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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소현세자와 자금성

입력
2017.11.10 17:0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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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남한산성’은 병자호란 당시 조선 16대 임금 인조가 청 태종에게 머리를 조아리는 것으로 끝나지만 그것은 또 다른 고통의 시작이기도 했다. 청은 인질과 노예로 수십만 명을 끌고 갔는데 거기에 인조의 장남과 차남인 소현세자와 봉림대군이 포함됐다. 장차 조선의 임금이 될 소현세자는 볼모로 있으면서도 현지에서 얻은 정보를 조선으로 보내고 끌려온 조선인을 돌려보내기 위해 노심초사한다. 그렇게 7년을 보낸 소현세자는 1644년 청의 정치ㆍ군사 실력자 도르곤이 명을 정벌할 때 따라나서 베이징으로 들어선다.

▦ 소현세자는 그곳에서 탕약망(湯若望)이라는 범상치 않은 인물을 만난다. 탕약망은 독일 출신의 예수회 선교사로 원래 이름은 아담 샬이다. 소현세자는 그에게서 서양역법과 천문지식, 기독교 교리 등을 배웠다. 지구의와 과학서적을 건네받고 “멀리 떨어진 나라에서 태어나 이국 땅에서 형제처럼 사랑하게 됐으니 하늘이 우리를 이끌어 준 것 같다”는 편지까지 쓴 것을 보면 그가 서양 문물에 얼마나 큰 충격을 받았는지 알 수 있다. 소현세자는 조선으로 돌아올 때 과학 기술을 가르칠 수 있는 선교사를 동행하려고도 했다.

▦ 소현세자는 베이징에 고작 70일 정도 있었는데 그때 머문 곳이 자금성 안에 있는 문연각이다. 문연각은 많은 장서를 보관한 궁중 서고인데 훗날 박지원 또한 ‘열하일기’에서 소현세자가 문연각에서 지냈다고 쓴 바 있다. 이렇게 보면 자금성은 소현세자가 새로운 세상에 눈을 뜬 장소라고 할 수 있다. 방이 무려 8,707간이나 되는, 세상에서 가장 큰 궁궐인 자금성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며칠 전 문을 잠그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접대해 화제가 됐지만 이렇게 소현세자의 이야기가 깃든 곳이기도 하다.

▦ 소현세자는 이듬해 2월 귀국하지만 두 달 만에 숨진다. 종법에 따라 소현세자의 장남이 세손이 돼야 하나 인조는 봉림대군을 세자로 삼았다. 또 소현세자빈 강씨에게 사약을 내리고 세 아들을 제주로 귀양 보내 첫째와 둘째가 죽게 했다. 대명 사대주의에 빠져 아들마저 청의 지지를 받는 정적으로 여긴 인조가 죽음에 관여했다는 추측이 나올 수밖에 없다. 볼모로 있으면서도 더 큰 세상의 흐름과 현실감각을 익힌 소현세자가 임금이 됐다면 조선이 달라졌을 것이라는 견해가 있다. 그랬더라면 자금성은 우리에게 더욱 각별한 장소가 됐을 것이다.

박광희 논설위원 khpar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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