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서는 공개된 뒤 수정할 수 없는 반면, 박물관이라면 언제든지 전시변경이 가능하다는 가변성의 이점이 있다. 교과서처럼 정답은 하나라고 단정짓지 않아도 된다고 하면 보다 가능성이 확대되지 않을까.”
17일부터 3일간 서울 미근동 동북아역사재단에서 열리는 ‘한일역사가회의’의 일본측 참가자 가운데 한 명인 겐모치 히사키 시즈오카현립대 교수의 제안이다. 한일 역사 화해를 위해 그간 추진된 것은 독일ㆍ프랑스 모델에서 따온 ‘공동 역사교과서 편찬 사업’이었다. 독일이 주변국과의 화해를 위해 프랑스, 혹은 폴란드와 손잡고 공동역사교과서를 만드는 것에서 힌트를 얻은 것이다.
김대중 정부 때부터 이를 위한 ‘한일역사가회의’ ‘한일역사공동연구위원회’ 같은 것들이 조직되었고, 이후 ‘미래를 여는 역사’ ‘한중일이 함께 쓴 동아시아 근현대사’ 같은 책들을 그 결과물로 내놓기도 했다. 그러나 효과는 미미했다. 겐모치 교수의 제안은 대중들이 손쉽게 접근할 수 있는 박물관 전시 형식이 더 낫다는 것이다.
겐모치 교수는 ‘반전평화운동의 좌절에서 독일ㆍ프랑스 역사화해로’라는 논문에서 구체적인 몇 가지 사례를 설명한다. 가령 프랑스 영국 독일 3개국 전문가가 참석해 만든 ‘페론느 1차 세계대전사 박물관’은 애국주의와 무관한, 평범한 병사와 일반 시민들의 시각에서 본 1차 세계대전만 다룬다. 겐모치 교수는 일본의 국립역사민속박물관, 야스쿠니 신사의 보물관은 물론, 충남 천안의 독립기념관도 이런 시각에 미치지 못한다고 지적한다. 그는 독립기념관을 찾았을 때 “‘일제 35년, 또 하나의 아우슈비츠’라고 전시하면서 전시 마지막에 역사의 교훈으로 애국주의의 중요성이 내세워져 있다는 점”을 꼬집으면서 “심정적으로 이해할 수 있으나 국제적 감각으로는 균형이 현저하게 결여되어 있다”고 비판했다.
희망의 싹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겐모치 교수는 한일간 교류를 주 대상으로 삼고 있는 규슈의 나고야성박물관, 부산의 조선통신사기념관을 그 대안으로 꼽았다. 물론 궁극적으로는 장대한 규모의 동아시아 교류를 묘사하는 박물관이 목표다. 일제의 침략도 물론 들어가야 한다.
조태성 기자 amorfat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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