애주는 구조다.
현재 장기연체자지만 신용회복위원회의 채무조정 프로그램을 통해 빚을 감면 받고 나머지 빚을 갚고 있는 성실상환자는 중위소득 60% 이하 기준을 만족하면 3년 유예기간 없이 그 즉시 빚을 없애준다. 내년 2월부터 한국자산관리공사와 서민금융통합지원센터에서 일괄 신청을 받는다. 이들 기관에 가면 그 자리에서 소득심사 등을 바로 받을 수 있고, 한달 안에 수혜 대상자인지를 통보해준다.
형평성 논란은 없나
정부는 장기소액연체자 외 국민행복기금으로 넘어간 연체채권 중 연체기간이 10년 미만이거나 빚 원금이 1,000만원을 넘는 연체채권도 본인이 신청하면 적극적으로 빚을 깎아주기로 했다. 소득을 따져 최대 90%까지 빚을 깎아준다. 이전엔 연체기간 15년을 넘기고 중위소득 24% 이하인 초극빈층에게만 빚을 90% 깎아줬는데 이번에 이 기준을 대폭 낮춘 것이다.
정부의 이 같은 판단은 이미 행복기금이 매입한 연체채권이라 별도의 비용이 들지 않는 만큼 차라리 이 번에 정리하는 게 낫다는 생각에서다. 이 기준에 해당되는 대상자는 총 100만명이다. 이들은 본인 판단에 따라 빚을 90%까지 감면 받고 나머지 10%만 갚는 식으로 이전보다 선택의 폭이 넓어진 셈이다.
다만 이번 정부 대책에서 빠진 대상자도 있다. 민간금융사에 빚을 져 연체기간이 10년에 미치지 못한 연체자들이다. 이들의 경우 이번 정부 대책에서 완전히 빠졌다. 만약 정부가 이들 빚까지 탕감해줄 경우 장기소액연체자만 지원해준다는 정책 취지에서 어긋난다고 판단한 데 따른 것이다. 하지만 연체기간이 9년 정도로 긴데도 아깝게 정부 수혜를 받지 못한 연체자들의 경우 당연히 정부에 불만을 가질 수밖에 없다.
정부 정책 성공 가능성은
이번 대책의 성공 관건은 역시 신청자가 얼마냐 많을 것이냐에 달려 있다. 국민행복기금 역시 2013년 출범 당시엔 기대와 우려를 한 몸에 받았다. 연체자의 빚을 30~60%씩 깎아주는 방식이 시장 원리에 어긋난다는 우려와 함께 연체자의 재기를 돕는 차원에선 긍정적이란 평가가 교차했다.
하지만 정책 시행 뒤엔 곧바로 시들해졌다. 장기연체자의 특성상 본인이 수혜 대상자인지 모르는 경우도 많아 정작 신청인원이 많지 않았던 데다 빚을 깎아줘도 나머지 빚을 갚을 형편이 안돼 제도를 이용하지 않는 미약정자도 상당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간 행복기금에서 채무조정을 받은 사람은 전체 대상자 280만명 중 20%인 58만2,000명에 불과하다.
이번에도 비슷한 상황이 되풀이 될 수 있다. 장기연체자의 경우 연체기간 15년이 되면 소멸시효가 도래돼 굳이 신청하지 않더라도 빚을 완전 탕감 받을 자격을 갖추게 된다. 기존 연체자가 빚 탕감을 신청할 경우 소득심사를 통과해도 추심만 중단되고 3년 뒤 채권이 소각되는 만큼 경우에 따라선 차라리 채권의 소멸시효 도래를 기다리는 게 나을 수도 있다.
정부는 내년 초부터 대대적인 홍보전에 돌입할 예정이다. 이명순 국장은 “정부가 상당히 홍보를 해서 본인이 수혜 대상자인데 이를 몰라 수혜를 받지 못하는 일이 없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동욱 기자 kdw1280@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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