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렉시트, 도널드 트럼프, 그리고 메르켈의 실패.”
19일(현지시간)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의 기독민주ㆍ기독사회당(CDUㆍCSU) 연합과 자유민주당, 녹색당의 연립정부 구성 협상이 최종 결렬되자 공영방송 도이체벨레(DW)는 이튿날 이같은 논평을 내놓았다. 지난 9월 네 번째 총선 승리를 거머쥐며 독일 최장수 총리 반열에 오를 것으로 확실시됐던 메르켈 총리. 하지만 그가 약 5주간의 협상 끝에 연정 수립에 실패하자, 지난해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와 트럼프의 대통령 당선에 버금가는 정치적 충격이 전 유럽을 덮칠 수 있다는 진단을 내린 것이다. 경우에 따라 메르켈의 총리직마저 위태로울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시장도 유로 급락 사태를 맞으며 요동쳤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이날 아시아 시장에서 유로는 장중 0.6% 미끄러진 1.7120달러에 거래되면서 최근 한 달간 가장 큰 낙폭을 기록했고, 엔 대비 환율도 한때 두 달 내 최저치인 131.16엔으로 떨어졌다. 대체 독일에서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이날의 충격은 자정 직전 크리스티안 린트너 자유민주당 대표가 “더 이상 이견을 좁힐 수 없다”며 협상장을 박차고 나오면서부터 시작됐다. 자유민주당은 CDUㆍCSU 연합, 녹색당과 함께 이른바 ‘자메이카 조합(3가지 정당 상징 색 조합이 자메이카 국기와 동일)’으로 불리는 차기 연정 구성을 위해 난민, 기후변화, 세금 정책 등을 두고 협상을 벌여왔다. 하지만 린트너 대표는 “협상에 참여한 4개 정당이 공동의 비전이나 신뢰를 공유하고 있지 않다”며 “불성실하게 통치하느니 통치하지 않는 것이 낫다”고 연정 불참 의사를 밝혔다. 메르켈 총리가 공표한 마지막 협상 시한(오후 6시)도 넘긴 터라 현지 언론과 외신 모두 ‘협상 파탄’이라는 제목으로 긴급 타전했다.
당장의 스포트라이트는 메르켈 총리에게 쏟아졌다. 그가 이번 협상을 성공적으로 마쳐 곧바로 4번째 임기를 시작할 것이냐가 주요 초점이었기 때문이다. 현재 메르켈 총리 앞에 놓인 옵션은 ▦녹색당과 소수정부를 구성하거나 ▦제2당이자 ‘대연정’ 파트너였던 사회민주당과 연정 추진 ▦재선거 실시 등 3가지로 좁혀진다. 이중 의회 해산을 통해 재선거를 시행할 경우 CDUㆍCSU 연합이 제1당 지위 마저 잃는다면 메르켈의 4연임은 물 건너 간다.
하지만 메르켈 총리 개인의 처지를 떠나 이번 사태는 독일과 유럽 전체의 위기를 불러올 위험 요인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셋 중 비교적 현실성 있는 시나리오는 소수정부 또는 재선거인데, 둘 다 애초 목표였던 극우 정당 ‘독일을 위한 대안(AfD)’ 저지에 있어 실패가 자명한 길이어서다. 폴리티코유럽은 “의석 과반이 안 되는 소수정부를 설립하면 총리직을 유지하더라도 메르켈은 계속해서 AfD에 의존해야 한다”며 “재선거의 경우에도 이미 13%의 지지를 얻은 AfD를 더 강화하는 결과를 가져올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AfD를 막을 유일한 대안인 두번째 옵션은 사회민주당이 20일에도 “연정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재확인함에 따라 무산됐다.
결국 난민 문제를 둘러싼 혼란이 독일 정치의 최대 장점인 안정성을 무너뜨린 형세다. 실제 협상에서 마지막까지 대립한 사안도 독일 내 가족을 둔 해외 난민의 입국 허용 여부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DW는 “이번 협상 실패는 (독일의) 경제 호황이 난민 문제에 대한 두려움을 이기지 못한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꼬집었다.
김정원 기자 garden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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