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국 모면하고 포괄ㆍ점진적 의미로
20개 조항 보류 등 대략적 합의
미국과 NAFTA 협상 앞둔 캐나다
최종서명 거부 땐 일본 구상 더 위축
미국이 빠져 세계경제 파급력이 급감한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참가 11개국이 11일 베트남 다낭에서 열린 각료회의를 통해 대략적인 합의를 달성했다. 미국이 이탈하기 전의 협정내용 중 관세철폐 규칙을 바꾸지 않고 지적 재산권을 중심으로 20개 조항의 효력은 일단 보류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각료급 합의 후 참가국인 캐나다가 이의를 제기하면서 남은 11개국이 보조를 맞춰 최종 발효까지 갈지는 여전히 불확실하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 대해 파이낸셜타임스는 “TPP가 여전히 림보(limboㆍ천국과 지옥 사이 공간)에 머물러 있다”고 분석했다.
이들 국가는 11일 일본의 주도 아래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가 열린 베트남 다낭에서 협상을 벌여 큰 틀의 합의를 이뤄냈다. NHK 등에 따르면 각료회의 공동의장을 맡은 베트남의 쩐 뚜언 아인 산업무역부 장관은 기자회견에서 “많은 중요한 문제들에 합의하고 TPP를 유지하기로 했다”라며 “그러나 TPP가 새로운 이름을 갖게 됐다”고 발표했다. ‘포괄적, 점진적 TPP(CPTPP)’라는 새 이름을 도출했다. 아인 장관은 CPTPP가 TPP의 내용을 유지하되 회원국이 일부 의무 사항에 대해 이행을 유보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모테기 도시미쓰(茂木敏充) 일본 경제재생장관은 “새 협정은 TPP의 기존 조항 가운데 20개의 시행을 보류할 것”이라며 “이 중 10개는 지식 재산권과 관련돼 있다”고 설명했다. 그동안 베트남 등 일부 국가는 저작권 보호기간 70년 등 일부 TPP 조항의 효력 보류를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대 수출시장인 미국을 염두에 두고 불리한 규정을 받아들였지만, 미국이 탈퇴한 만큼 그에 상응하는 이익을 확보하겠다는 뜻이다. 이런 동결합의는 미국이 협정에 복귀할 경우 해제된다는 단서를 달았다. 또 미국의 복귀가 예상되면 협정을 재검토한다는 규칙도 포함됐다. 미국이 떠났지만 돌아온다면 언제라도 자리를 만들겠다는 합의는 남겨둔 것이다. CPTPP는 11개국 중 최소 6개국이 자국내 비준절차를 끝낼 경우 60일 후 발효된다.
TPP가 그럭저럭 절멸의 위기는 넘겼지만 미국이 빠진 영향이 현실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지난 9일 밤 모테기 장관이 큰 틀의 합의를 끝냈다고 공표하자 프랑수아-필리프 상파뉴 캐나다 대외무역장관이 이를 부인하는 등 진통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본 언론은 이를 ‘캐나다의 난(亂)’으로 명명했다. 캐나다 무역정책의 최대 과제는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가 요구한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재협상이다. 먼저 TPP에 안이하게 타협하면 미국에게 약점을 보여 FTA재협상에 악용될 것이란 불안이 적지 않다. NAFTA의 재협상 결과가 윤곽을 드러낼 때까지 TPP합의를 미루는 전략이 낫다고 판단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새로운 TPP를 위협할 불씨는 이밖에도 많다. 유력 국영석유기업을 안고 있는 말레이시아는 국유기업 혜택금지조항의 동결을 요구하는 데다, 뉴질랜드에선 TPP에 신중한 정권이 지난달 집권했다.
TPP내에서 일본 다음으로 경제규모가 큰 캐나다가 만약 최종서명을 거부할 경우, 10개국 체제로 출범할 수밖에 없다. 전세계 국내총생산(GDP)의 37.5%에 달했던 당초 TPP의 위상이 미국의 탈퇴 후 현재 12.9%로 줄어든 상황에서 더 축소될 여지가 남아있다는 얘기이다. 양자협정을 중시하는 트럼프의 미국,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을 띄우는 중국에 대항해 TPP를 살려내 아시아태평양 거대 무역 구상을 주도하겠다는 일본의 기대가 흔들리는 상황이다.
도쿄=박석원 특파원 spar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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