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오전 서울 정릉~개포동을 왕복하는 143번 버스 안. 뒤쪽 좌석에 앉아 있던 이모(32)씨는 갑자기 고개를 숙였다. 발 밑에 둔 아이스커피를 몰래 마시기 위해서다. 커피 냄새와 마시는 소리가 아니었다면 뭘 먹었는지 알아채기 어려울 정도였다. 이씨가 이렇게 주변을 의식한 건 서울시가 이날 시작한 ‘음료 반입 자제’ 안내방송 때문이다. 이씨는 버스에 타기 전부터 음료 반입이 어렵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너무 목이 탔다. 이씨는 “갑자기 목이 말라 커피를 사서 버스에 탔다. 후회하고 있다”고 했다.
버스업계에 따르면, 하루 약 3만 명이 음료를 들고 버스에 탄다. 음료가 다른 승객 옷에 튀거나, 바닥에 쏟아지는 등 불편함이 발생할 소지가 많은 셈. 이에 서울시는 최근 서울시버스운송조합에 버스 내 음료 반입 자제를 내용으로 하는 안내방송을 시내 모든 버스에 내보내줄 것을 요청했다.
안내방송에 대한 시민들의 반응을 알아보기 위해 14일 오전 서울 시내 6개 노선 버스에 몸을 실었다. 안내방송이 나온 곳은 한 군데도 없었다. 해당 노선들을 운영 중인 운수회사 관계자는 “안내 방송 실시에 대한 고지가 잘 안된 것 같다”며 “확인해 보니 이번 주까지 저희가 운영 중인 버스에는 안내 방송이 모두 시작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방송은 없었지만, 대부분의 승객은 버스 내 음료 반입이 어려워졌다는 사실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을 통해 알고 있었다. 262번 버스에서 만난 이도연(31)씨는 “방송은 안 나오고 있지만 오늘부터 하는 건 여러 곳에서 들어서 알고 있었다”며 “조금 늦긴 했어도 지금이라도 이렇게 안내를 해서 다행인 것 같다”고 했다.
평소 버스를 자주 이용한다는 김경식(59)씨는 “버스를 타다 보면 별의별 사람들이 다 있는데 저는 무조건 (안내방송에) 찬성한다”며 “버스는 이동 수단이지 음료 마시는 카페가 아니다”라고 했다. 대만에서 왔다는 리우(20)씨는 안내 방송이 너무 늦게 시행된 것 같다며 놀라기도 했다. 리우씨는 “대만에서는 무조건 (대중교통 취식은) 벌금 30만 원인데 좋은 제도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다만 온라인상에는 의견이 조금 엇갈린다. 네티즌들은 “당연히 안 된다”는 입장과 “입구가 막혀있다면 괜찮다”는 두 가지로 의견이 갈렸다. 시에 따르면 14일부터 일부 버스에서 ‘음료 반입 자제’ 안내 방송이 시작되고 오는 25일부터는 서울 시내 모든 버스에서 ‘음료 반입 자제’ 방송이 나갈 예정이다. 글ㆍ사진=이순지 기자 seria1127@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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