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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리뷰] 국정원, 우리는 저들을 너무도 모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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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리뷰] 국정원, 우리는 저들을 너무도 모르고 있었다

입력
2017.11.24 04:40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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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2월 국가정보원(국정원)의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 조작 사건의 피해자 유우성씨가 검찰 주장에 반박하는 기자회견에 임하고 있다. 결국 국정원의 조작으로 결론이 났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2014년 2월 국가정보원(국정원)의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 조작 사건의 피해자 유우성씨가 검찰 주장에 반박하는 기자회견에 임하고 있다. 결국 국정원의 조작으로 결론이 났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 2014년 4월 3일. 한 종합일간지는 1면에 북한의 무인기가 청와대 상공에 20여초간 떠있었다는 기사와 함께 무인기에서 찍은 청와대 사진을 공개했다. 청와대가 뚫렸으며 20~30㎏의 폭약도 장착할 수 있으니 큰 일이란 얘기였다. 몇 달 전부터 무인기들이 있었고 그것들을 두고 정보사ㆍ기무사ㆍ국정원ㆍ경찰 등 관계기관은 합동조사를 진행한 끝에 조잡한 초급수준이란 결론을 이미 내린 터였다. 그런데 갑작스레 이런 호들갑이 나타난 것이다.

10여일 뒤인 4월 14일. 서울시 공무원 유우성씨 간첩 조작 사건 수사결과가 발표됐다. 국정원은 유씨를 간첩으로 조작했고, 법원을 속이려 증거까지 조작해서 냈다는 얘기였다. 사건 자체가 차기 대선 후보군에 속하던 박원순 서울시장을 겨냥했었다는 소문이 무성했다. 서천호 국정원 2차장이 사퇴했다. 무인기 사안을 다룬 곳은 안보수사국이었고, 안보수사국은 2차장 산하였다. 남재준 당시 국정원장은 자리를 지켰다. 무인기는 누구 이익에 봉사했을까.

2000년 노벨평화상 수상 축하 공연에 참석한 김대중 당시 대통령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수상로비'가 있었다는 주장이 끊이지 않지만, 실은 '산림공작' 등 수상 방해 공작이 더 치열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2000년 노벨평화상 수상 축하 공연에 참석한 김대중 당시 대통령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수상로비'가 있었다는 주장이 끊이지 않지만, 실은 '산림공작' 등 수상 방해 공작이 더 치열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 로비만 열심히 하면 타낼 수 있다는 ‘신화’가 여전히 통용되는, 고 김대중(DJ) 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수상은 어땠을까. DJ의 노벨상 수상 가능성이 가장 높았던 건 사실 한국의 민주화가 정점으로 치닫던 1987년이었다. 전 유럽의 사민당 계열 정당들이 전폭적으로 지지했다. 노벨상 발표가 10월이었고 대선이 12월이었으니, 만약에라도 수상하는 경우 ‘살을 주고 뼈를 취하겠다’며 승부수처럼 내던진 6ㆍ29선언 전략이 무너질 수 있었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전두환 정권은 안전기획부(안기부)를 통해 ‘산림정책’이란 공작을 벌였다. DJ가 권력욕의 화신이라 노벨상을 대선에 악용할 것이라는 등의 문건을 56개씩이나 노벨연구소장에게 보내고 국내외 언론을 동원하는 등 집중적으로 로비했다. 김대중은 최종후보였으나 노벨상 자체가 정치적 시비에 휘말릴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탈락했다. ‘산림공작’ 이후로도 노태우 정부 때는 ‘조선사업’, 김영삼 정부 때는 ‘세종사업’ ‘피오르드 사업’으로 이어졌다.

‘시크릿파일 반역의 국정원’은 국정원 전문기자 김당이 지난해 ‘시크릿파일 국정원’에 이어 펴낸 두 번째 국정원 책이다. 지난 책엔 국정원이라는 곳의 인사와 조직에 대한 얘기를 주로 했다면, 이번 책은 예산과 공작 문제에 초점을 맞췄다. 최근 청와대에 가져다 바친 ‘특활비’ 때문에 전직 국정원장들이 잇달아 검찰에 소환되고 있는 상황에서 눈길을 끌만하다.

