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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속 피한 이병호, 검찰 도우미 되나

입력
2017.11.20 04:40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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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납액 가장 많고 혐의 중한데

“박근혜 지시” 자백이 기각에 큰 영향

검찰 재소환… 추가진술 입 주목

이병호 전 국정원장이 지난 19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에 조사를 받기 위해 출석하고 있다. 홍인기 기자
이병호 전 국정원장이 지난 19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에 조사를 받기 위해 출석하고 있다. 홍인기 기자

청와대 측에 국가정보원 특수활동비를 가장 많이 상납하고도 구속을 면한 이병호(77) 전 국정원장이 검찰 조력자로 탈바꿈할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검찰 수사 내내 박근혜 전 대통령 지시 여부에 대해 함구하던 이 전 원장은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 과정에서 “박 전 대통령 지시로 상납했다”는 취지의 돌발 발언을 한 뒤 풀려났다. 검찰에도 전향적인 태도를 보일 수 있다는 기대가 커지고 있다.

서울중앙지검 특수3부(부장 양석조)는 19일 오후 이 전 원장을 다시 불러 조사했다. 16일 영장실질심사에서 박 전 대통령 지시를 언급하고 다음날 풀려난 지 이틀 만이다. 당시 법원은 “도망과 증거인멸의 염려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라며 이 전 원장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검찰 안팎에선 이 전 원장의 ‘자백’이 영장 기각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보고 있다.

실제 이 전 원장의 혐의는 구속된 남재준ㆍ이병기 전 원장에 비해 가볍지 않다. 남 전 원장(1년2개월)이나 이병기 전 원장(8개월)에 비해 재임 기간(2년2개월)이 길어 상납금액이 21억원으로 가장 많고, ‘진박 감정용’ 청와대의 불법 여론조사 비용 5억원도 추가로 제공했다. 조윤선ㆍ현기환 전 정무수석에게 ‘용돈’ 차원으로 수천만원을 준 점이나, 미르ㆍK스포츠재단 등 국정농단 사건이 알려지면서 중단됐던 상납을 재개한 점도 혐의를 중하게 여겨지도록 하는 부분이다.

이 전 원장의 깜짝 회심을 두고 여러 분석이 나온다. 먼저 수사나 심문 과정에서 검찰이 제시한 증거가 혐의를 충분히 뒷받침하는 것으로 판단되고, 박 전 대통령과의 ‘의리’를 지키기에는 노령의 이 전 원장이 떠안고 갈 혐의가 너무 무겁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박 전 대통령에게 책임을 미뤄 국정원을 지키기 위한 것이란 풀이도 있다. 이 전 원장은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한 뒤 26년간 국정원 전신인 국가안전기획부에서 근무했다. 주미한국대사관 공사를 지내는 등 외교부에서도 일했지만 뼛속까지 국정원 사람이라는 평이다. 이번 정부 들어 다각적 공세에 직면한 국정원을 보호하기 위해 박 전 대통령 지시에 따라 국정원이 수동적으로 상납했다고 주장한다는 것이다.

이 전 원장의 입이 열리면서 검찰은 그의 추가 진술에 공을 들이고 있다. 검찰 역시 기정사실화한 박 전 대통령 수사에 필요한 진술과 관련 자료를 확보하기 위해 이 전 원장 협조를 최대한 끌어내는 게 유리하다. 10일 검찰 소환 조사 당시 ‘침묵’ 모드였던 이 전 원장이 영장실질심사에서 보여준 달라진 모습은 검찰 입장에선 괘씸하면서도 일말의 기대를 갖게 한다. 검찰은 이날 조사에서 이 전 원장이 박 전 대통령 지시를 시인한 경위와 박 전 대통령의 구체적인 지시 내용과 정황, 그 발언의 진실성 등을 추궁했다. 영장 재청구 여부는 이날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결정할 방침이다.

구속을 피하기 위한 궁여지책인지, 폐위된 전 대통령보다 친정을 보호하려는 입장 변화인지 주목된다.

안아람 기자 onesho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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