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준표ㆍ안철수 이어 유승민도 당대표에
성찰 없는 조기 귀환 ‘문재인 때리기’뿐
국민의 마음 어떻게 껴안을지 고민해야
유승민 의원이 13일 열린 바른정당 전당대회에서 당 대표로 선출되면서 정치 지형이 묘해졌다. 홍준표(자유한국당), 안철수(국민의당)에 이어 유승민까지 당 대표에 올라 지난 대선의 주요 후보들이 일제히 정치 전면에 나선 것이다. 6개월 전의 대선 정국으로 돌아간 듯한 모양새다.
과거 대선에서 패배한 후보는 정계를 은퇴하거나 장기간 칩거의 시간을 가진 뒤 복귀했던 모습에 익숙했던 터라 이들의 조기 귀환은 어리둥절하다. 대선 실패는 그들을 지지한 유권자들에게 큰 실망을 안겨 준 것이다. 지지자들의 상처는 아직 아물지 않았는데 자신의 마음만 추스른 뒤 복귀하는 것은 정치 도의에 맞지 않는다. 자기 반성과 성찰, 미래에 대한 고민의 과정이 결여됐다는 점에서 올바른 정치 지도자의 자세로 보기도 어렵다.
유력 대선 후보들이 정계 복귀를 서두른 이유는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내세우는 명분은 “당의 추락을 보고 있을 수만은 없어서”라지만 실은 하루빨리 당을 장악하려는 의도가 크다. 세 야당 대표의 공통점은 취약한 당내 지지 기반이다. 당의 중심이 아니기 때문에 언제 어떻게 밀려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있다.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최선의 방법은 본인이 당권을 장악하는 것이다. 당 대표가 되면 내년 지방선거에서 공천권을 쥐게 되고, 3년 후 총선에서도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내 사람을 두루 심어 이를 기반으로 대선 재도전의 발판을 굳히자는 생각이 때이른 복귀를 부추겼을 것이다.
대선 패배의 이유와 극복 방안에 대한 고민 없이 조기 등판하다 보니 새로운 비전과 가치를 달리 내놓을 게 없다. 새 정권에 대한 날 선 비판과 몸집불리기가 전부다. 세상은 달라졌는데 이들의 정치는 여전히 과거 프레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친박 청산’에 사활을 걸고 있는 홍 대표의 관심은 신보수로의 변신이 아니다. 대선 이후 그의 언행을 보면 ‘박근혜’를 정치적 이익을 위해 활용했을 뿐이지 보수정당의 퇴행적 본질과 진정으로 결별하려 한 적이 없다. ‘박근혜 출당’은 바른정당 일부 의원들과의 통합을 위한 정치적 술수에 불과하다. 오랫동안 당내 비주류였던 홍 대표로서는 ‘문재인 때리기’로 자신의 정치적 존재 가치를 높이는 게 목표다.
안 대표의 문 대통령에 대한 반감은 매우 강하다. 발단은 2012년 대선에서의 후보단일화를 둘러싼 앙금이고, 새정치민주연합 시절 갈등과 분당 사태로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당 대표 이후 ‘기승전 문재인 비판’에 올인하는 그를 보면 문재인을 이기기 위한 집념을 불태우는 정치로 비쳐진다. 안철수의 트레이드마크였던 ‘새 정치’는 가물가물해졌고, 당 지지율은 바닥이다. 초조감에 바른정당과 섣부른 통합을 추진하다 당내 갈등만 촉발시켰다. 명분도 실리도 다 잃을 수 있는 위기에 놓여 있다.
바른정당 대표 수락 연설을 통해 “죽음의 계곡에서 당을 지켜내겠다”며 비장함을 보인 유 대표의 앞길은 험난하다. 그는 원칙과 소신을 중시하는 정치인이다. 박 전 대통령에게 정면으로 맞섰을 만큼 뚝심도 있다. 하지만 생각이 다른 사람을 설득하고 포용하는 능력에는 의문부호가 따른다. 정치적 이익을 좇는 탈당파의 철새 행각은 비판받아 마땅하지만 33명에 달했던 의원이 11명으로 쪼그라든 데는 그의 리더십 부족도 원인이 됐음을 부인할 수 없다. ‘새로운 보수’를 주장하면서도 자유한국당과 차별화된 모습을 보여 주지 못한 점도 한계다.
야당 대표들이 정부 실정을 비판하고 견제하는 건 당연하다. 대통령 지지율이 70%가 아니라 90%가 된다 해도 야당은 정권의 잘못을 통렬하게 질타해야 한다. 그러나 반대를 위한 반대에 머물러서는 국민들의 지지를 얻을 수 없다. 국민들은 이제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어 주길 정치권에 요구하고 있다. 세 야당 대표가 차기 대선을 꿈꾼다면 ‘반문(反文)’을 뛰어넘어 어떻게 국민의 마음을 껴안을 수 있을지를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수석논설위원 cj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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