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축구가 깊은 수렁에서 벗어나 희망을 본 날, 손흥민(25ㆍ토트넘)이 A매치에서 401일 만에 필드 골 맛을 보며 팀 승리를 이끌었다.
한국은 10일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콜롬비아와 평가전에서 손흥민의 두 골을 앞세워 2-1로 이겼다. 지난 6월 부임한 신태용(48) 축구대표팀 감독은 5경기 만에 첫 승을 신고했다.
승리보다 더 큰 소득은 한국 축구의 저력을 확인했다는 점이다. 한국은 러시아 월드컵 최종예선과 지난 달 유럽 평가전에서 기대 이하의 경기력으로 큰 실망을 안겼다. ‘새벽에 축구를 안 본 사람이 승자’, ‘이렇게 월드컵 가서 뭐하느냐’는 자조 섞인 반응이 나왔다. 거스 히딩크(71ㆍ네덜란드) 감독 부임설까지 터져 한국 축구는 쑥대밭이 됐다. 하지만 한 달 전과 180도 달라졌다. 한국 선수들은 강한 압박과 악착같은 수비로 콜롬비아를 몰아세웠다. 이날 오후 갑자기 내린 비로 기온이 뚝 떨어졌는데도 경기장을 찾은 2만9,000명의 팬들은 아낌없이 박수를 보냈다.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 13위 콜롬비아와 62위 한국이 뒤바뀐 것 아닌가 착각일 들 정도로 신태용호가 경기를 주도했다. 경기 전날인 9일 공식 기자회견에서 명단에도 없는 황희찬(21ㆍ잘츠부르크)을 경계 대상으로 꼽아 국내 팬들의 공분을 샀던 호세 페케르만 콜롬비아 감독의 얼굴이 굳어졌다.
신 감독이 내세운 손흥민과 이근호(31ㆍ강원) 투톱 전술이 적중했다. 그 동안 측면 공격수였던 손흥민은 중앙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근호가 엄청난 활동량과 투지로 상대 수비를 헤집는 틈을 타 손흥민이 ‘킬러 본능’을 뽐냈다.
전반 10분 권창훈(23ㆍ디종)-이근호로 이어진 빠른 패스를 상대 문전 오른쪽에서 손흥민이 받았다. 손흥민은 상대 선수 3명에게 포위됐지만 한 바퀴 돈 뒤 재치 있게 수비 가랑이 사이로 툭 차 넣어 그물을 갈랐다. 지난해 10월 6일 카타르와 월드컵 최종예선 홈경기 이후 1년 1개월, 401일 만에 나온 A매치 필드 골이었다. 그는 지난달 모로코와 평가전에서 득점을 올렸지만 페널티킥이었다. 한국은 선제골 이후에도 2~3차례 이근호가 상대 골키퍼와 일대일로 맞서는 등 콜롬비아 수비를 혼쭐냈다.
후반 16분 손흥민이 두 번째 골을 뽑아냈다. 한 박자 빠른 기습적인 중거리 슈팅에 콜롬비아 골키퍼 레안드로 카스텔라노스가 볼을 흘렸다. 손흥민은 60번째 A매치에서 20번 째 골을 기록하며 ‘소속 팀에서는 펄펄 날고 대표팀만 오면 침묵 한다’는 편견을 씻어냈다.
콜롬비아 에이스 하메스 로드리게스를 꽁꽁 묶은 고요한(29ㆍ서울)도 숨은 공신이다. 신 감독은 하메스를 막기 위해 오른쪽 수비수 고요한을 중앙 미드필더로 투입했는데 기대에 100% 부응했다. 전반 초반 한국 팬들의 환호에 두 손을 흔들며 화답하던 하메스의 여유는 전반 중반 이후 자취를 감췄다. 하메스는 한국 선수들이 쓰러질 때마다 날카로운 신경전을 벌이며 짜증을 냈다. 고요한은 후반 38분 교체 아웃될 때 기립박수를 받았다.
‘자동문’이라는 비아냥을 듣던 불안한 수비도 어느 정도 안정을 찾았다. 중앙수비수 권경원(25ㆍ텐진 콴잔)-장현수(26ㆍFC도쿄)는 수비형 미드필더 기성용(28ㆍ스완지시티)의 지휘 아래 일사불란하게 상대 공격을 막아냈다. 전반에 콜롬비아의 위협적인 찬스는 한 번뿐이었다. 안정환 MBC 해설위원은 “수비와 미드필더 간격이 촘촘해 콜롬비아 선수들이 파고들 틈이 없다”고 평가했다. 후반 31분 하메스의 프리킥을 받은 크리스티안 사파타에게 헤딩 실점을 당한 건 ‘옥에 티’였다. 연일 세트피스로 실점하는 장면은 반드시 보완해야 할 점이다.
페케르만 감독은 후반에 골잡이 카를로스 바카를 교체 투입해 만회를 노렸지만 한국은 콜롬비아의 공세를 끝까지 방어해 2-1로 경기를 마무리했다.
수원=윤태석 기자 sportic@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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