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송합니다’는 ‘데이터 속 숨은 의미 못 알아봐서 죄송합니다’의 줄임말로, 사회 속 데이터들을 분석하고 이를 통해 숨겨진 문제를 포착하는 기획 시리즈입니다.
지난달 경남교육청은 어린이보호구역(스쿨존) 내 제한속도를 뜻하는 ‘30’이라는 숫자가 적힌 형광색 가방덮개를 도내 초등학교 1~4학년생들에게 배포했다. 아이들이 메는 가방에 이 덮개를 씌우면 운전자 눈에 쉽게 띄기 때문에 과속이나 시야방해 등으로 인한 스쿨존 내 교통사고를 줄일 수 있을 것이란 판단에서였다. 이 아이디어는 다른 지역에서도 좋은 반응을 얻어 충북 경기의 일부 초등학교도 자체 제작한 안전 가방덮개를 학생들에게 나눠주고 있다.
스쿨존은 어린이 보호를 위해 설정한 학교나 유치원 주변 반경 300m 이내 지역을 말한다. 그러나 ‘보호구역’이라는 이름과는 다르게 스쿨존은 교통사고로부터 결코 안전하지 않다. 지난 10년간(2007~16년) 발생한 전국 스쿨존 내 12세 이하 어린이 교통사고는 무려 5,363건에 달했다. 스쿨존에서 사망한 어린이만 72명, 영구후유증이 남을 수 있는 중상을 입은 어린이도 2,375명이나 됐다.
당국도 스쿨존 교통사고방지를 위해 다양한 대책들을 내놓고 있지만, 대부분은 과속방지에 맞춰져 있다. 과속적발 시 범칙금이나 주차위반 과태료를 대폭 인상하는 식이다. 그러나 도로교통공단에 따르면 스쿨존에서 발생한 교통사고 원인 중 과속은 0.7%에 불과했다. 대부분은 전방주시 태만, 차내 통화 같은 ‘안전운전의무 불이행’(37%)과 횡단보도 정지선을 지키지 않는 등의 ‘보행자 보호의무 위반’(30%)이었다. 지난 6월 충북 청주 옥산면의 한 스쿨존에서 발생한 어린이 사망사고 역시 운전자가 보행자보호의무를 다하지 못해 일어난 사고였다. 당시 시내버스 운전자 A(60)씨는 시속 18㎞로 서행하고 있었지만 앞서가던 초등학생 B(11)군을 보지 못하고 들이받은 채 1시간 이상 버스를 운행한 것으로 드러났다.
때문에 전문가들은 스쿨존 내 교통사고를 근본적으로 예방하려면 단속과 처벌 강화 보다는 안전시설을 확충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지적한다. 박병호 충북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스쿨존 주변을 통계적으로 분석해보면 차도와 보행로가 분리되지 않거나 교통단속용 CCTV가 없는 곳일수록 교통사고가 더 자주 일어나는 경향을 보였다”고 말했다.
▦ 전국 스쿨존 사고다발지 인터랙티브 지도-지도 위 점에 마우스를 올리면 사고다발지의 위치와 보행로ㆍCCTV 설치 여부, 발생건수를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자료제공 도로교통공단)
큰 화면으로 보기 ▶ http://bit.ly/2hxLfDF
실제 도로교통공단과 경찰청이 지난 2012년~2016년 사이 교통사고가 2건 이상 발생하거나 사망사고가 발생한 곳을 지정한 ‘스쿨존내 사고다발지’ 195곳을 확인한 결과, CCTV가 제대로 갖춰진 곳은 단 4곳에 불과했다. 보행로가 없는 곳도 절반이 넘는 97곳이나 됐다. 지난 6월 사고가 난 청주 스쿨존 역시 CCTV도, 보행로도 없었다.
스쿨존 전체로 놓고 보면 위험은 더욱 크다. 2017년 현재 스쿨존으로 지정된 초등학교 6,083곳 중 1,834곳(30%)에 보행로가 없다. 전국 스쿨존 1만 6,456곳 중 CCTV가 한 대라도 설치된 곳은 약 34%(5,656곳)이며, 실제 교통단속이 가능한 CCTV만 따지면 2%(336곳)에 불과하다.
현행 도로교통법상 스쿨존 내 CCTV나 보행로 분리는 의무가 아니다. 따라서 스쿨존이 어린 보호기능을 다하려면 이런 안전장치부터 의무 설치하도록 법 개정이 이뤄져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박상근 서울교육청 안전관리팀장은 “어린이 교통안전 예산이 다른 문제에 밀려나지 않고 우선적으로 확보될 수 있도록 법적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신혜정 기자 arete@hankookilbo.com
박소영 기자 sosyoung@hankookilbo.com
▦ 보행로 없는 초등학교 지도. (자료제공 황영철 의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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