기본적으로 국정원 예산은 아무도 모른다. 본예산 총액 외에 다른 부처 예비비 등에 다 녹아 들어가 있어서다. 이 때문에 다들 이래저래 추정만 해볼 뿐이다. 정보기관 예산은 원래 비밀이긴 하다. 가령 미 중앙정보부(CIA)는 국정원과 달리 조직표도 공개하는 등 상당히 개방적인 태도를 보이지만 예산만큼은 공식적으로 ‘0달러’다. 다른 예산에 이리저리 숨겨둔다. 다만 의회와 내부감찰로 혹독하게 관리한다. 그러나 ‘간첩 잡는다’ 말 한마디에 우리는 그저 열외다.

이렇다 보니 국정원 실세는 원장이 아니라 안살림을 맡는 기조실장이다. 인사와 예산을 쥐고 있어서다. 공작도 그렇다. 굵직한 주요 공작 이외에 진행 중인 비밀공작이나 여러 잡다한 공작의 경우 원장은 잘 모르지만, 기조실장은 인사와 예산을 통해 넘겨볼 수 있다.

그래서 정권과 함께 하는 이는 기조실장이다. 전두환 정부 때는 김용갑ㆍ윤옥영 2명, 노태우 정권 때는 윤옥영ㆍ엄삼탁 2명, 김영삼 정권 때는 아들 현철씨 사태 때문에 경질되긴 했으나 사실상 김기섭 1명이었다. 이명박 정부 때는 코오롱 출신 김주성과 서울시 출신 목영만 2명, 박근혜 정부 때는 국정원 공채 출신 이헌수 1명이었다. 전두환ㆍ노태우 때 단 2명, 김영삼ㆍ박근혜 때는 단 1명, 이명박 때는 형님 인맥 1명에다 자기 인맥 1명이었던 셈이다. 국정원 개혁을 내세운 김대중 정부는 문희상 등 5명, 노무현 정권은 김만복 등 3명이었던 것과 차이가 있다.

시크릿파일 반역의 국정원

김당 지음

메디치미디어 발행ㆍ968쪽ㆍ3만3,000원

그 결과 중앙정보부(중정) 혹은 안기부 시절엔 예산의 15% 정도가 통치자금으로 쓰였던 것으로 보인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그 때 그 시절 사람들’이 활동한 박근혜 정부의 특활비 논란 역시 이 맥락 위에 서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말 그대로 정보기관 돈이 곧 대통령 돈이라 여긴 옛 방식이다. 이 고리를 끊은 건 김대중 정부였다. 대통령 해외 순방 때 오랜 관행에 따라 여비 명목으로 5만달러를 들고 갔다가 야단 맞고 쫓겨났다는 증언이 실려 있다.

지나친 비밀주의는 다른 문제도 일으킨다. 퇴직자들을 위한 양우공제회 기금 문제다. 국정원 예산이 비밀이다 보니 간혹 남는 예산이나 예산에 붙은 이자 처리 문제가 불거진다. 원칙적으로 이런 돈은 국고에 반납해야 하나 통치자금으로 쓰거나, 혹은 기금으로 슬쩍 빼돌리는 경우가 생긴다. 엄연한 예산전용이지만 좋은 게 좋은 거란 악습이 작용했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국정원은 직원 월급이 비밀이니 그 월급 일부를 떼다 만든 기금도 비밀이란 논리로 공개를 거부하고 있다. 저자는 여기에 더해 퇴직자를 위한 연구기금, 지방 근무자를 위한 주택지원기금, 해외 근무자를 위한 자동차 구입 기금 등 6개의 기금이 더 있을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해뒀다.

국정원 책을 읽는 묘미는 역시 공작의 역사다. 저자는 간첩사건, 북풍공작, 정치인 사찰은 물론, 이명박ㆍ박근혜 정부의 블랙리스트 문제까지 다뤘다. 해외 공작 보내놨더니 놀고만 있을 수는 없어 가짜 공작을 보고하고 공작금만 타 쓰는 ‘페이퍼 공작’ 사례 등 재미있는 이야깃거리가 많다.

특히 다음 내용이 눈길을 끈다. 저자가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2016년까지 국정원이 저지른 불법행위로 인한 국가배상금이 2,121억4,200만원에 이르렀다. 정권별로 보니 역시 박정희 정부가 1,816억5,000만원으로 압도적 1위였다. 저자는 “박근혜와 김기춘에게 국가가 구상권을 청구하는 것이 정의가 아닐까”해뒀다. 물론, 현실성은 뚝 떨어지는 주장이다. 그렇지만 국정원의 불법행위에 따른 빚이 2,100억원대라니, 좀 놀랍지 않은가. 망가진 인생은, 돈으로 환산될 수도 없겠지만.

조태성 기자 amorfati@hanl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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