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진수 전 주무관
“비서관에 200만원
행정관 2명에 각각
50만원ㆍ30만원씩 줬다”
“그곳에서 첫 임무가 특수활동비를 청와대에 상납하는 것이었다.”
이명박 정부 시절 민간인 불법사찰을 폭로했던 장진수(44) 전 주무관은 2009년 7월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에서 서무 담당으로 일한 첫날의 기억을 이렇게 떠 올렸다. 장 전 주무관은 처음 출근하자마자 당시 상급자로부터 “저 위(청와대)에 갖다 줘야 할 게 있다”는 지시를 받았다.
그는 19일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내가 일하기 전부터 이미 7, 8개월 동안 매달 청와대 비서관실에 특수활동비를 상납하고 있었다”며 “이후 공직윤리지원관실을 떠나는 2010년 6월까지 1년 내내 매월 꼬박꼬박 상납했다”고 말했다. 장 전 주무관의 언급은 박근혜 정부뿐 아니라 이명박 정부 당시에도 특수활동비가 청와대에 상납된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어서 주목된다. 특히 국정원뿐 아니라 국무총리실 등 다른 부처의 특수활동비도 청와대에 정기 상납됐을 개연성이 높아 검찰이 이 부분에 대한 수사를 확대할 지도 관심사다.
장 전 주무관은 “특수활동비는 고생하는 부하직원들에게 나눠주는 돈인 줄 알았는데 거꾸로 윗사람에게 상납을 하는 게 이해가 가지 않았다”며 “그러나 위에서 결정한 일이고, 게다가 청와대에 가는 돈이라 당시에는 말단 직원이 거부하거나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고 설명했다.
당시 국무총리 공직윤리지원관실이 돈을 올려 보낸 곳은 바로 청와대 사회정책수석 산하의 고용노사비서관실이었다. 사정 업무는 원래 민정수석실 담당이었지만, 공직윤리지원관실은 당시 ‘영포라인’(이명박 당시 대통령의 고향인 경북 포항ㆍ영일 출신 인사들)의 핵심이던 이모 고용노사비서관의 통제를 받고 있었다. 공식 지휘체계를 무시한 채 사실상 ‘공인된 비선조직’이 공직 기강을 담당하는 국무총리실 소속 부서의 특수활동비까지 챙긴 것이다.
장 전 주무관은 “비서관에게 월 200만원, 행정관 2명에게 각각 50만원, 30만원씩을 매달 갖다 줬다”며 “은행에서 현찰(280만원)을 찾아 봉투에 넣어 상급자에게 전달했다”고 밝혔다. 그는 “그들은 그 돈을 ‘용돈’으로 쓴 걸로 안다”고 덧붙였다.
당시 공직윤리지원관실의 특수활동비 상납 사건은 민간인 사찰의 폭발력에 밀려 눈길을 거의 끌지 못했다. 장 전 주무관의 직속상관이었던 국장과 과장은 특수활동비를 빼돌려 청와대에 상납한 혐의(업무상 횡령) 등으로 기소됐다. 그러나 ‘돈을 준 사람’만 처벌을 받았을 뿐, ‘돈을 받은 사람’은 뇌물죄 등으로도 처벌받지 않았다. 장 전 주무관은 “상급자, 그것도 청와대에 돈을 줬으면 당연히 뇌물로 처벌할 수 있는데 당시 이 부분에 대한 검찰 수사는 이뤄지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장 전 주무관은 청와대에 상납하고 남은 특수활동비가 어떤 식으로 쓰였는지 알 수 있는 단서도 소개했다. 당시 공직윤리지원관실에는 정식 공무원도 아닌 전직 경찰관(민간인)이 임명장도 받지 않고 수개월간 일하고 있었는데, 그의 수고비(급여)가 특수활동비로 지급된 것이다. 전직 경찰관은 바로 민간인 사찰을 담당한 이였다. 공무원 임용도 받지 않은 인물이 음지에서 불법 사찰을 한 대가가 불법적인 방법으로 지급된 셈이다. 장 전 주무관은 “(민간인에게 쓴) 특수활동비는 영수증을 첨부할 필요는 없지만 돈을 받아간 민간사업자의 서명이 필요하다”며 “그런데 이 조차도 당시 국장의 가짜 서명으로 대체되곤 했다”고 강조했다.
받는 사람 입장에서는 특수활동비와 급여를 사실상 구분하기도 어려웠다. 장 전 주무관은 “어차피 월급통장에 월급, 출장비, 수당, 특수활동비가 다 섞여 들어왔기 때문에 이를 나누지 않고 개인 비용으로도 쓰고 업무상으로도 쓰곤 했다”고 밝혔다.
이현주 기자 memor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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