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가 초ㆍ중ㆍ고등학교 교사와 교수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98.6%에 이르는 대부분의 일선 교사들이 과거에 비해 학생들의 생활지도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조사 결과는 학생의 인권이 강조되면서 상대적으로 교권이 약화된 상황에서 적절한 지도권이 일선 교사들에게 주어지지 않은 데서 원인을 찾았다. 주목할 것은 재직 기간이 긴, 경험 많은 교사들이 더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점이다. 선생님의 그림자도 밟지 않던 시절에 임용된 교사들에게 지금의 상황은 낯설기만 할 것이다.
유사한 현상은 학교뿐만 아니라 가정, 직장 등 우리 사회 곳곳에서 목격된다. 교사와 학생 사이뿐만 아니라 부모와 자식, 남편과 아내, 상사와 부하직원, 고용주와 피고용인, 공급자와 사용자, 통치자와 시민 사이에 존재하던 전통적 관계가 무너지면서 사회 구성원들은 삶 속에서 갈등과 혼란을 겪고 있다. 각자의 위치에서 주어진 역할에 대해 서로의 인식이 다르고, 그 역할을 소화하는 과정에서 보여지는 태도에 대해 서로의 기대가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늘 당황스럽다.
최근 우리 사회에 논란이 되고 있는 반려 동물 문제도 같은 선상에서 이해할 수 있다. 우리 사회 구성원 모두가 동의할 수 있는 수준에서 사람과 개 사이의 관계를 정의하지 못한 것이 문제의 출발점일 것이다. 다시 말해 개를 대하는 이들의 인식 차이에서 비롯된 문제다. 개를 기르지 않는 이들에게 개는 단지 동물일 뿐이지만 가정에서 개를 키우는 이들에게 개는 동물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최근, 견주들 앞에서 개라는 단어는 말 할 것도 없고 애완견이라는 단어도 사용하기 꺼려질 만큼 견주들에게 개는 인생의 동반자로서 가족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사람과 사람, 사람과 사물 그리고 사물과 사물 사이에 관계가 어떻게 정의되느냐에 따라 서로가 서로에게 부여하는 의미는 달라진다. 결국, 관계가 어떻게 정의되느냐에 따라 각자의 위치와 역할이 주어지고 태도와 행동 방식이 결정된다. 그리고 관계는 사회에 뿌리 내린 문화에 의해 정의된다. 최근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구성원 간의 수 많은 갈등과 그로 인한 혼란은 상호 간의 관계가 서로가 동의하는 수준에서 정의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과학기술의 발달에 힘입어 사회의 변화가 가속화 되면서 관계를 정의하는 데 기준을 제시하는 문화 또한 급속하게 변해감으로써 모든 세대가 동 시대에 공유하는 문화를 정의하기가 쉽지 않아 졌기 때문이다.
빅데이터 시대가 도래하면 이러한 혼란은 더욱 가중될 것이다. 우리가 지금껏 상식이라는 이름으로 믿고 공유해 오던 삶의 기준들이 무너질 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근대 사회로 접어들면서 우리는 인과관계에 집착하게 된다. 그리고 밝혀낸 인과관계를 일반화하여 이론을 정립하고 의사결정의 기준으로 삼았다. 하지만 우리가 밝혀 낸 인과관계도 제한적인 환경 속에서 수집되고 분석된 데이터를 기반으로 할 뿐이다. 현재 기하급수적으로 발전하는 컴퓨팅 능력은 지금껏 데이터를 수집하고 분석하는 환경에서 존재했던 수 많은 제약들을 극복하고 방대한 데이터 속에서 다양한 그리고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상관관계를 찾아낼 것이다. 때로는 우리가 인과관계에 집착하며 미신으로 치부했던 상관관계도 빅데이터를 등에 업고 우리 앞에 다시 나타나 우리를 혼란스럽게 할 지도 모른다.
빅데이터는 우리의 삶 속에서 관계를 정의하는데 기준을 제시하는 문화와 그 문화 위에 뿌리 내린 상식을 끊임 없이 흔들어 놓을 것이다. 사회 구성원 간의 갈등과 그로 인한 사회적 비용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구성원 각자의 삶 속에서 관계를 정의하는 데 보다 유연해 지는 길뿐이다. 선생은 학생의 그림자도 밟지 않는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박희준 연세대 산업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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