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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소통하기 어려운 이유

입력
2017.11.24 14:04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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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가 변화해 감에 따라 우리말의 호칭과 화법에도 큰 변화가 잇따르고 있다. 점점 말을 하는 데 격식을 갖추어야 하는 부담이 줄어들고, 해요체와 같은 비격식체가 주류가 되어 가고는 있지만, 아직도 편한 호칭과 화법을 찾지 못해 부담을 느끼는 그룹이 있다. 필자는 이들이 중년 이상의 한국 남자들이 아닌가 한다.

지난 10년간 신문에서 반말과 관련된 분쟁을 조사하여 연구해 보았는데,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반말로 인해 다툼과 분쟁 혹은 폭력이 일어나는 것은 대부분 중년 남자들 간의 대화에서였다는 점이다. 분쟁의 내용을 분석해 보니, 대부분 이들은 반말을 힘의 상징으로 생각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즉, 상대방이 나에게 반말을 하게 하는 것은 그가 나보다 더 강하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으로 여겼다. 영어와 같은 언어는 호칭과 화법이 우리말처럼 복잡하지 않다. 그렇지만, 많은 언어에서 호칭과 화법의 섬세한 조율이 필요하기도 하다. 그렇다 하더라도 모국어 화자 사이에 호칭과 화법의 불일치로 인해 이와 같이 많은 분쟁이 있는 곳은 우리나라 밖에 없을 것이다.

처음 만나서 서로 친해지고자 할 때, 우리는 상대방에게 말을 놓을 것을 제안하며 동시에 나이가 적은 사람이 많은 사람에게 여자들은 언니, 남자들은 형 등의 호칭을 사용하여 친목을 돈독히 한다. 그런데, 주목할 만한 것은 중년 이상의 남자들은 나이가 들어서 처음 만나는 사람들과 호형호제하기가 말처럼 쉽지 않다는 사실이다. 대부분 이들에게 형과 같은 호칭은 어릴 적 이미 알고 지내던 사람에게만 쓰는 호칭이었다. 결혼한 여자들 사이의 대화에서는 호칭 정리가 나름대로 쉽다. 결혼한 여자들은 누구누구의 엄마로 대개 불려지며, 이 호칭은 새로 만나는 사람들과의 관계도 나름 친근하고 편안하게 시작할 수 있게 해주고, 반말 역시 자연스럽고 정겹게 삶에 스며들 수 있게 해준다. 물론, 남자들 역시 누구누구의 아빠로 불려질 수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가사와 육아의 실제를 책임지는 여자들 만큼은 아닐 것이다.

그러다 보니 중년 이상의 남자들에게는 ‘~요’를 붙이는 해요체나 ‘~습니다’로 끝나는 격식체 정도가 안전한 화법이 되었다. 둘의 공통점은 서로에게 안전한 거리를 두는 것이다. 이러한 화법에서는 서로에게 안전한 만큼만의 정보와 정서 공유가 이뤄진다. 이러한 거리를 유지하는 것 조차 어려울 때도 있다. 나이가 어린 상사를 두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지만, 결코 드물지 않은 일이다. 중년 이상의 남자들은 이런 경우 도대체 어떻게 서로 말을 해야 할 지, 특히 회사 밖에서는 어떻게 말을 주고 받아야 할 지 막막하기만 하다. 대개의 경우 가장 안전한 옵션으로 서로 될 수 있으면 아는 척을 안하며 피하곤 한다. 말을 해야 할 경우는 격식을 갖추고 거리를 둔다. 그러다 보니, 이미 오랫동안 알고 지내던 친구가 없으면 진솔하고 격의 없는 대화를 하는 것이 참 쉽지 않게 된다.

소통이 잘 안되는 데는 많은 요인이 있을 수 있고, 여러 가지 개인적인 이유가 있을 수도 있다. 그런데, 언어학적 측면에서 사회 전반적으로 반말에 대해 힘의 역학으로 이해하고 있는 것이 중년 이상의 남자들 간 소통에 큰 장애물이라고 생각한다. 이를 통해 서로 말을 트고, 놓음으로써 얻게 되는 자유와 친목 도모의 기쁨을 제대로 누리지 못하게 할 뿐 아니라, 직장 밖에의 사적 공간에서의 인간 관계를 형성하고 향유하는 데 걸림돌이 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반말이라는 것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 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학교 문법에서는 반말을 존댓말의 반대말 정도로 이해하도록 가르치는 건 아닌지 재고해 볼 필요가 있다.

지은 케어 옥스퍼드대 한국학ㆍ언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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