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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24시] 일본 ‘범죄자 치매’ 고민

입력
2017.11.12 18:33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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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사회 일본. 가나가와현 가와사키시에서 여성 노인이 지팡이에 의지해 걷고 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고령사회 일본. 가나가와현 가와사키시에서 여성 노인이 지팡이에 의지해 걷고 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범죄를 저지른 뒤 감옥에 있는 동안 치매가 진행돼 정상적인 재판이 불가능한 경우가 일본에서 늘고 있다. 이른바 치매 피고인의 ‘소송능력’(訴訟能力ㆍ스스로 유불리를 방어할 능력) 논란이다. 범죄인의 연령대가 높아진 데 따른 고령화 사회의 단면인 것이다. 이 때문에 재판에 참여한 배심원들의 판단도 혼란을 겪어 사회적 고민으로 등장하고 있다.

지난 7일 사형이 선고된 교토(京都)지방법원의 가케히 지사코(70ㆍ여) 재판에선 피고인의 치매 문제가 쟁점이 돼 비전문가인 배심원들이 곤란한 결정에 내몰렸다. 가케히는 남편은 물론 사실혼 관계인 남성 등 4명을 연쇄 독살해 3년전 일본을 충격에 빠트렸다. 당시 ‘블랙위도우’(교미 후 수놈을 잡아먹는 독거미) 사건으로 불렸다. 그가 만난 남성들은 모두 70대 이상이고 부유했다. 연간 수입 1,000만엔 이상 부자와 연결되도록 설정한 인터넷 만남사이트에서 노인들에게 접근한 뒤, 결혼 후 건강음료라며 청산가리를 먹게 해 죽였다. 이런 방식으로 보험금과 유산 등 10억엔을 빼돌렸다.

요미우리(讀賣)신문 등에 따르면 가케히는 5차례 진행된 진술에서 처음엔 무죄를 주장하며 묵비권을 행사했다. 그러다 지난 7월 돌연 모든 죄를 인정했다. “남편이 다른 여자들에게 수천만엔을 주고 다녀 화가 났다”고 분노를 토해내는가 하면 “나는 사형 당해도 미소 짓고 죽겠다”고 기괴한 말을 했다. 하지만 이틀 뒤 “머리가 흐릿해졌다”며 직전에 인정한 진술을 다 번복해 재판을 혼란에 빠뜨렸다.

가케히는 지난해 5월 교토(京都)지방법원이 실시한 정신감정에서 경도성 알츠하미어형 치매로 진단받았다. 증상이 진행되면 가족의 얼굴을 알아볼 수 없게 된다. 당시 진단을 내린 의사는 “향후 1년간 증상이 급속히 진행된다고 보기 어렵다”며 재판진행에 문제가 없다는 의견을 냈지만 실제 재판에선 배심원들이 난감해한 것이다.

후생노동성 집계에 따르면 2015년 525만명이던 치매 노인은 2025년 730만명으로 증가할 전망이다. 법무성의 치매재소자 실태조사에선 60세 이상 수감자의 15%에 육박하는 1,300여명이 치매의심 판정을 받았다. 이를 반영하듯 슈퍼마켓에서 물건을 훔쳐 절도죄로 기소된 60대 남성이 ‘약년성(若年性ㆍ젊은)치매’ 판정을 받아 재판이 중단된 적도 있다. 지난달엔 지적장애가 있는 아들을 살해한 노모(83)가 기소후 치매가 진행돼 첫 공판에서 아무 말도 알아듣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진술이 불가능하자 오사카(大阪)지검은 공소기각을 제기했다.

법원측은 여러 전문가에게 자문을 구하면 오히려 혼돈이 심화될 것을 우려해 감정인 선정에 신중한 분위기다. 하지만 시민단체들은 “치매로 재판이 중단되면 피고인이나 피해자측 모두에게 불행한 일이다”라며 “법정에서 의사가 치매환자를 보며 적극 개입하거나 열악한 구치소내에 치매치료 시설을 강화해야 한다”고 국가차원의 대책을 촉구했다.

도쿄=박석원 특파원 spar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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