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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Biz 리더] "Just do it"... 운동화에 대한 믿음으로 달려온 파워맨

입력
2017.11.25 10:00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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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상선수 꿈 못 이루고

와플기계로 신발 바닥 구워

1972년 첫 신제품 만들어

첨단 기능 중심 디자인 강화

'에어 조던' 등 브랜드 파워로

지난해 매출 324억달러 기록

"포기는 해도, 중단해선 안 된다"

에어쿠션 등 기술 혁신에 집중

2015년 파커에게 물려주고 퇴진

나이키 창업자인 필 나이트.
나이키 창업자인 필 나이트.
나이키 로고.
나이키 로고.

“나에겐 달리기에 대한 믿음이 있었다. 사람들이 매일 밖에 나가 몇 마일씩 달리면 세상은 더 좋은 곳이 될 거라고, 내가 파는 신발이 달리기에 더없이 좋은 신발이라고 믿었다.”

나이키의 창립자 필 나이트가 지난해 출판한 자서전 ‘슈독’(Shoe Dog)에서 밝힌 자신의 성공비결이다. 슈독은 1971년 나이키 창업 당시 달리기와 운동화에 대한 열정 하나로 뭉쳤던 회사 동료들이다. 나이트는 “사람은 평균적으로 하루에 7,500보씩 평생 지구 여섯 바퀴를 돈다”며 “슈독은 인류의 발이 지구 표면과 접촉하는 부분을 다듬는 것뿐 아니라, 인류를 서로 이어주기 위한 더 나은 방식을 고민했던 사람들”이라고 회고했다.

나이키의 ‘달리기’에는 언제나 나이트의 열정과 확신이 있었다. 나이키는 1972년 부엌에 있던 격자무늬 와플 기계로 신발 바닥을 구워 첫 신제품을 내놓은 이후, 45년만인 지난해 나이키는 매출 324억달러를 기록한 거대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했다. ‘에어조던’ 농구화 시리즈로 잘 알려진 미국 농구선수 마이클 조던과 협업 제품을 통해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고, ‘Just Do It’ 등 유명 슬로건을 통한 창의적 마케팅에도 선두주자였다. 특히 독일 아디다스 등 선두업체들이 유럽지역에 제조라인을 운영할 때 저임금 국가인 아시아에 생산기지를 구축, 원가를 절감함으로써 나이키가 연구개발(R&D) 및 디자인에 집중할 수 있었던 것도 나이트의 탁월한 혜안 덕분이었다. 나이키의 지난해 기준 브랜드 가치는 296억 달러로 명품 브랜드로 유명한 루이뷔통(288억 달러)를 상회한다.

올해 79세인 나이트는 2015년 나이키의 회장 및 최고경영자(CEO) 자리를 마크 파커에게 물려주고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 당시 나이트는 미국 CNBC 방송과 인터뷰에서 “많은 고민을 거듭한 끝에 몸과 마음이 모두 편안한 지금 물러나기에 적절한 시기가 왔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후계자 파커 CEO는 2020년까지 나이키 매출 500억 달러 달성, 첨단소재 운동화 개발을 통해 마라톤 완주 세계기록 1시간대 진입 등의 중장기 과제를 내세우고 나이키의 혁신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나이키의 핵심자산은 엘리트 선수와 파트너십, 첨단기능 중심 디자인 역량, 브랜드 파워”라며 “달리기에 대한 믿음 하나로 기업을 일군 나이트의 경영 정신은 나이키의 유전자에서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나이키 운동화 '에어맥스'
나이키 운동화 '에어맥스'

“기업가는 포기할 수 있어야 한다”

나이트는 청년 시절 육상선수가 목표였다. 미국 오레곤대 소속 중거리 육상선수였지만 성적은 신통치 않았다. 그는 육상선수의 꿈을 접고 미 스탠퍼드경영대학원에 진학해 선수 시절부터 관심이 컸던 운동화 사업으로 진로를 바꿨다. 사업 초창기는 실패의 연속이었다. 합리적 가격의 일본산 운동화가 세계 시장을 장악할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 1963년 일본 운동화 회사인 ‘아식스’의 전신 ‘오니츠카’를 찾아가 미국 독점 판매권을 따냈지만 미국 스포츠용품 유통업체와 납품 계약이 계속 퇴짜를 맞았다. 생계를 위해 회계사 일을 병행하며 사업을 진행했지만 창업 후 6년 동안 월급을 단 한 푼도 집에 가져가지 못했다. 나이트는 당시 어려웠던 시절을 회상하며 “기업가는 결코 포기해선 안 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나는 포기할 때를 알고 다른 것을 추구할 때를 아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며 “포기가 중단을 의미하지 않는다, 기업가는 결코 중단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나이트는 일본 오니츠카와의 사업의 어려워지자 1971년 독립 브랜드 나이키를 창업한다. 육상선수 시절 코치였던 빌 바우어만을 주축으로 촉망받는 육상선수였으나 사고로 하반신이 마비된 밥 우델 등 달리기와 운동화에 대한 열정으로 가득 찬 동료들, 일명 슈독이 모이게 된 순간이다. 나이키의 유명한 로고는 미 포틀랜드 주립 대학에 재학 중이던 캐롤라인 데이비슨에게 단돈 35달러(요즘 돈으로 환산하면 200달러)를 주고 디자인했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승리의 여신’ 이름에서 차용한 나이키(NIKE)는 기억하기 쉬운 어감과 ‘V’ 모양의 역동적인 브랜드 이미지로 적합했다. 나이트는 “원래 처음 아이디어는 ‘디멘션 식스’였다”며 “그걸 사명으로 했다면 지금의 나이키는 없었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나이키 성공전략 ‘제품보다 브랜드 우선’

