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셋째 아들인 전 국가대표 승마선수 김동선(28)의 변호사 폭행 사건이 터지자 대한체육회는 22일 진상조사에 착수하겠다고 부랴부랴 보도자료를 냈다. ‘김동선이 또 다시 폭행, 폭언으로 사회적으로 물의를 빚어 체육인의 품위를 크게 훼손하고 있는 점을 고려해 승마협회와 함께 진상을 파악한 뒤 제재 등 적절한 조치를 취하겠다’는 보도자료 문구를 보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어떤 선수든 잘못이 있으면 엄벌하겠다는 결기(決起)가 느껴진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실소가 나온다. 불과 반 년 전 지금과는 180도 다른 결정으로 빈축을 산 곳이 체육회이기 때문이다.
2010년 호텔 만취 난동으로 기소유예 처분을 받은 적 있던 김동선은 지난 1월에도 술에 취해 종업원을 때리고 경찰 순찰차를 파손한 혐의로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 받았다. 규정에 따라 그는 국가대표 4년 정지 징계를 받았다. 이와 별개로 승마협회도 해당 행위에 대해 공정위원회를 열었다. 규정상 폭력행위를 한 선수는 최소 1년 이상 출전정지 징계를 내리도록 돼 있다. 하지만 승마협회 공정위는 견책이라는 가장 가벼운 징계에 그쳤다. 이 덕분에 김동선은 집행유예 선고 한 달도 안 된 지난 4월 아무 제약 없이 국내 대회에 출전했고 여론이 들끓었다. 체육회는 회원종목단체의 징계가 미비하면 체육회 공정위(위원장 차문희) 차원에서 다시 심사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사안에 대해 침묵을 지키고 있다가 ‘승마협회가 김동선에게 면죄부를 줬다’는 비난 여론이 거세지자 마지못해 지난 5월 공정위에서 이 안건을 다뤘다. 결론은 그대로 ’견책 유지‘였다. 김동선이 역대 아시안게임 금메달 등 국위선양을 한 점, 선수 간 폭행이 아니라는 점 등이 참작됐다는 게 공정위 설명이었다. 본보 취재 결과 당시 공정위 회의 분위기는 ‘답정너(이미 정답은 정해져 있음)’였다고 한다. 단 한 명의 공정위원만 견책은 솜방망이 징계라 부당하다고 외롭게 주장했을 뿐이었다. ‘보이지 않는 손’으로부터 견책 징계를 유지해달라는 암시를 받아 가만있을 수밖에 없었다고 털어놓은 공정위원도 있었다.
사정이 이쯤 되면 체육회를 관리, 감독하는 문화체육관광부가 나서야 한다. 하지만 문체부 도 ‘소 닭 보듯’ 했다. 문체부 관계자는 체육기관의 자율성을 중시하는 ‘팔거리 원칙’을 내세워 관여할 뜻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그러다가 지난 9일 국정감사에서 이 사안이 지적되자 문체부는 “체육회에 대한 특정감사 계획을 수립해 조사 하겠다”고 손바닥 뒤집듯 입장을 바꿨다. 문체부 관계자는 “특정 감사에서 견책 징계가 유지된 배경을 들여다보고 문제가 있다면 체육회 공정위를 징계할 것”이라고 밝혔다.
잊을만하면 터져 나오는 대기업 사주 3세들의 ‘갑질’은 사회적 문제가 된 지 오래다. 하지만 이들의 눈치를 보며 ‘지금은 맞고 그 때는 틀리다(혹은 그 때는 틀리고 지금은 맞다)’고 말을 바꾸는 유관 기관들을 보는 마음은 더 불편하다.
윤태석 기자 sportic@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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