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들은 패야 돼. 찍 소리도 못하게. 매일 아침 지 엄마가 시끄럽게 소리쳐 깨우는데도 못 일어나고 지각하더니, 한번 패니까 일찍 일어나서 아침 먹고 학교 가겠다고 식탁에 앉아 있더만.”
퇴근 길 지하철 옆 자리 두 중년 남성의 ‘리얼 대화’다. 대화 속에 언급된 학교는 우리 큰 애가 졸업한 학교다. 가까운 동네 주민이신가 보다. 때린 교육의 효과가 얼마나 가겠느냐는 의심부터 들었지만 그렇다 치고, 아직도 저런 인식이 많겠지 생각하며 아득해졌다.
상황이 이럴진대 한국일보가 11일 보도한 기획기사 ‘[인생 없는 교실] 꼭 알아야 할 것은 안 가르치는 학교’는 어쩌면 순진무구한 문제제기다. 학생 인권과 수업혁신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졌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체벌이 정답이라는 인식이 공존하는 현실에서, 인생에서 꼭 필요한 생존수영, 실용영어, 노동자로서의 권리, 법률 상식, 토론하는 법 등을 학교에서는 왜 전혀 배울 수가 없느냐는 질문을 던졌으니. 이 시대의 중고생들이 대학 입시를 위해 얼마나 치열하게 경쟁하는지, 게다가 그 대부분을 사교육에 의존하느라 공교육은 고사 상태임을 몰라서 던진 질문은 아니다. 학부모와 사회가 함께 발맞추지 않고서는 한국 교육이 달라지지 않는다는 지적도 타당하다.
그러나 이 기획을 보도하면서 확인한 정말 놀라운 사실은, 같은 문제의식에서 대안학교나 홈스쿨링을 선택한 용감무쌍한 학생과 학부모가 이미 상당수 존재한다는 점이었다. 일부 대안학교를 제외하면 정규 학력으로 인정받지 못해 대입과 취업에 절대적으로 불리한데도 이를 감수하고 학교를 뛰쳐나간 이들이다. 명문대에 진학해 고연봉의 대기업에 입사하거나 공무원시험에 합격한, 이것이 인생의 성공이라고 믿는 이들의 시각에선 내심 ‘루저의 삶’이라고 폄하할지 모른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질문은 그 다음에 있다. 그 성공은 과연 행복한 인생인가.
과외 한번 안 하고 대학에 들어가고, 대학 졸업하면 모두 취직이 되던 고도성장기를 지낸 지금의 부모 세대 중에는 “공부 할 놈은 어차피 다 한다”며 학교 교육의 문제를 심각하게 보지 않거나, 개인의 몫으로만 보는 이들이 더러 있다. 물론 그렇다. 알아서 공부를 잘 하는 아이들은 어떤 입시제도에도 가장 잘 적응하고 좋은 성적을 받는다. 문제는 그만큼 공부를 잘하지 못하는 아이, 대학에 갈 생각이 없는 아이, 교과서 속 죽은 지식보다 자기 삶에서 살아 숨쉬는 지식을 갈구하는 아이들이다. 불행히도 한국의 학교는 이런 학생들을 품어주지 못한다. 잠재력 계발과 격려는커녕 ‘공부하는 친구 방해나 하지 마라’는 정도다. 진학률과 성적이 최우선 과제인 학교에서 너무나 많은 학생들이 소외된다. 지금처럼 특목고-자사고-일반고로 뚜렷하게 서열화된 고교에서는 공부를 잘 하는 아이들도 소외된다. 특목고에 모인 상위권 아이들은 성취동기가 자극되다 못해 과열돼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서로 비슷비슷한 가정환경과 진로선택을 공유하기 십상이다. 이런 학교에서, 내 아이는 행복한가.
학교에서 아이의 성적보다 가능성을 키우기를 바라고, 진학률보다 행복을 중시하는 요구는 아직 소수지만 분명히 존재한다. ‘어쨌든 대학은 잘 가야 할 것 아니냐’는 지상과제에 밀려 어쩔 수 없다는 현실론도 언제 깨질지 모른다. 성취동기를 부여하고, 잠 줄여 공부를 하는 것은 대학에 간 뒤에 해도 늦지 않다. 아직 뭐가 될지 모를 청소년기 학생을 두로 벌써부터 특목고-자사고로 줄세울 필요는 없다. 학과목, 교육과정, 평가에서 더 많은 선택과 더 넓은 경험, 더 많은 기회를 주어야 한다. 특별한 부모나 해외 유학이 아니라 우리의 학교가 그것을 해주길 바란다. 아이들의 삶이 더 행복해질 수 있도록.
김희원 기획취재부장 h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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