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의 동남아시아 순방에 동행한 취재진의 관심은 한중 정상회담에 집중돼 있었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의 회담에서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ㆍ사드)에 대한 의견이 오갔는지, 북한 핵 문제와 관련해 중국의 쌍중단(雙中斷ㆍ북핵 도발과 한미 연합훈련 중단) 요구가 있었는지가 관심사였다. 리커창(李克强) 중국 총리와의 회담에서도 문 대통령이 사드 보복조치에 대해 철회 요구를 했는지가 궁금했다. 국가 안보와 경제에 직결되는 사안인 만큼, 지난 14일 문 대통령과의 기자간담회에서 나온 질문들도 이러한 범주를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비록 언론의 관심을 끌지 못하고 있지만, 문 대통령이 해외 순방에서 강조하는 것 중 하나는 ‘사람 중심 외교’다. 지난 9월 유엔총회 기조연설에서 우리 정부의 국정 기조를 소개하면서 사람 중심의 철학을 설명했고, 동남아 순방에서도 한ㆍ아세안 미래공동체 구상을 발표할 때 사람 중심의 국민 외교를 언급했다.
‘사람이 먼저다’는 2012년 대선 당시 문 대통령의 캐치프레이즈다. 이념, 성공, 권력, 개발, 성장, 학력보다 사람이 먼저인 세상을 만들겠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는 5년 뒤에야 당선된 문 대통령의 정치철학을 여전히 대변하고 있다. 다만 문 대통령이 해외에서 자신의 정치철학을 소개할 때면, 냉혹한 현실주의가 지배하는 국제정치 무대에서 한반도 안보 위기와 동떨어진 이상주의적인 구호로만 들리지 않을까 하는 의구심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하지만 이번 순방에선 문 대통령이 강조하는 사람 중심 외교의 단초를 엿볼 수 있는 계기가 있었다. 각국 동포간담회에 한국과 특별한 인연이 있거나 동포들을 돕고 있는 현지 인사를 초청해 문 대통령이 “감사의 마음을 담아 박수로 환영해 달라”고 감사의 뜻을 전한 장면이 인상에 남았다. 문 대통령이 양국 국민 간의 유대를 돈독하게 만들어주는 세심한 배려를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필리핀 동포간담회에선 라몬 아폴리나리오 경찰청 차장 등 현지 경찰ㆍ검찰 관계자들이 초청됐다. 이들은 지난해 10월 발생한 필리핀 전ㆍ현직 경찰이 연루된 한인 사업가 피살사건 수사를 담당해 왔다. 필리핀에서 발생한 한인 피살사건은 매년 증가해오다 2013~2015년 연 10건을 넘었고 지난해에도 9건에 달했다. 지난해 기준 필리핀을 방문한 한국인은 147만명, 필리핀에 거주하는 동포가 9만명에 달하지만, 동포사회에는 현지의 불안정한 치안에 대한 우려가 만연한 상황이다. 이에 지난해 사건을 계기로 필리핀 경찰과 검찰의 협조를 받아 한국 관광객과 동포들에 대한 치안이 강화됐고, 올해는 9월 현재 1건으로 급감할 수 있었다.
베트남에선 베트남전 파병 도중 발생한 우리 군의 민간인 학살을 언급했다. 순방 공식 일정에 포함되지 않았지만 11일 호찌민에서 열린 ‘호찌민ㆍ경주 세계문화엑스포 2017’ 개막식 영상축전을 통해서다. 문 대통령은 축전에서 “한국은 베트남에 마음의 빚을 지고 있다”며 “그렇지만 이제 베트남과 한국은 서로에게 가장 중요한 경제 파트너이자, 친구가 되었습니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조코 위도도 인도네시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도중에 국민들의 삶을 들여다 보기 위해 대통령궁 인근 쇼핑몰을 방문하는 파격 행보를 보여주었다. 양국 국민들에게 ‘서민 대통령’으로 지지를 받는 두 정상이었기에 가능한 모습이었다.
나와 우리나라의 생존만이 지상목표인 상황에서는 ‘사람이 먼저’라는 인간에 대한 예의는 거추장스러운 덕목으로 치부하곤 한다. 그러나 국가 간 외교도 결국엔 사람이 하는 것인 만큼 사람과 사람 간의 신뢰를 쌓고 마음을 통하는 것이 우선이다. 이처럼 상대국의 국민들에게도 배려를 아끼지 않는 문재인 정부의 ‘사람 중심 외교’가 결실을 맺을 수 있는 날을 기대해 본다.
김회경 정치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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