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 연기로 불안한 학부모ㆍ학생 잡기
수험생 아들을 둔 서울 양천구의 김모(48)씨는 당초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이 예정됐던 16일 아침 일찍 인근 학원의 ‘수능 연기 대비 과목별 막판 특강’에 등록했다. 해당 학원이 수능 연기가 발표된 전날 저녁부터 세 차례나 “수능을 대비할 마지막 기회”라며 보낸 문자를 보고 밤샘 고민 끝에 결정한 것. 김씨는 “21일까지 수학, 국어, 물리Ⅰ 3개 과목을 각각 2일씩 3, 4시간 듣는 데 32만원이 든다”며 “수능 연기로 아이가 불안해 하는 데다 학생 모집이 임박했다고 문자를 재차 보내 내린 판단“이라고 털어놨다.
수능이 23일로 일주일 연기되면서 학생ㆍ학부모들의 혼란이 커지자 학원ㆍ과외 업체들이 “이 때가 기회”라며 또 다시 불안마케팅에 나섰다. 업체들은 수능 연기 발표 직후부터 온ㆍ오프라인을 넘나들며 ‘심리안정ㆍ컨디션 조절에는 특강이 필수’ ‘수업 일정별 자리 절반이상 마감’ 등의 문구로 발 빠르게 홍보에 나섰다. 경기 성남의 한 수학전문학원 관계자는 이날 오전 등록 문의 전화를 하자 “과목 수준 별로 15명 정도 학생을 받고 있는데, 4개 반이 모두 찬 상황이며 최상위권 반 1개에 2, 3명 자리 밖에 안 남았다”며 “원래 수강료보다 50% 할인해 줄 테니 빨리 고민을 끝내시라”고 설득했다.
특히 수험생들은 단기간에 성적을 많이 올릴 수 있는 탐구영역 특강이 유용할 것이라고 보고 서둘러 등록에 나서고 있는 상황이다. 양천구의 또 다른 학원 관계자는 “연기 발표 직후부터 16일 오전까지 원래 수강생은 물론 다른 학생들의 상담 문의까지 100여통이 빗발쳤다”며 “특히 사탐ㆍ과탐 영역 특강 개설 문의가 많았다”고 설명했다. 수험생들이 모인 온라인 사이트에선 “탐구 특강을 듣고 싶지만 여건이 안 된다”며 유명 학원에서 판매하는 중고 문제집을 구하겠다는 글까지 게재되고 있다.
학부모들의 부담감도 덩달아 커지고 있다. 고3 학부모 문모(47)씨는 “수능 이후 수시 전형 논술ㆍ면접 대비를 위한 과외에도 만만찮은 비용이 들 걸로 예상했는데, 수능 연기 특강까지 듣게 되면 11월 한 달 학원비만 100만원은 족히 넘을 것 같아 걱정“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수능 직전 특강 등으로 급작스럽게 무리하면 되레 시험 당일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조언한다. 이진청 서울 원묵고 진로진학상담교사는 “시간이 일주일 생겼다고 계획에 없던 특강을 들으며 여기에 휘둘리면 체력적으로 무리가 될 것”이라며 “그간 공부해왔던 내용을 차분히 재점검하는 시간을 갖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신지후 기자 h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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