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정 협상 실패로 독일 정국이 시계제로 상황에 놓이면서 원내 제2당인 사회민주당(SPD)이 앙겔라 메르켈 총리의 손을 다시 잡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메르켈 총리는 소수정부 출범보다는 차라리 재선거를 치르겠다면서 배수진을 쳤지만, 조기에 정국 불안을 해소해야 한다는 압력 역시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연정 협상이 결렬된 직후인 20일(현지시간) 마틴 슐츠 사민당 대표는 “대연정 준비가 돼있지 않다. 새 선거가 두렵지 않다”며 기독민주ㆍ기독사회(CDUㆍCSU)연합과의 연정 협상 가능성을 일축했다. 슐츠 대표는 지난 9월 총선 패배 직후에도 ‘대연정’참여는 없다고 선을 그은 바 있다.
하지만 당 안팎의 기류는 사뭇 다르다. 재선거 비용도 문제지만, 재선거를 치른다고 해서 지난 총선보다 사민당이 더 많은 의석을 얻을 가능성은 높지 않기 때문이다. 되레 총선에서 약진한 극우정당 ‘독일을 위한 대안(AfD)’의 의석만 불려줄 경우 책임론이 불거질 수도 있다.
9월 총선에서 사민당은 20.1%를 득표해 2차 세계대전 후 최악의 성적표를 받았지만, 이에 책임지지 않은 슐츠 대표의 불안한 당내 입지도 변수다. 사민당 지도부인 안드레아 나흘레스는 기민당과의 연정, 혹은 기민-녹색당과의 연정을 고려해봄 직하다는 구상을 내비치는 등 연정협상을 부추기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독일의 정치적 혼란이 유럽연합(EU) 리더십 부재로 이어질 것으로 우려하는 EU 측도 사민당에 압박을 가하고 있다. 귄터 외팅거 EU 예산담당 집행위원은 “EU에서 독일의 영향력을 감안하면, 사민당은 연정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기존 입장을 재고해야 한다”고 말했다.
각 정당에 재협상에 나설 것을 촉구하고 있는 프랑크-발터 슈타인마이어 대통령은 23일 슐츠 대표와 단독 회담이 예정돼 있다. 사민당 원로인 슈타인마이어 대통령이 슐츠 대표의 마음을 돌릴 수 있을지 독일 안팎에서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이왕구 기자 fab4@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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