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 세상을 그리다] 아끼는 걸 버려봐 자유를 얻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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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 세상을 그리다] 아끼는 걸 버려봐 자유를 얻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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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1.17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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탕기피코 강의 규칙을 충실히 지키며 마르쿠스는 행복이 무언지 조금씩 알게 된다. 내어준 것들, 비워둔 자리에는 반드시 새로움이 채워진다는 것을. 고래이야기 제공

나누면서 채워지는 이상한 여행

디디에 레비 글, 알렉상드라 위아르 그림ㆍ마음물꼬 옮김

고래이야기 발행ㆍ34쪽ㆍ1만3,000원

여행을 떠날 때, 짐은 최대한 단순하고 가벼워야 한다. 속옷 몇 벌과 편한 옷들, 간단한 세면도구와 의약품들. 그리고 배낭에는 여분의 공간이 필요하다. 여행지에서 만나는 추억이 담길 자리다. 채워질 것은 현지에서만 살 수 있는 물건이나 가족, 친구들에게 나눠 줄 선물들이다. 요즘은 해외에 나갈 때 책과 노트를 담기보다는 여행지에서도 휴대폰으로 맘껏 인터넷을 쓸 수 있게 준비해간다. 지도를 보며 길을 몰라 헤매다 사람들에게 묻지 않아도 되고 무거운 배낭을 들고 빈 숙소를 찾아 헤맬 필요도 없다. 여행지의 밤, 다른 여행자들과 어울려 맥주에 담소를 나누기보다는 호텔방에서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사진을 올리고 인터넷으로 다음 여행지 정보를 찾느라 여념이 없다.

여름방학을 맞아 아홉 살 마르쿠스는 아빠를 만나러 홀로 여행을 떠난다. 여행을 좋아하지 않는 마르쿠스는 배를 타고 모기와 악어 떼가 반기는 밀림 속 탕가피코 강을 9일이나 항해해야 한다. 더 황당한 것은 탕가피코 강의 규칙이다. 배가 정박하는 항구마다 누군가의 물건을 받으면 자신의 가방을 열어 그들이 선택한 것을 주어야 한다. 첫 정박지에서 한 소녀가 도자기 조각상을 건네주며 마르쿠스의 MP3를 달라고 한다. 이어 두 번째 항구에서는 깃털 모자를 쓴 남자가 피리를 주고 아끼는 게임기를 가져간다. 매번 내리는 곳마다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불평등한 물물교환을 해야 하다니 끔찍한 여행이 아닌가!

어느 항구에서 마르쿠스는 한 할머니에게 운동화와 양말까지 내주고 작고 시시한 상자를 받는다. 막상 맨발이 되자 이상하리만치 자유로운 기분이 되어간다. MP3와 게임기를 내어주니 밀림의 풍경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고, 피리를 불며 새들과 교감한다. 또한 운동화와 교환한 상자 속 크림은 모기 물려 가려운 상처를 낫게 하고 더는 물리지 않게 해준다. 선장에게서 배운 나무 조각으로 시간을 보내며 진정한 행복이 무언지 조금씩 알게 된다. 내어준 것들, 비워둔 자리에는 반드시 새로움이 채워진다는 것을.

‘아프리카 원숭이 사냥 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원숭이가 좋아하는 먹이가 잔뜩 든 자루에 원숭이 손이 겨우 들어갈 구멍만 뚫어 놓으면 된다. 원숭이는 사냥꾼들이 자신을 잡아 갈 때까지도 구멍에서 손을 빼고 달아나지 못한다. 손에 잔뜩 움켜쥔 먹이를 포기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일상의 시계추는 점점 더 빠르게 움직인다. 시간을 천천히 흐르게 할 방법이 없을까? “여행 떠날 짐을 꾸리세요, 구멍에서 빠져나올 만큼 최대한 작은 봇짐으로!”

소윤경 그림책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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