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ㆍ단백질 등으로 구성된 꼬리
에너지 저장소ㆍ다리 보조수단
암컷에게 어필하는 매개 역할도
위협 느끼면 척수 반사적으로
미리 결정된 '탈리절'부위서 떼내
적의 시선 끌고 유유히 사라져
한번 잘린 꼬리 재생하기 위해선
생식 중지, 모든 에너지 쏟아내
재생되더라도 검고 볼품 없어
고위 정치인이나 재벌 기업가와 관련한 뉴스를 보다 보면 ‘꼬리 자르기’라는 표현을 종종 볼 수 있습니다. 자신에게 큰 문제가 생겼을 때 아랫사람에게 책임을 돌리고 자신은 비켜가는 행태를 두고 이르는 말인데요. 사람들이 흔히 사용하는 이런 표현을 당사자인 도마뱀은 과연 어떻게 생각할까요.
꼬리 자르는 도마뱀의 비밀은 ‘탈리절’
도마뱀이란 단어는 짧고 작은 동강을 의미하는 ‘도막’이라는 단어에 뱀을 붙여서 만든 것입니다. 위험할 때 꼬리를 잘라내는 모습에서 비롯된 것이죠. 서양에서도 도마뱀의 꼬리자르기는 꽤 인상적인 행동이었던 듯 합니다. 영어에서 꼬리를 뜻하는 ‘tail’이라는 단어가 자르다는 의미의 어근으로 쓰이면서 ‘재단사(tailer)’, ‘삭감하다(curtail)’ 등의 단어가 만들어지거든요. 꼬리라는 단어를 생각했을 때 도마뱀의 꼬리를 생각하고, 그 꼬리가 잘려나가는 모습까지 연상하는거죠.
사람들의 시선에 도마뱀은 위험에 빠지면 쉽게 꼬리를 잘라버리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도마뱀의 꼬리 자르기는 잘라낼 부위가 미리 결정된 상태에서 유사시 척수 반사에 의해 행동에 옮겨지는 일종의 신체 반응 과정입니다. 도마뱀 꼬리에는 꼬리뼈가 느슨히 이어진 ‘탈리절’이라는 부위가 여러 개 있는데요. 이 자리에서 꼬리가 잘려나가면 ‘꼬리조임근’이 재빨리 꼬리 동맥을 수축해 피가 흘러내리는 것을 최소화 한다고 하네요. 실제로 야외에서 도마뱀 꼬리가 잘려나가는 장면을 보면 처음에 약간의 출혈이 발생하지만 이내 멈추죠.
도마뱀처럼 자신이 스스로 신체의 일부분을 떼어버리는 행동을 ‘자절(自切) 현상’이라고 합니다. 척추동물인 도마뱀이 자절 현상이 나타나는 대표적인 동물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은 대부분 무척추동물에서 발생합니다. 지렁이 같은 환형동물이나 연체동물(문어류), 극피동물(불가사리류), 갑각류(갯가재, 게), 곤충류(메뚜기), 거미류 등이죠. 집에서 살아있는 꽃게를 손질할 때 다리 하나를 잘라내면 다른 다리가 스스로 떨어지는 경우도 흔히 볼 수 있죠.
도마뱀과 뱀을 구분하는 법
도마뱀은 분류학적으로 뱀목(유린목)에 속합니다. 뱀목은 다시 뱀아목과 도마뱀아목으로 나뉘는데요. 공통의 조상에서 우리가 알고 있는 뱀 무리가 먼저 떨어져 나왔고 도마뱀 무리는 계속해서 진화하면서 살아온 것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도마뱀과 뱀을 구분하는 가장 쉽고 당연하게 여겨지는 기준은 다리의 유무입니다. 이 때문에 오히려 도마뱀과 양서류인 도롱뇽을 구별하지 못하는 사람이 더 많죠. 하지만 다리가 없는 ‘무족 도마뱀’도 있다는 사실. 흔하지는 않지만 이들은 얼핏 보면 뱀과 혼동하기가 쉽습니다.
분류학적으로는 뱀과 도마뱀을 두개골의 모양과 눈꺼풀을 움직일 수 있는지 여부로 판단합니다. 뱀은 자신의 머리 크기보다 훨씬 큰 먹이를 먹을 수 있는데요. 아래 턱이 붙어있지 않아 근육의 신축성이 허락하는 한 얼마든지 큰 먹이를 소화기관으로 밀어 넣을 수 있는 거죠. 그에 반해 도마뱀은 사람과 마찬가지로 턱이 빠지지 않아 입 크기에 꼭 맞는 먹이만 먹을 수 있습니다. 뱀은 눈꺼풀이 없는 반면 도마뱀은 움직일 수 있는 눈꺼풀을 가진 경우가 많다는 것도 차이점으로 들 수 있겠네요.
우리나라에 살고 있는 도마뱀은 총 6종인데요. 크게 도마뱀부치과와 도마뱀과, 장지뱀과로 나뉩니다.
도마뱀부치는 말레이시아나 필리핀 등 동남아시아 지역으로 여행을 갈 때 식당이나 숙소 벽에 붙어있는 도마뱀류와 비슷합니다. 머리가 크고 눈도 커 귀여운 외모를 가진데다 벽에 착 달라붙어 있어 사람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도마뱀 중 하나입니다. 우리나라에도 이런 도마뱀이 살까 의아해 하실 분들이 많은데요. 실제로 부산이나 인근의 경남 창원은 물론 전남 목포에도 서식한다는 사실이 밝혀졌죠. 이렇게 일부 지역에만 사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추측되는데요. 주로 아열대나 열대 지역에 사는 도마뱀부치가 살기에 적당한 기온이 우리나라의 최남단인 부산이나 목포 정도이기 때문이라는 설이 있고 원래 외국에 살던 도마뱀부치가 외국에서 출발한 배에 실려 들어왔기 때문에 항구가 발달한 지역에만 서식한다는 설이 있습니다. 도마뱀부치가 원래 우리나라에 살았는지, 아니면 외국에서 들어온 것인지에 대한 궁금증은 아직 완전히 풀리지 않았는데요. 현재 진행중인 유전자 연구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는 그 의문은 계속될 것 같네요.
