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바브웨를 37년간 통치하다 21일(현지시간) 사임 의사를 밝힌 로버트 무가베 짐바브웨 대통령은 최근까지 국제사회에서 고립된 북한 정권을 지지해 온 몇 안 되는 지도자였다. 올해 9월 유엔 총회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리용호 북한 외무상의 날 선 설전이 오간 가운데, 무가베는 트럼프 대통령을 성서에 나오는 거인 골리앗에 빗대며 “어느 나라도 군사력을 동원해 다른 나라를 괴롭혀서는 안 된다”고 비판했을 정도다. 그의 사임이 각종 제재와 단교로 설 자리를 잃고 있는 김정은 정권 입장에선 큰 타격일 수 있다는 얘기이다.
무가베의 이 같은 친북 성향은 오래도록 북한의 김일성 정권을 동경해왔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무가베는 김일성처럼 제국주의 지배에 반대한 독립영웅 출신으로, 공산권과 아프리카 등 제3세계에서는 자주 민족주의 영웅으로 추앙을 받았지만 국내에서는 반대파를 잔혹하게 탄압해 독재 권력을 강화해 나갔다.
집권 초 소비에트 공산주의의 영향을 받은 무가베는 1980년 북한을 방문했고 김일성 정권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짐바브웨 수도 하라레에 있는 국립영웅묘지는 북한 평양 근교의 대성산혁명렬사릉과 유사한 형태로 건설됐다. 1981년 북한 만수대창작사에서 파견된 북한 건축가들은 묘역을 건설할 때 무가베 대통령에게 직접 보고했다.
또 1981년 창설한 ‘제5여단’은 북한군으로부터 훈련을 받은 특수부대로 역시 무가베 대통령의 명령을 받아 남부에 거주하는 은데벨레족을 무자비하게 학살했다. 국제제노사이드학회 등은 최소 2만명 이상이 희생됐다고 보고 있다. 학살 이후 은데벨레족의 정당 짐바브웨아프리카인민동맹(ZAPU)은 1987년 무가베 대통령의 지지정당 짐바브웨아프리카민족동맹(ZANU)과 통합됐고, 짐바브웨는 신생 야당 민주변화운동(MDC)이 창설되는 1999년까지 사실상 일당 독재국가 상태를 유지했다.
인현우 기자 inhy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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