나이트는 아디다스와 퓨마 등 기존 스포츠용품 선두업체와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기술 혁신에 투자를 집중했다. 1971년 동업자인 빌 바우어만이 개발한 ‘와플형 밑창’이 신제품 개발의 시작이었다. 와플 제조기에 액체 고무를 부어 만든 고무 스파이크가 장착된 운동화는 기존 제품에 비해 가벼우면서도 뛰어난 지면 마찰력을 선보였다. 나이키는 이후 또 하나의 혁신 기술인 ‘에어쿠션’을 선보인다. 외부 압력에도 원상태로 돌아가는 압축 공기의 성질을 이용해 탄력 있는 운동화 밑창을 만든 것이다. 1982년 에어쿠션 기술이 적용된 최초의 농구화 ‘에어포스 원’을 선보이며 미국 스포츠업계의 강자로 급부상한다. 선두주자였던 아디다스를 제치고 미국 내 판매 1위를 차지한 것은 물론 1993년엔 스포츠화 1억 켤레 판매라는 경이로운 기록을 세우게 된다.

나이트가 가장 중시한 성공전략은 사업을 확장할 때마다 스포츠 스타와 브랜드를 전면에 내세우며 반복 강조해 경쟁사가 모방 불가능한 경쟁 우위를 확보하는 것이다. 나이키는 1980년대 초반 에어로빅과 캐주얼 신발 시장에 의욕적으로 진출했으나 연거푸 실패하면서 경영위기에 봉착했다. 나이트는 실패의 원인을 분석한 결과 소비자들의 관심을 받으려면 제품 자체가 아닌 브랜드에 집중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나이트는 “고객과 브랜드를 이해해야 한다”며 “캐주얼 운동화의 실패로 브랜드가 기업에서 차지하는 의미를 알게 됐다”고 설명했다.

나이트가 이후 찾은 해법이 바로 나이키의 가장 큰 성공의 밑바탕이 됐던 ‘에어 조던’ 브랜드 출시이다. 1985년 미국 프로농구(NBA)에 막 들어간 마이클 조던에게 당시 연 50만 달러라는 파격적 조건으로 계약을 맺으면서 화제를 모았고 에어조던 운동화는 단 두 달 만에 7,000만 달러어치가 팔리는 성공을 거뒀다. 워싱턴포스트(WP)는 “나이트는 이후 인접 영역 진출 시 브랜드 정체성을 대변하는 최고 스포츠 스타와 협력, 첨단 기술을 적용한 제품을 출시하는 방법을 반복적으로 구사했다”며 “골프 시장에서 타이거 우즈와 계약을 맺은 데 이어 야구와 축구, 싸이클링, 배구, 등에서도 같은 전략을 사용해 경쟁사와 격차를 벌렸다”고 전했다.

나이키의 마크 파커 CEO
나이키의 마크 파커 CEO

경영위기 나이키, 패스트 패션으로 극복

나이키는 현재 경영위기에 직면했다. 로이터에 따르면 나이키의 올해 1분기 매출액은 90억 달러로 7년 만에 가장 저조한 수준이다. 스포츠용품 유통업체인 스포츠어소리티와 스포츠샬레가 파산하면서 나이키 유통망이 대폭 축소된 데다 아디다스와 미국 언더아머 등의 점유율 확대로 판매량에서도 고전하고 있는 게 원인이다. 나이키는 지난 9월 전체 인력의 2%에 해당하는 1,400명을 감원한다는 계획을 발표하기도 했다.

나이키의 마크 파커 CEO는 최근 성명을 통해 “제품 개발 속도를 높이고 해외 주요 시장을 집중 공략하는 방법으로 경쟁력을 강화하겠다”며 전반적인 사업 개편 계획을 발표했다. 제품 개발 속도 향상은 이른바 ‘패스트 패션’을 지향한다는 의미다. 최신 유행을 즉각 반영해 빠르게 제작하고 유통하는 패스트 패션 업체처럼 나이키도 빠른 제품 회전율로 소비자들의 마음을 사로잡겠다고 나선 것이다. 이에 따라 나이키는 소비자의 욕구를 더욱 빨리 신제품에 반영하기 위해 디자인에서 상품이 매장에 진열되기까지 걸리는 시간을 대폭 단축한 생산 시스템인 ‘익스프레스 레인’도 선보인다는 계획이다. 가장 큰 규모의 글로벌 시장인 중국에서 익스프레스 레인을 본격 가동, 중국은 물론 한국과 일본 등에도 제품을 빠르게 공급할 예정이다.

또한 세계 최대 전자상거래 업체인 아마존과도 직거래를 시작한다. 나이키는 지금까지 백화점과 전문점을 통해 운동화와 스포츠웨어를 판매하면서도 모조품 유통 등에 의해 브랜드 가치가 훼손될 수 있다는 이유로 아마존 납품에 대해선 회의적이었다. 하지만 경쟁사인 아디다스와 언더아머 등이 아마존에 제품을 공급하며 성장세를 이어가자 더는 고집을 부리기가 어려워졌다. 로이터통신은 “나이키의 아마존 판매가 본격화되면 미국 내 나이키 매출이 3억~5억달러 가량 늘어날 것으로 예상한다”며 “나이키의 글로벌 판매량 중 1%에 해당하는 규모”라고 분석했다.

김현우기자 777hyunw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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