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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우리는 왜 아기 머리를 빡빡으로 깎았을까?

입력
2017.11.15 14:51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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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에야 조금 달라진 감도 있지만, 우리에게는 아기가 태어나 조금 자라면 머리를 빡빡 밀어주는 관습이 있다. 그 이유와 관련해서 흔히 “머리 숱이 많아지게 하기 위해서”라는 답변이 제시되곤 한다. 아무래도 얇고 가는 머리를 밀게 되면, 좀 더 검은 머리카락이 나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머리카락은 나무처럼 계속 굵어지면서 성장하지 않는다. 평생 머리카락이 자란다고 해서 연필처럼 굵어지지는 않잖는가? 즉 머리 숱의 풍성함을 결정하는 1차 원인은 모근의 개수라는 말이다. 이는 머리를 빡빡 미는 것이 머리 숱과는 큰 관련이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더구나 과거 어린 아기의 머리를 미는 데 상용되는 도구는 둔탁한 크기에 예리한 날을 가진 삭도(削刀)였다. 삭도는 다소 생소할 수도 있는데, 예전 아저씨들이 다니던 이발소에서 사용되던 커다란 크기의 면도칼 정도로 이해하면 된다.

주지하다시피 어린 아이는 통제가 쉽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무척 가는 아이의 머리칼을 둔탁하고 예리한 삭도로 미는 일은 무척이나 위험한 행동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도 이런 일이 우리의 전통으로 확립되어 있는 것이다. 그것도 “머리 숱이 많아진다”는 별 시답잖은 이유와 함께 말이다.

유교에서는 신체의 작은 부분조차도 부모에게 받은 것이므로 손상해서는 안 된다고 교육한다. ‘소학’에 등장하는 ‘신체발부(身體髮膚) 수지부모(受之父母)’를 떠올리면 되겠다. 이 때문에 머리카락을 자르지 않는다. 해서 구한말 고종이 단발령을 내리자 “머리를 자를지언정 머리카락은 자를 수는 없다”고 항거했던 것 아닌가?

유교에는 자연적으로 빠지는 머리카락도 정성스럽게 모아 한 해가 끝나는 12월 31일에 태우는 소발(燒髮) 의식도 있다. 또 평생에 자른 손톱도 주머니에 고이 담았다가 죽고 나면 관에 싸가곤 했다. 즉 부모에게 받은 신체를 최대한 온전히 한다는 의미인 것이다. 그런데 머리카락을 자른다니? 무언가 이상하지 않은가?

사실 여기에는 중세까지 우리문화에 절대적 영향을 미친 불교와, 당나라 4대 황제인 중종에 얽힌 일화가 있다. 당나라는 서양의 로마를 압도한 세계 최대ㆍ최강의 국가였다. 이 당나라의 전성기 황제 중에 3대 고종이 있다. 고종은 나당연합군을 결성해 고구려와 백제를 무너뜨린 인물이기도 하다.

그러나 고종에게는 풍질(風疾)이라는 고통스러운 난치병이 있었고, 이 병이 자식에게 유전될 것을 몹시 두려워했다. 영유아 사망이 높던 시기에 난치병까지 앓고 있던 황제의 깊은 고민이 아닐 수 없었다. 독실한 불교신자였던 태종은 ‘서유기’로 유명한 삼장법사 현장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현장의 일대기인 ‘자은전(慈恩傳)’ 권9를 보면, 이때 현장은 황자(皇子)를 출가시켜 붓다의 은덕을 입도록 하자고 주청했다. 이렇게 해서 생후 1개월 만에 삭발하고 출가하는 이가 바로 불광왕(佛光王), 즉 ‘붓다의 영광’으로 불리는 이현(李顯)이다. 이때의 출가는 정식으로 출가해서 승려가 되는 것이 아니라, 어렸을 때 액막이로 출가하는 임시출가 즉 단기출가이다.

그런데 이현은 이후 건강하게 성장하는 것을 넘어, 고종의 일곱 번째 아들임에도 불구하고황제로까지 즉위한다. 이렇게 되자 귀족들을 중심으로 영유아의 출가가 일대 선풍을 일으키게 된다. 이 광풍이 우리나라까지 넘어와 아이 때 머리를 미는 문화로 정착하는 것이다.

아이의 삭발은 불교시대를 거치면서 견고한 전통으로 확립된다. 그러나 숭유억불의 조선으로 넘어오면서 점차 종교적 의미는 탈각된 채 문화적 풍속으로만 남았다. 잊혀진 망각의 기억처럼 의미는 상실한 채 행위만 남게 된 것이다. 그래서 누군가 물어오면, 머리 숱이 많아진다는 이유 아닌 이유로 재포장되어 오늘날까지 흐르고 있다.

자현 스님ㆍ중앙승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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