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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 선무당 감사원

입력
2017.11.13 20:00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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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산 기동헬기 수리온
국산 기동헬기 수리온

“개발한 지 5년이 넘었다. 결함이 없어져야 할 때다.”

지난달 19일 국회 법사위 국정감사장. 국산 기동헬기 수리온에 대해 황찬현 감사원장은 이렇게 단언했다. 하긴 그럴 만도 했다. 앞서 7월 감사원은 수리온을 총체적인 문제덩어리로 낙인 찍어 전력화 중단을 요구했으니까. 명품무기는 졸지에 ‘깡통헬기’로 전락했고 수리온을 향한 비난여론이 들불처럼 번져갔다. 감사원은 우리 사회의 암세포를 도려낸 듯 기세등등했다. 감사원이 휘두른 서슬 퍼런 칼날에 상대방이 맥없이 쓰러지는 진부한 시나리오가 반복되는가 싶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방산비리에 시달려 늘 숨죽이던 방사청이 이례적으로 재심의를 요구하며 반기를 들었다. 불똥이 튈까 싶어 물러서있던 국방부도 “전력화에 전혀 문제가 없다”며 엄호사격에 나섰다. 수리온을 운용하는 육군조차 “상당한 전력 공백이 우려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급기야 사사건건 으르렁대던 여야 정치권마저 가세해 “전력화 중단 요구를 재검토하라”고 감사원을 질타했다. 박제로 만들어져 전리품 목록에나 오를 뻔하던 수리온이 다시 날갯짓을 하며 덫을 놓은 감사원의 목덜미를 겨누는 양상으로 돌변한 셈이다.

감사원의 조급증이 화를 키웠다. 황 원장의 말대로 문제 있는 장비는 고쳐야 한다. 반면 수리온의 결함은 이미 대부분 해결됐다. 더구나 일선 조종사들마저 “감사결과를 이해할 수 없다”며 울분을 토하는 실정이다. 감사원이 일선 현장을 찾아 제대로 귀를 기울였는지 의문이다.

그래도 시비를 건다면, 남은 결함은 시간을 두고 고치면 된다. 이른바 진화적 개발이다. 개발한 장비를 실제 사용하면서 문제가 발견되면 보완해 완성도를 높이는 방식이다. 선진국의 주요 무기들은 이런 식으로 명성을 쌓아갔다. 자동차나 가전제품이야 다른 것으로 갈아타면 그만이지만, 방산무기는 기술 확보가 어려운 데다 국민의 생존이 달린 안보와도 직결되기 때문이다.

수리온은 1조3,000억원을 들여 개발해 2012년부터 육군에 65대를 배치한 항공전력의 핵심이다. 노후 헬기를 대체하려면 2023년까지 200여대를 전력화해야 한다. 해병대는 올 연말 수리온을 도입해 상륙 기동군의 오랜 꿈을 실현할 기대에 부풀어 있다. 하지만 감사원이 고집을 피우면서 구상이 모두 틀어질 참이다.

황 원장이 선심 쓰듯 ‘5년’을 강조했지만, 오히려 편협한 시각을 드러낼 뿐이다. 5년이면 대학을 막 졸업하고 학자금 대출을 갚기 시작할 때다. 그렇다고 원금과 이자를 통째로 내지는 않는다. 그랬다간 신용불량자가 되기 십상이다. 하물며 정부와 업체가 사활을 걸고 공들인 국산 무기는 말할 것도 없다. 뜬금없이 5년을 마지노선으로 제시한 건 감사결과를 애써 정당화하기 위한 황 원장의 변명에 불과하다.

감사원의 엇나간 우월의식이 된서리를 맞은 건 한두 번이 아니다. 2008년 쌀 직불금 부당 수령자 명단을 은폐하다 사상 초유의 국정조사를 자초하며 감사원의 존립 자체가 흔들렸고, 2010년 천안함 사건 감사 때는 20여 차례에 걸친 유도신문으로 “새떼가 아닌 반 잠수정”이라는 진술을 끄집어냈지만 법정에서 뒤집히며 체면을 구겼다. 심지어 군 안팎에서는 “수리온 감사결과가 터무니없지만 조만간 바뀔 황 원장과 말이 통하겠느냐”는 푸념이 적지 않다. 검찰마저 방산비리에 대한 감사결과를 곧이 믿지 못하겠다며 혀를 차고 있단다.

사정이 이런데도 감사원은 수리온을 전력화하면 다시 감사에 나서겠다고 윽박지르고 있다. 마구 칼을 놀리다가 조롱의 대상이 됐지만 감사원은 여전히 권력기관인지라 혹여 생채기를 입지나 않을까 다들 바짝 엎드리는 형국이다. 우리 사회의 감춰진 폐부를 찌르며 사이다 같은 후련함을 선사했던 600여명의 애먼 감사관들은 덩달아 서툰 칼잡이로 매도 당할 판이다. 감사원은 위상이 왜 이 지경이 됐는지 정녕 모르나.

김광수 정치부 기자 rolling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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