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내가 최고라고 생각했다" '사람' 이승엽의 이야기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내가 최고라고 생각했다" '사람' 이승엽의 이야기

입력
2017.11.20 16:17
0 0

이승엽이 20일 수원지방법원에서 강연을 하고 있다/사진=수원지방법원

[한국스포츠경제 김주희] "'내가 최고다, 눈 감고 쳐도 되겠다'고 생각했죠."

이승엽(41)의 솔직한 발언에 장내에선 웃음이 터져 나왔다. 이승엽이 배트 대신 마이크를 잡고 팬들에게 웃음과 감동을 전했다.

이승엽은 20일 수원지방법원에서 자신의 야구 인생을 주제로 이야기를 나눴다. 사회 저명 연사를 초청해 '소통 아카데미'라는 강연을 운영 중인 수원 지법은 올해 4번째 강연자로 이승엽을 초청했다.

이승엽은 하늘에서 빛나던 '별'이다. 대구 경북고를 졸업한 뒤 1995년 삼성에 입단한 이후 줄곧 스타의 길만 걸었다. 1999년 54홈런을 때려내 KBO리그 50홈런 시대를 열었고, 2003년에는 56개의 대포를 쏘아 올려 당시 아시아 한 시즌 최다 홈런 신기록을 썼다. 2004년부터 2011년까지 일본 프로야구에서 뛰었던 그는 다시 국내로 돌아와 리그 정상급 활약을 펼치다 올 시즌을 마지막으로 은퇴했다.

하지만 땅으로 내려온 '별'은 식지 않은 인기를 자랑한다. 이날 강연은 낮 12시에 시작됐지만 이른 아침부터 팬들은 긴 줄을 섰다. 법원 관계자는 "오전 9시 전부터 줄을 서더라. 대구, 포항에서 오신 분들도 계신다"며 혀를 내둘렀다. 당초 법원은 120명 정도의 인원이 참석할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200명이 넘는 참가자가 몰려 성황을 이뤘다.

뜨거운 반응에 이승엽은 진솔한 이야기로 답했다. 반대를 하는 부모님을 설득해 야구를 시작한 일부터, 고등학교 3학년 시절 프로 팀 입단과 대학교 진학을 놓고 고민한 일, 2003년 말 FA(프리 에이전트) 자격을 얻은 당시 미국 메이저리그에서 기대보다 좋지 못한 조건을 제시 받아 도전을 포기했던 일, 일본 프로야구에서의 힘들었던 시간 등 그의 야구 인생을 솔직하게 풀어냈다.

그간 모범적이고, 겸손하게만 비춰지던 '선수 이승엽'도 내려놨다. 이승엽은 "입단 3년 차인 1997년 MVP(최우수선수)상을 받았다. 일찍 스타의 길로 들어서면서 '내가 최고'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해 겨울에 방탕한 생활도 하고, 훈련도 게을리 했다. 그래도 1998시즌에 야구가 잘 됐다"고 떠올렸다. 그로 인해 겪은 실패도 전했다. 이승엽은 "1998시즌 7월 경까진 홈런 1위를 했다. '눈 감고 쳐도 되겠다. 야구가 이렇게 쉬운 거였구나' 싶었다. 그런데 그런 생각을 하는 순간 슬럼프가 오더라. (홈런왕 경쟁을 하던) 타이론 우즈(OB)는 이후에도 계속 홈런을 치면서 결국 홈런 순위가 뒤집혔다. 우즈는 KBO리그 한 시즌 최다 홈런 신기록을 세우고, MVP도 탔다"고 말했다. 이승엽을 더 '독하게' 만든 경험이었다. 이승엽은 "그해 기억을 잊을 수가 없다. 정말 후회를 많이 했다. 그 다음해 목표는 팀 우승도, MVP도 아닌 타이론 우즈를 이기는 것이었다"며 "노력한 만큼 결과가 나오더라. 그 덕분에 1999년 한국 신기록을 세웠고, 2003년에는 아시아 신기록까지 세우게 됐다"고 말했다.

성공 속에 가려진 실패의 시간들도 털어놨다. 이승엽은 "일본 요미우리 시절 타석에서 사인이 안 보인다고 다시 내달라고 했다가 이닝 종료 후 교체된 일이 있었다. '너는 아직 경기할 준비가 덜 됐다'는 말을 들었다. 나에겐 정말 슬펐던 날이다. 2회부터 연장 11회까지 더그아웃 끝에서 아무 소리도 못하고 쥐 죽은 듯 있었다. 그런 시간이 많았다"고 회고했다.

거리낌 없는 소통도 나눴다. 강연 후 질의응답 시간에 한 관중은 "피부 관리 비법을 알려달라"고 요청했고, 이승엽은 "요즘 제일 고민되는 게 기미다. 한 달에 한 번 관리를 받긴 하는데 나이를 먹으니 효과가 잘 안 나타나는 것 같다"고 답해 웃음을 자아냈다.

이날 여섯 살 난 아들과 함께 강연을 들은 오혜자(38)씨는 "실패와 성공을 번갈아 가며 하면서도 위기 극복을 어떻게 했는지를 이야기 해줘서 자녀를 키우는데도 도움이 될 것 같다. 스타의 모습만 봤는데 이런 우여곡절을 겪었다고 하니 인간적인 매력도 느끼게 됐다"고 말했다.

강연 후 만난 이승엽은 은퇴 후 근황에 대해 "사람답게 살고 있다"며 웃음지었다. 그는 "모든 분들과 가까워질 수 있을 것 같다. 선수일 때는 거리감이 있었다. 지금은 다들 같은 입장이라고 생각해주시는 것 같다. 사람들을 대하는 것도 더 편해진 것 같다"고 말했다. 현역 시절부터 구상해온 재단 설립도 추진 중이다. 이승엽은 "신중하게 준비해서 시작을 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아직은 낯선 시간이다. 이승엽은 "몸은 편한데, 마음은 덜 편한 것 같다. 이제는 생계도 생각해야 할 시점이다. 남자는 바빠야 하는데 직업이 없으면 안 된다"고 웃으며 "매년 스프링캠프가 시작됐던 2월이 되면 더 지루해질 것 같다"고 말했다.

김주희 기자 juhee@sporbiz.co.kr

[한국스포츠경제 관련기사]

박성현, 상금·올해의 선수·신인 3관왕 석권, 39년 만 대기록

출제위원, 210만원 더 받는다…포항지진에 따른 수능 연기 때문

한반도 지진 공포 확산, 몰라서 '폭풍후회'하는 지진 보험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