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미국 앨라배마주 공화당 상원의원 후보 경선에서 12월에 진행될 보궐선거 후보로 선출된 로이 무어(70) 전 앨라배마주 대법원장이 30대 때 10대 여성 최소 4명에게 성적으로 접근했다는 폭로가 나왔다. 무어는 특히 스티븐 배넌 전 백악관 수석전략가 등 ‘알트라이트’ 진영의 지지를 받는 복음주의 성향 강경 우파로, 민주당은 물론 공화당 주류와도 불편한 관계라 공화당이 후보 교체를 고려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미국 일간지 워싱턴포스트(WP)는 이날 무어 후보가 38년 전인 1979년 지방검사보로 활동할 당시 리 코프먼이라는 14세 여성에게 성적으로 접근했다고 보도했다. WP가 인용한 코프먼(현재 53세)의 증언에 따르면 당시 32세였던 무어는 양육분쟁에 연루돼 있던 코프먼의 모친 낸시 웰즈에게 “딸이 법정에 들어가 이야기를 듣지 않길 원하면 대신 딸을 돌봐 주겠다”고 제안하는 방식으로 호의를 산 후, 코프먼과 단둘이 있을 때 총 2차례 성적 접촉을 시도했다. 코프먼의 어린 시절 친구 2명도 “당시 코프먼이 그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고 인정했다.
코프먼 외에 다른 여성 3명도 당시 30대 초반이었던 무어가 10대였던 자신들에게 성적으로 접근했다고 증언했다. 이들은 “그때는 칭찬인 줄 알았는데 나이가 들면서 불편한 기억으로 변했다”고 설명했다. 웬디 밀러는 무어가 14세일 때 처음으로 만났으며 2년 뒤인 16세 때부터 데이트를 요구해 왔다고 주장했다.
WP에 따르면 무어가 밀러 등에게 접근할 때는 이들의 연령이 16~18세로 앨라배마주 법률상 성관계 동의 연령(age of consent)을 넘어 의제강간이 인정되지 않는다. 그러나 피해자 중 가장 어린 코프먼의 경우는 동의연령보다 아래인 14세이므로 의제강간 혐의가 적용될 수 있다.
무어의 상원의원 선거캠프는 이들의 주장이 사실이 아니며 민주당의 근거 없는 정치공세라고 WP에 서면으로 답변했다. 그러나 미치 매코널 공화당 상원 원내대표 등 공화당 주류 정치인 일부는 “의혹이 사실이라면 사퇴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과거 경선에서 지고도 기명투표 후보(후보 목록에 없지만 이름을 써서 투표할 수 있는 후보)로 출마해 당선된 바 있는 리사 머코스키 공화당 상원의원(알래스카)은 경선에서 패한 루서 스트레인지 현 상원의원이 기명투표 후보로 나설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럼에도 현실적으로 공화당이 후보 교체에 나설 가능성은 낮다고 정치전문지 폴리티코는 지적한다. 선거일이 12월 12일로 고작 한 달 남짓 남은데다 아직까지 당내 일각에서는 성추행 이력이 사실인지 지켜봐야 한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또 무어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비롯한 워싱턴 공화당의 지지를 받지 못하고도 후보로 당선됐기에 공화당 주류의 압박으로부터도 자유롭다.
무어는 지난 2016년 트럼프 대통령 당선에 한 몫한 ‘알트라이트’와 기독교 복음주의 진영의 대표인사로 평가된다. 보수 기독교 신념이 강한 무어는 2016년 앨라배마주 대법원장 재직 시절 연방대법원의 동성결혼 합법화 판결에 반대해 “결혼을 이성간의 결합으로 규정한 앨라배마주 법을 지켜야 한다”며 동성결혼 증명서 발급을 봉쇄했다가 쫓겨났다. 이에 앞서 2003년에는 법원청사에 설치된 십계명 기념비 철거를 거부했다가 해직된 바 있다. 경선 기간에는 스티븐 배넌 전 백악관 수석전략가가 그를 향해 적극적인 지원사격에 나섰다.
인현우 기자 inhy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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