도마뱀과에는 도마뱀과 북도마뱀이 속하는데요. 두 종은 몸 옆줄의 모양과 등 비늘에서 약간의 차이가 있을 뿐 외형적으로 매우 유사해 구별하기가 어렵습니다. 도마뱀은 제주도를 비롯해 우리나라 구석구석에 살고 있지만 북도마뱀은 강원도 산간지역에 주로 삽니다. 파충류는 알을 통해서만 새끼를 낳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북도마뱀은 우리나라 도마뱀 중 유일하게 새끼를 낳는 종이라는 점이 특징이죠.
사지와 꼬리가 길고 몸 비늘이 거친 도마뱀을 봤다면 아마도 장지뱀과에 속한 동물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장지뱀과에는 아무르장지뱀, 줄장지뱀, 표범장지뱀 등 세 종류가 있는데요 아무르장지뱀은 국립공원 탐방로 같은 산간지방의 등산로에서, 줄장지뱀은 제주도의 목장 같은 경작지나 초지대에서 주로 만날 수 있습니다.
만약 해안가나 강가 모래밭에서 멋진 표범 무늬를 가진 도마뱀을 봤다면 표범장지뱀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표범장지뱀은 해수욕장이나 펜션, 관광시설 등 사람들의 개발에 많은 영향을 받기 때문에 서식지가 감소하고 개체수도 줄어 현재는 멸종위기 야생생물 Ⅱ급으로 지정돼 보호받고 있죠.
꼬리 잘린 도마뱀의 비애
우리 몸에서 한 부분이 잘려 나간다면 얼마나 불편할까요. 사람에게는 도마뱀의 꼬리와 같은 기관이 이미 퇴화돼 있어 그 의미가 크게 다가오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도마뱀에게 꼬리는 ▦에너지 저장소 ▦보조 이동수단 ▦이성에게 ‘어필’ 할 수 있는 매개 등 세 가지 역할을 하는 중요한 기관입니다.
도마뱀의 꼬리는 지방과 단백질 등으로 구성돼 있는데요. 사람도 마찬가지지만 생물은 유사시에 대비한 에너지를 몸 속에 여러 형태로 저장하고 먹이 수급이 원활하지 않은 위급 사항에 유용하게 활용합니다. 꼬리를 끊는다는 것은 몸에 에너지를 공급해주는 ‘도시락’을 그대로 버리고 가는 것과 마찬가지인 셈이죠. 잘라 내버린 꼬리를 재생하기 위해서는 가지고 있는 에너지의 대부분을 다 쏟아야 하는데요. 그 동안은 몸의 성장도 멈추고 생식 활동도 중지되는 등 일반적인 생활이 불가능합니다. 꼬리가 재생된다고 하더라도 검고 볼품없이 자라날 뿐이라고 하네요.
꼬리가 있음으로 해서 도마뱀이 움직일 수 있는 속도와 범위도 훨씬 늘어납니다. 꼬리를 이용해 무게 중심을 조정하고 나무 가지 같은 곳을 이동할 때는 다리의 보조 역할을 하기도 하죠. 동물이 짝짓기를 할 때나 먹이를 구할 때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사항이죠. 꼬리가 끊어진다면 움직이는 데 제약이 있어 다른 개체에 비해 뒤처질 수 밖에 없습니다.
수컷 도마뱀의 꼬리 길이와 모양은 암컷에게 선택 받기 위한 중요한 요소입니다. 동물들은 이성에게 선택 받기 위해 화려한 깃털이나 몸 크기 등을 뽐내는데요. 공작새가 아름다운 깃털을 펼치거나 수컷 원앙이 화려한 색깔을 지닌 것도 마찬가지죠. 꼬리가 잘려 볼품없어지면 그 수컷은 짝짓기를 성공할 확률이 낮아진다고 하네요.
잘려나간 꼬리의 역할
야외에서 파충류 조사를 수행하다 보면 도마뱀이 꼬리를 자르는 순간을 종종 발견합니다. 직접 만지거나 위협을 가하지 않더라도 돌 밑에 숨어있다가 갑자기 사람에게 발견됐을 때처럼 위협을 느끼면 꼬리를 자르곤 하죠. 도마뱀 입장에서는 사람이 얼마나 크고 위험한 존재일까요.
도마뱀이 꼬리를 자르는 순간 잘려 나간 꼬리는 정말 힘차게 뛰어 오릅니다. 마치 어시장에서 힘 좋은 생선이 파닥거리는 것과 비슷하죠. 파닥거리는 꼬리를 한참 쳐다보다가 그 움직임도 둔해지는 것이 느껴질 땐 이미 도마뱀이 그 자리를 피한 뒤죠. 몸은 떠났지만 제자리에 남아 적의 시선을 확실히 끌기 위해 맹렬히 움직이고 나면 잘려진 꼬리가 주어진 임무를 충실히 수행한 것이죠.
도마뱀이 꼬리를 자르고 도망 갈 때는 엄청난 손실을 감수하고 살기 위해 자신에게 가장 중요하고 소중한 부분을 떼는 것입니다. 어쩌면 도마뱀 입장에서는 사람들이 쉽게 쓰는 ‘도마뱀 꼬리 자르기’라는 표현을 두고 서운해 할 지도 모르겠네요.
장민호 국립생태원 환경영향평가팀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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