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가 법으로 엄격하게 제한한 임신중절을 새롭게 실태 조사하고 논의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조국 민정수석은 26일 ‘낙태죄’ 폐지 청와대 청원에 답하면서 “내년에 임신중절 실태 조사를 실시해 현황과 사유를 정확히 파악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태아의 생명권은 매우 소중한 권리지만 처벌 강화 위주 정책으로 음성화 야기, 불법 시술 양산” 등의 부작용이 발생한다며 “여성의 자기 결정권 외에 불법 임신중절 수술 과정에서 여성의 생명권ㆍ건강권 침해 가능성 역시 함께 논의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임신중절 문제는 헌법소원이 제기돼 2012년 ‘합헌’ 결정까지 나온 해묵은 논란이다. 국내만의 문제도 아니지만 나라마다 허용 기준은 각각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5개국 중 통상 12주 미만의 중절을 전면 허용한 나라가 25개국으로 다수다. 일본 등 4개국은 제한을 두면서도 사회경제적 이유의 중절을 인정한다. 전염성 질환이나 성폭행 등으로 임신중절 기준을 엄격히 정한 나라는 한국 등 6개국에 불과하다.
생명권과 여성의 자기결정권은 둘 다 소중한 가치다. 하지만 어느 쪽이 더 중요한가 하는 가치 논쟁으로 치달아서는 의미 있는 사회적 합의나 해법을 찾기 힘들다. 이 갈등이 제로섬 게임처럼 되지 않으려면 그동안 논란에서 소홀했던 부분을 새롭게 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조 수석이 지적한 ‘여성 건강권’도 그중 하나다. 2011년 복지부 조사에 따르면 임신중절을 한 사람들의 상당수가 “원치 않아서” “미혼이라서”와 함께 “사회경제적 이유”를 들었다고 한다. 낳고 기를 엄두조차 내지 못하는 상황 자체가 커다란 도전인 데다, 거기서 벗어나기 위해 눈물을 머금고 선택하는 불법 중절로 임신부는 심각한 건강 피해를 볼 수 있다. 한해 15만 건(2010년 조사)이 넘는 것으로 추정되는 국내 불법 임신중절을 어떻게 줄일 수 있을지를 현실적으로 고민해야 한다.
그보다 중요한 것은 여성이 생명에 대한 책임 있는 자기 결정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일이다. 늘 비혼모라는 따가운 시선을 느껴야 하고, 출산과 육아는 사회가 지원한다는 믿음을 갖지 못하는 저소득 여성은 언제나 임신중절을 고민할 수밖에 없다. 이에 더해 아이를 낳더라도 경제력이 안 되는 경우 출생 신고 없이 입양 보낼 수 있는 독일의 ‘익명 출산제’나, 낳은 아기를 두고 가는 ‘베이비박스’ 합법화처럼 출산 부담을 더는 제도도 고려할 만하다. 임신중절 공론화가 이런 사회 인식ㆍ제도의 개선 논의로 확장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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